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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진왜란 활약 이영남 교지 전주박물관에 기증

이영남, 정유재란 때도 활약하다가 1598년 노량진해전에서 순직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최근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이영남 교지 등 3점을 후손 집안으로부터 기증받았다.

 

이영남(李英男, 1571~1598)은 전의(全義) 이씨(李氏) 가문에서 이정효(李貞孝)의 아들로 1571년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18살에 무과에 급제한 뒤, 율포만호(栗浦萬戶), 가덕진첨사(加德鎭僉使)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절도사에게 청병하여 원균의 수군과 함께 옥포에서 왜적을 물리치는데 이바지하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의 영문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도 활약하다가 1598년 노량진해전에서 순직하여 선조 때(1604년)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현재 이영남의 사당, 선충사(宣忠祠)가 전주시 중화산동에 있다.

 

 

<이영남 교지>는 1807년(순조7년) 이영남 장군에게 병조판서를 증직(贈職)하면서 내린 교지다. 교지(敎旨)는 조선시대 임금의 명령과 의중을 담은 언사, 또는 임금이 관직 등을 내리는 문서군을 지칭하는 용어다. 당시 전라도 유학 송상설(宋相說) 등 75명이 함께 이영남의 공을 논하며 추증을 위해 상소를 올렸다고 전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敎旨

嘉善大夫行加德鎭僉使加德鎭兵馬僉節制使李英男資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訓鍊院事者

嘉慶12年月日

忠節卓異贈職事承

 

부인 숙부인(淑夫人) 허씨에게 정부인(貞夫人) 봉작을 내리는 교지와 이진열(李晉烈, 태어나고 죽은 해 모름)이라는 지역 유림의 과거시험 답안지도 함께 기증받았다.

 

 

 

이 자료를 통해, 전라북도 무관 출신 이영남과 집안 인물에 대한 연구 기초를 마련하고, 조선 역사 속 인물이 19세기가 되어 지역 유학자들의 뜻을 모아 한 번 더 재평가되는 상황을 추증교지라는 문화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문화재를 보존처리하고 정밀 조사해 향후 전시와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