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코스모스 - 누나에게1 누구와의 약속이었기에 모두가 떠나는 계절 뒤끝에 오히려 긴목을 하고 피어있는 것인가 코스모스여 한줄기 들길은 가을하늘 아래로 아득히 사라지고 이젠 아무도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길섶에 조용한 웃음으로 그래도 피어있는 코스모스여 작은 꽃잎마다에 지난밤 별들의 눈물자국 같은 이슬방울의 흔적이 남아 길 잃은 나비 한 마리 불러 다리쉼 시키려는가 코스모스여 시절 앞에 피어남도 화사한 뽐냄도 다 그네들 여느 꽃의 제멋 한 생이 천년이런 듯한 주먹만 한 조약돌 곁에서 이 늦은 계절에 엷은 향기 얹어주는 코스모스여 어느 통속잡지 뒤표지에도 오른 적 없는 내 시골누이 같은 코스모스여 하나의 약속을 한 송이 꽃으로 피울 줄 아는 안쓰러움이여 |
< 해 설 >
석화 시를 이해하고 사귀자면 꼭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누나”라는 낱말이다. 시인 석화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시적 대상물로서의 이 낱말은 시인이 꾀하고 있는 인생추구와 인간완성에 있어서 자못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도 관건적인 것처럼 보인다.
석화 시에서의 “누나”는 바로 시인이 추구하고 갈망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 착한 것, 선한 것, 순한 것, 정직한 것, 고결한 것, 청고한 것 등등의 상징물에 다름 아니다. 시인에게는 의당 있어야 할 “누나”가 지금 없으며 혹은 시인 자신이 “누나”로 되어야 할 것인데 지금 되지 못하고 있다. 없는 “누나”를 찾으려고 애쓰고 “누나”로 되려고 분투하는 과정이 바로 석화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아울러 시인이 시적으로 인간적으로 커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나에게”라고 부제를 단 “코스모스”는 인간은 마땅히 소박하고 정직하고 남을 위해 희생적으로 살아야 함을 읊조린 것인데 조용한 서글픔 속에 소박한 아름다움이 고이 서려 있어 은연중 시를 껴안게 된다.
코스모스는 계절과의 약속을 지켜 뭇 꽃들이 다 가버린 길가에서 뽐냄도 원망도 저주도 없이 애절한 정도로 조용히 미소를 품고 서있다. 코스모스의 형상은 곧 “하나의 약속을 / 한 송이 꽃으로 피울 줄 아는” 소박하고 아름답고 인정 많은 시골누이의 형상에 다름 아니다. 석화 시인의 시적 추구는 바로 우리 모두가 “하나의 약속”, “한 송이 꽃으로 피울 줄 아는” 인간으로 되자는 것이 아닐까.
김몽, “누나의 실존적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