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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들, 등산기가 아닌 유산기(遊山記)를 썼다

평창강 따라 걷기 9-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길 따라 걷다 보니 가양과 함께 걷게 되었다. 그는 환경교육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다.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교수로 은퇴한 이후에도 그는 국가환경교육센터장 직을 5년이나 잘 수행하였다. 나는 그와 함께 중학교 환경 교과서를 만든 경험이 있다. 분야별로 교수 여러 명이 참여해 함께 작업을 했는데, 그가 팀장을 맡았었다. 그는 일 처리가 꼼꼼하고 기획력과 추진력이 대단해서 우리는 그에게 ‘등소평’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자연과 꽃과 나무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도 식지 않은 가양은 왼편 언덕 비탈에 있는 붉은 꽃을 사진 찍었다. 나리꽃 종류인 줄은 알겠는데, 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단다. 나중에 이름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나리는 우리말이고 백합(百合)은 한자말이다. 나리와 백합은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백합에서 백은 ‘흰 백(白)’이 아니고 ‘일백 백’이다. 나리의 알뿌리는 많은 수의 비늘줄기로 이뤄져 있는데, 그 수가 100개쯤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식물도감을 찾아보면 나리꽃이라는 꽃은 없다. 참나리, 땅나리, 솔나리, 하늘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등등이 모두 나리꽃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나리’라는 뜻의 참나리는 토종 나리 가운데서 키와 꽃이 가장 크다. 다 자라면 키가 1~2m에 이른다. 잎은 가늘고 길쭉하며 7~8월에 붉은색이나 주황색의 꽃이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핀다.

 

꽃잎은 6장으로 뒤로 완전히 젖혀진다. 꽃잎에는 검은색이 도는 자주색의 점이 박혀 있다. 산에서 볼 수 있어서 ‘산나리’, 꽃잎에 점이 박혀 있어서 ‘호랑나리’라고도 부른다. 꽃잎의 점 때문에 ‘깨순이’, ‘점순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참나리의 가장 큰 특징은 줄기와 잎 사이에 구슬눈 또는 살눈이라고 불리는 짙은 흑자색 열매 모양의 주아(珠芽)가 달린다는 점이다.

 

 

산에 나리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에는 참나무가 없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등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의 총칭이 참나무다. 나는 평창강을 답사하면서 강 중간의 바위에 서 있는, 희고 큰 날개를 가진 새를 여러 번 보았다. 그 새가 흰 날개를 퍼덕이며 느리면서도 우아하게 날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새의 이름은 알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슬기말틀(스마트폰)의 기능 가운데 꽃을 가까이서 사진 찍으면 그 이름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아직 새에 관해서는 그러한 기능을 찾지 못하였다. 흰 새의 이름이 무엇일까? ‘백로’라는 이름으로 다음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백로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이 백로(白鷺)이다. 백로에 속하는 조류는 지구상에 12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5종이 있다. 제일 흔한 백로가 중대백로이고 다음으로는 중백로가 흔하다. 노랑부리백로, 쇠백로, 대백로가 모두 백로에 속한다. 백로는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로 상징된다. 따라서 시문에 많이 등장하며, 화조화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 따라 걷다가 날개가 큰 흰 새를 발견하면 “저기 백로가 있다”라고 외쳐도 틀리지 않는다. 도토리가 열린 나무를 보면 “저기 참나무가 있다”라고 말해도 된다. 여름에 꽃잎이 뒤로 젖혀지며 붉은 꽃이 핀 식물을 보면 “저기 나리가 있다”라고 말해도 괜찮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더는 이름을 묻지 말아야 한다.

 

나는 가양과 2011년 여름에 지리산 둘레길 여행을 1박2일로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김용현 사장이라고, 내가 다니던 교회 성가대에서 1995년부터 알게 된 사람과 셋이서 여행을 하였다. 김 사장은 식물 분류에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이었다. 나는 그의 권유로 자생식물연구회에 가입하였다. 그와 함께 3년 동안 여기저기 답사를 다니며 식물 이름 공부를 좀 하였다. 내 전공이 환경공학임에도 식물 이름을 조금 아는 것은 그분의 덕이다.

 

그는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엄청난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60이 넘은 나이에 기타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식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종교의 핵심은 지식이 아니고 깨달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알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도(道)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13년 1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삶의 길>

                                                         - 김용현

 

지혜로운 자는 순간순간에 산다.

그의 삶은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처럼 자유롭다.

목적을 향해 가지도 않고, 어느 곳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삶의 진정성은 목적지에 있지 않다.

진정한 것은 그 과정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것은 여행 자체다.

모든 것은 여행이며 흰 구름의 길이다.

 

그는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는 자유인이다.

 

구함과 얻음으로부터 벗어나

사람의 무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도와 함께 흘러 다닌다.

눈에 띄지 않은 채 그는 삶 그 자체가 되어 걸어간다.

