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여성이 쓴 최초의 지식백과로 알려진 《규합총서》에 나오는 말이다. 《규합총서》는 서유본의 부인 빙허각(1759~1824) 이씨가 1809년(순조 9)에 조선시대 부녀자를 위해 한글로 쓴 일종의 생활지침서다. 이 책에는 요리, 음식, 염색, 세탁, 밭갈기, 가축 기르는 법, 제충, 태교, 구급방 등 일상생활에 부녀자들이 꼭 알아야 할 생활의 슬기로운 지식이 가득 들어있다.
빙허각 이씨 말고도 조선시대, 평생을 집안(규방)의 틀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이 살아낸 삶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긴 여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시와 학문으로 자신을 표현한 김호연재(1681~1722), 남정일헌(1840~1922), 강정일당(1771~1832) 등도 그러한 여성들이다.
남양주시에 있는 실학박물관에서는 지난 4월 17일부터 “여성 실학과 통하다”라는 주제로 조선시대 남성의 그늘에서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살았지만 깨어있는 의식으로 실학자로서, 문학인으로, 생활지침서 작가로 활약한 여성들의 삶을 되새기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세계 최초의 태교서를 쓴 이사주당(1739~1821)은 조선시대 임신에 관한 관심이 온통 ‘아들’에게 쏠려 있을 당시에 태아의 성별보다 태아의 인성교육에 초점을 둔 책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썼다. 이 책에서 이사주당은 태교는 여성들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아이아빠가 되는 남성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태교’가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을 깼다.
이번 전시회 “여성 실학과 통하다”에서는 이와 같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힘 있는 목소리와 자기 철학을 반듯하게 간직하고 있는 깨어있는 여성’들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어
의미 깊었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시대, 여성의 정절과 정조관을 법규화하여 이른바 “열녀”로 여성의 죽음을 미화하던 사실에 대한 다산 정약용의 “열녀 담론”도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자결이 천하에 가장 흉한 일인데도 높은 사람들은 그 마을에 정표하고 호역을 면제해주는가 하면 아들이나 손자들까지도 요역을 감해주고 있다. 이는 천하에서 가장 흉한 일을 서로 사모하도록 백성들에게 권면하는 것이니 어찌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시대가 변하여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신 오늘날이지만 ‘조선시대’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야했던 여성들은 전혀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어제는 마침 매달 수요일 무료 개방되는 ‘문화가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어린이 손님이 많았다.
그러나 어린 유치원생들에게 이번 전시는 어려운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문화체험’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대여섯 살 어린이들에게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의 기록은 무리일 것이다. 그것도 교사 한두 명이 수십 명이 어린이를 인솔하고 전시관을 그냥 쓱 돌아 나가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전시 내용에 따라 입장객의 나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시안내>
여성,실학과 통하다 : 4월 17일부터 8월 27일까지
실학박물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747번길 (02-579-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