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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권의 경전을 읽어도 눈병하나 못다스림에 놀라 깨친 '침굉대사'

[선사들의 시 감상 17] '침굉대사'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서쪽에서 온 보배 촛불하나

괴로이 찾아 무엇하겠나

밤 깊어 산 비개인 뒤

싸늘한 달 동녘 봉에 오르네

      

깃처럼 펼친 띠집 호수 동쪽에 누워

나그네 오르자 만 겹의 시상

뱃전 두드리는 삿대 기러기 놀라고

물에 드린 낚시 용들 겁내네

푸른 강 흰돌 처마 끝 아슬하고

맑고 성긴 안개만 방안 찾아드네

죽방에 누웠어도 잠없이 청결한 몸

바람 결에 은은한 두어마디 종소리

 

이는 침굉대사(枕肱大師,16161684)침굉집에 실려 있는 노래다. 침굉대사는 10살에 출가하여 18살 때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다쳐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는데 그때 대사는 만 권의 경전을 읽어도 눈병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구나. 부처가 무언가, 마음이 곧 부처지라는 깨달음으로 모든 문자에서 벗어나 수행에 들었다고 한다.

    


 

침굉대사와 윤선도의 만남에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침굉대사가 윤선도를 찾아갔는데 마침 윤선도는 아들 의미(義美)가 죽고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침굉대사가 윤선도의 죽은 아들과 닮았는지, 윤선도는 침굉대사를 아들로 삼고 싶어 대사의 스승인 보광대사에게 침굉대사를 양자로 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보광대사는,

 

불가에서 스승과 사미는 속가의 아버지와 아들이다. 황천으로 보내는 아픔과 속가로 보내는 아픔이 같을까 다를까?” 라는 말로 윤선도의 말을 거절했다.

 

침굉대사의 행장과 시, 문 등은 침굉집에 전하며 21책으로 권상에는 5언절구·5언율시·7언율시 등의 시가, 권하에는 서(행장(行狀권선문(勸善文) 등이 전한다. 또한 끝에는 귀산곡(歸山曲)·태평곡(太平曲)·청학동가(靑鶴洞歌)등의 한글 가사가 있어 흔히 한문으로만 이뤄진 일반 문집에 견주어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

 

침굉대사는 송광사, 선암사, 연곡사 등에서 지냈으며 숙종 10(1684)에 입적했다. 입적 시에도 자신을 다비(화장)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 독수리 밥이 되도록했다.

 

옛사람이 말하길 몸을 던져 굶은 호랑이 요기시키고 살을 베어 독수리를 구제한다했으니 어찌 헛된 말이랴. 나도 본받으려하니 여러 벗들은 믿고 믿어라는 유언에 따라 금화산 제 2봉 바위틈에 시체를 모셨는데 벌레도 먹지 않고 새들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위가 신선집 공중에 의탁해

기묘하고 좋은 경치 우리나라의 으뜸

발해에 다다른 물결 소리 웅장하고

기둥은 바위 눌러 돌 모양 영걸하다

말쑥한 기상 멀리 구름 그림자에 이었고

훤한 빛은 아득히 햋빛에 닿아 짙구나

흥에 겨워 머리 돌려 푸른 끝 바라보면

온갖 저 대륙의 호수들도 손끝에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