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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봄날은 가고...

찔레꽃이 피는 계절은 곧 초여름이기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 하루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과 가운데 하나인데 요즘 하루하루 초록이 녹색으로 짙어지면서 그 푸르름을 보면 온종일 컴퓨터다, 손말틀(휴대폰)이다, 책이다, 무언가를 읽느라고 피곤해진 두 눈에 시원한 청량제를 받는 듯 상쾌하다. 나뭇잎이 무성해지면서 그 사이로 새들이 예전보다 더 자주 나오고 노래도 부른다. 꿩도 나와서 인사를 하고 한동안 못 보던 뻐꾸기가 아파트 근처까지 날아와 길게 우는 소리로 귀도 흥겨워졌다. 청설모는 아예 사람이 다가가도 떠날줄을 모른다.

 

 

 

 

며칠 전부터 부쩍 날도 더워져 어느덧 초여름인데 가만히 보니 24절기 상으로 소만(小滿)을 지났음을 알겠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는 봄이 오니 안 오니 하면서 입춘과 우수 경칩을 열심히 찾곤 하였는데 그만 봄이 오고 나면 24절기를 잘 찾지 않으니 소만이라고 하니 뭔가 갑자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이름 같은 생경함이 있는 것 같다.

 

절기상으로 보면 소만(小滿)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온다는 정도는 알지만, 이 말의 뜻은 무엇이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고 산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라고 하는데, 그 가득 참을 작은 뜻을 담아 표현한 것이 이채롭다. 24절기 가운게 소(小)가 들어간 절기는 소만 외에도 소서(小暑), 소설(小雪), 소한(小寒)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대서, 대설, 대한 등 소(小)에 대응하는 대(大)라는 이름이 붙은 절기도 있지만, 유독 소만만큼은 이에 대응하는 대만(大滿)이라는 절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더위, 눈, 추위 등 직접적인 자연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어서 약하고 심함을 견줄 수 있겠지만 날씨가 무르익고 생명의 기운이 가득찬다는 개념(滿)은 ‘크게 가득차다’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소만에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제멋대로의 해석이기는 하다. 아무튼 소만이란 이름을 모르고 그냥 넘어가도 그만이지만 갑자기 이 절기가 생각나는 것은, 이 절기가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으로 들어가는 문(門)인 까닭이다.

 

 

 

며칠 전 산에 올랐다가 눈앞에 펼쳐진 노란 길을 보고 눈이 즐거운 한때가 있었다. 길에 온통 노란 꽃이 깔린 것이었다. 오! 마치 누군가가 길 가는 사람들을 위해 노란꽃을 뿌려놓은 것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카시아꽃이 말라서 한꺼번에 떨어진 것인데 누군가가 아침 일찍 올라와 가운데 사람 다닐 정도만 쓸어놓아서 이렇게 보인 것이다. 아침 일찍 길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어주신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면서 ‘아 이제부터는 정말로 여름으로 들어가는구나!’ 하고 실감을 하는 것이다.

 

해마다 사람들은 날씨가 이상하다, 지구가 미친 것이 아니냐 등등 날씨에 대해서 걱정과 푸념을 많이 하는 편이고 조금 더우면 덥다고 조금 가물면 가물었다고 또 걱정하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해마다 5월 21일 무렵 오는 소만을 딱 지나고 보니 정말로 날씨가 여름으로 넘어오더라는 것이다. 요즈음 다들 반소매 옷차림으로 다니면서도 덥다고 하고, 산에 오르는 분들도 어느새 반소매 차림뿐 아니라 바지도 반바지인 것을 보면 확실히 여름으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소만이라는 절기를 고개로 해서 바뀐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무튼 이렇게 소만 무렵부터 거의 여름 날씨를 보이기 시작하는 때에 보리가 다 익어가기에 역설적으로는 예전에는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였다고 한다. 가을에 수확한 곡물이 모자라 봄나물과 나무껍질로 식량을 대신 보충하는 어려운 춘궁기의 마지막 고비였던 것인데,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문제 정도는 거의 해결된 상태이니만큼 예전처럼 보릿고개란 말도 없어진 것 같지만 아무튼 이 보름을 잘 넘겨야 했던 기억이 어른들에게는 남아있을 것이다.

 

 

요즘 길가에 찔레꽃들이 만발하며 은은한 향기를 짙게 풍긴다. 찔레꽃을 보면 가수 장사익 씨의 찔레꽃이란 노래가 생각한다. 장사익 씨는 유난히 이 노래를 좋아한다. 30년 전쯤 되는 1994년 바로 요즈음에 잠실 5단지 옆을 지나는데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찌르더란다. 당시 아파트 담장에는 장미가 많이 심겨 있었기에 당연히 장미꽃이겠거니 하고 냄새를 따라가 보니 장미에서는 전혀 냄새가 없고 어느 잘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 하얀 찔레꽃이 피어있는데 거기서 그렇게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보고 울컥했단다.

 

“야! 아무도 안 보는 이 보잘것없는 찔레꽃에서 이런 좋은 향기가 나다니. 그래. 출세해서 고대광실에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자랑하며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 서민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니겠나? 속으로 진한 향기를 담고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그래서 만든 것이 이 노래란다.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이고 자신의 노래이다. 장사익의 노래에 우리 서민들의 된장 냄새가 나는 것이 바로 그런 연유이고, 그래서 그의 노래가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인데, 그 꽃들이 피는 때가 온 것이다.

 

 

 

다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찔레꽃이 피는 계절은 곧 초여름이기에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아쉬워하는 봄날이 갔다는 뜻이 된다. 봄날 싱그러운 풀 냄새에 꽃향기가 떠나닐 때 막걸릿잔을 들며 "봄날은 간다~~~"를 외치던 그 봄날이 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더위라는 괴물과 싸워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그것은 또 그것이지. 더위가 있으니까 시원한 계곡이 좋고 빙과류가 몸을 식혀주는 것이고 더위가 있으니까 가을이 또 기다려지는 것이고... 그렇게 계절은 우리들을 시험할 것인데 우리들은 그런 계절의 변화를 심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인간에 대해 시련을 주고 고마움을 알게 하는 배려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들의 봄날은 갔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