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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발상지 수운 선생이 득도한 경주 용담정을 찾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구미산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제법 차다. 눈 내린 용담계곡을 따라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선생이 득도한 용담정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엊저녁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쌓여있다. 추운 날씨에도 수운 선생의 발자취를 좇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지고 있었다.



용담정은 수운 선생의 아버지인 근암 최옥이 학사(學舍)로 쓰던 곳으로, 수운 선생은 도(道)를 깨치기 위해 오랜 방랑을 끝내고 돌아와 1860년 4월 5일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시천주(侍天主) 계시를 받고 이곳에서 득도에 이르는데 이것이 곧 동학의 시초로 오늘날의 천도교이다.

 

동학은 서양에서 전래한 종교인 '서학'에 대하여 생긴 한국 고유의 종교로 당시 수운 선생은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각박하게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임을 깨닫고 한울님의 뜻을 알기 위해 수행에 힘쓴 결과 37살에 득도한 이래 1861년 포교를 시작하자마자 많은 신도가 추종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교세는 계속 확장되어 1863년에는 신도가 3,000여 명, 접소는 13개소에 달했다. 정부가 동학의 교세 확장을 경계하기 시작하고 관헌의 감시를 받게 되자 곧 탄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해 7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 을 북접주인으로 정하고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뒤 8월 14일 도통을 전수하여 천도교의 제2대 교주로 삼았다.


하지만 교세를 넓혀가던 수운 최제우 선생은 이단사교(異端私敎)로 좌도난정(左道亂政)과 요언혹민(妖言惑民)을 했다는 죄명으로 붙잡혀 1864년 대구성 남문 밖 관덕정에서 효수당하고 만다. 그의 나이 41살 때의 일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뒤를 이어 해월 최시형 선생은 심한 탄압 속에서도 포교활동과 교단정비를 통해 동학을 크게 성장시켰다. 해월 선생은 온건한 방법으로 동학을 합법화하고자 했으며, 교조인 수운선생의 신원 회복운동과 갑오농민전쟁에 참여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의 시천주 사상과 해월 최시형선생의 사인여천 사상을 계승하여, 손병희 선생이 인내천 사상을 전개하여 만든 것이 오늘날의 천도교이다.




동학 발상지인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의 수운 최제우 선생 생가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용담정을 둘러보면서 41살의 나이에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억울한 삶을 마쳐야했던 암울한 시대상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