 

집도 없고, 이름도 없이

그의 발걸음은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또한 누구를 판단함이 없기에

아무도 그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를 비운 자의 아름다움이다.

 

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다. 마지막 구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기를 비운 자가 아름답다”라고 그는 썼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이 시를 보내준 것이 아니다. 그는 좋은 시 한 수를 썼다고 해서 자랑삼아 여기저기로 보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 시를 그의 블로그에서 발견하였다. 그가 언제 이 시를 썼는지 나는 모른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허가를 받지 않고, 나는 이 시를 복사하여 나의 블로그에 저장하고 있었다.

 

내가 생뚱맞게 평창강 답사기에서 그의 시까지 인용하는 것은 그와 나누었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님, 식물 이름 공부가 너무 어려워요. 이름을 외워도 자꾸 잊어버려요.”

“허허, 이 교수. 식물 이름을 외워서 뭐 해요? 그저 예쁜 꽃을 보면, ‘아아, 예쁘구나!’라고 느끼면 되지요.”

 

맞는 말이다. 꽃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꽃을 바라보며 예쁘다고 느끼면서, 잠시라도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현대인은 산을 정상까지 오르고(정복하고?) 등산기를 쓴다. 그러나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산을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산속에 들어가서 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등산기 대신에 놀 유(遊)‘ 자를 써서 유산기(遊山記)를 썼다.

 

 

나무 그늘을 따라서 정담을 나누며 걷다 보니 한반도 면소재지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명색이 면소재지인데, 너무 조용하고 한가하였다. 슬기말틀로 검색해보니 2020년 12월 기준으로 한반도면 인구는 3,010명이다. 내가 사는 봉평면 인구수 5,700명의 반에 불과하다. 봉평면 소재지에는 사람들이 만나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여러 곳 있는데, 여기는 카페 간판을 찾을 수가 없다. 대신 옛날 영화에나 나옴 직한 다방 간판이 하나 보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낮 1시 30분에, 예약해 둔 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지난번 사전 답사 때 그럴듯한 식당을 봐두었다. 오늘 아침에 장어탕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음식이 금방 나왔다. 양식 장어와 평창강에서 잡은 민물 장어를 섞어서 푹 끓여서 만든 장어탕(값은 9,000원)이었는데, 맛이 좋았다.

 

술 먹는 주류파는 따로 앉아서 석영이 건배사를 했다. 각자 응답을 해보란다.

“남자는 힘! 여자는?”

주류1이 응답했다. “애교”

주류2가 응답했다. “미소”

주류3이 응답했다. “기교”

석영이 말했다. “모두 틀렸습니다. 여자는 허(her)입니다.”

영어로 힘(him)의 반대는 허(her)가 맞다. 완전히 허를 찔린 재미있는 건배사였다.

 

그날 일정은 바쁘지 않았다. 우리는 시골 식당에서 장어탕 먹고 공짜 커피까지 마시면서 1시간 10분을 보냈다. 별별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은곡이 한강의 발원지가 오대산 우통수가 맞냐고 물었다. 시인마뇽이 태백산 검룡소라고 대답했다. 은곡은 오대산 우통수 물이 훨씬 물맛이 좋다고 말했다. 영월 정선 일대는 석회암지대여서 물맛이 좋지 않단다. 내가 보충 설명을 했다.

 

강의 길이를 전문용어로 유로연장이라고 한다. 흥정천과 속사천이 만나는 지점이 평창강의 시작점인데, 그러면 평창강의 상류는 어느 쪽일까? 더 긴 쪽이 상류다. 그러면 평창강의 상류는 속사천이 된다. 평창강은 영월읍 아래에서 동강과 만나는데, 동강의 상류는 어디일까? 우통수가 있는 오대천이 상류가 아니고, 검룡소가 있는 골지천이 상류가 된다.

 

한강의 발원지는 태백의 검룡소다. 검룡소를 출발한 한강물은 골지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다가 임계면에서 임계천을 흡수하고 여량면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받아들인다. 이어서 오대천과 합류하는데, 정선 사람들은 오대천 합류 지점부터를 조양강이라고 부른다. 조양강은 흐르다가 지장천과 합류하면서 동강이 되고 영월읍 아래에서 서강(평창강)과 합하면서 남한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남한강이 흘러가다가 경기도 팔당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면 한강이 되고, 한강은 서해로 흘러든다.

 

한강의 유로연장을 계산하려면 가장 긴 쪽을 따라가야 한다. 북한강보다는 남한강이 길므로 한강의 발원지는 남한강 상류 어느 지점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오대산 우통수(于筒水)가 발원지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측지 기술이 발달하여 엄밀히 측정해보니 우통수 쪽보다는 태백의 검룡소 쪽이 32킬로미터 더 길다고 밝혀졌다. 국립지리원에서는 1987년에 공식적으로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라고 인정했다. 현재 공인된 한강의 유로연장은 514km이다. 옛날 자료를 인용하는 글에서는 한강의 길이를 482km라고 잘못 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