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국가무형유산 「완초장(莞草匠)」 보유자로 유선옥(劉仙玉, 인천 강화군, 1954년생) 씨를 인정 예고하였다. 국가무형유산 「완초장」은 논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인 왕골로 돗자리, 방석, 작은 바구니, 삼합(三合) 같은 공예품을 만드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정교하게 엮어 만든 완초공예품은 상류층과 외국과의 교역품으로 과거 인기가 있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오랫동안 생활물품으로 활용되었다. * 삼합: 크기가 서로 다른 세 개의 합이 제일 큰 합 안에 들어가 있는 완초공예품 이번 국가무형유산 완초장 보유자 인정을 위해서 국가유산청은 올해 공모를 거쳐 서면심사와 현장조사를 해 완초장의 핵심 기능인 ‘날줄(세로줄) 만들기’, ‘바닥 짜기’, 꺾이거나 접히는 부분에 세 올의 씨줄(가로줄)을 넣고 엮으면서 마무리하는 ‘삼오리치기’, 왕골로 둘레를 엮어 높이를 만드는 ‘운두 올리기’, ‘무늬 넣기’ 등의 기량을 확인한 바 있다. 이번에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유선옥 씨는 1967년 완초장에 입문하여, 이후 스승이자 남편인 고 이상재 보유자(‘23년 작고)에게 기능을 전수받아 57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이재필)는 「2024 가을 궁중문화축전」(10.9.~13.)이 시작되는 10월 9일부터 관람객의 접근성과 편의 향상을 위해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있는 율곡로 궁궐 담장길 쪽 출입문(창경궁 율곡로 출입문, 종묘 북신문)을 각각 개방한다. 이렇게 개방하면 창경궁과 종묘의 기존 출입문이 아닌 율곡로 쪽 출입구를 통해 창경궁에서 바로 종묘로, 종묘에서 바로 창경궁으로도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창경궁과 종묘 간 연결 관람도 할 수 있게 된다. (단, 창경궁과 종묘 입장권은 각각 개별 발권 필요) 조선시대 종묘와 동궐인 창덕궁ㆍ창경궁은 원래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숲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1932년 일제가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종묘 관통도로(율곡로)를 만들며 창경궁과 종묘를 가르고, 그 사이에 일본식 육교(창경궁ㆍ종묘 연결다리, 2012년 철거)를 놓은 바 있다. 서울시는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2010년~2022년)을 통해 기존 율곡로는 지하화하고 그 위에 산책로를 조성하여 율곡로의 궁궐 담장길을 개방(‘22.7월)하였으며, 이후 궁능유적본부가 경사가 가파르던 창경궁 율곡로 출입문 구간에 무장애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서 유서 깊은 전통마을 「영주 무섬마을」 내 대표적 고택인 「만죽재고택」과 「해우당고택」을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온 생활유물들과 함께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주 만죽재 ·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榮州 晩竹齋 古宅 · 榮州 海愚堂 古宅 및 遺物 一括)」이라는 이름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만죽재고택」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인 1666년(현종 7), 반남박씨 박수(朴檖, 1641∼1729)가 무섬마을에 들어오면서 지은 고택으로, 입향조로부터 13대에 이르기까지 장손이 360년 동안 집터와 가옥을 온전히 지켜오며 배치와 평면, 주변 환경의 큰 변형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 입향조: 마을을 맨 먼저 개척하여 정착한 조상 고택의 ‘ㅁ’자 모양의 평면 형태는 조선 중ㆍ후기 상류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종법질서의 표현 방법으로서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며, 경북 북부지방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뜰집의 전형적 형태다. * 뜰집: 안채, 사랑채, 부속채 등이 하나로 연결되어 ‘ㅁ’자형을 이루는 주택 교육과 시문학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고택 뒤 섬계초당은 내성천과 무섬마을 전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