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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시간을 멈추게 하는 방법

여기서 와인을 시켜 드신 분들은 또 어디쯤 가서 있을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0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구는 돈다. 세상은 움직인다. 우리들 모두도 움직이며 뭔가가 만들려고 분주하다. 이때 변하지 않고 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는 방법은 시간을 세우는 것이다. 아니 시간을 보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멈추어야 시간이 가는 것을, 지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시간의 의미를 다시 씹어보게 된다.

 

 

어느 날 오후, 문득 나는 시간을 세우고 바라보는 드문 기회를 맛보았다. 보통 때 늘 고민하는 글쓰기를 이날 오후만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 마침 광화문 광장이다. 초여름이라고 분수가 뿜어내는 물줄기의 포말들이 포장된 지표면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가운데 눈에는 저 멀리 광화문과 그 뒤의 근정전이 들어오는데, 핸드폰(우리 편집장님은 손말틀이란다)은 거기까지는 담아내지 못하지만, 어쨌든 텅빈 광화문은 요즘 바빠진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게 분주함과 시끄러움을 밀어내주고 조용하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도란도란하는 말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내 발길은 사직터널 쪽으로 향했다. 갈아타야 할 버스를 한 번에 타려면 서대문쪽으로 가면 되기에 그래서 천천히 걸어가 보자고 한 것일까? 사직터널 밑으로 갈까 하다가 문득 높지 않은 저 고개를 위로 넘어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대한민국의 고개마다 자동차용 터널이 생겨, 고개 위에 무엇이 있는지를 지나친다. 그래 터널 입구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저런! 한옥을 개조해 놓은 넓은 통창의 카페가 있다. 그 창틀과 문턱 곳곳에는 와인병들이 사열하듯이 차렷 자세로 서 있다.

 

 

 

 

저녁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한가한 오후, 주인도 잘 안 보이는 조용한 공간이 시간을 정지시키고 있다. 시간도 서 있을 수가 있구나. 그 때 멀리 저 앞으로 가버렸던 시간이 다시 스멀스멀 찾아온다. 이런 술병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옥수수들이 관병식을 하고 있다"라는 표현도 되살아난다. 줄지어 차렷 자세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겠지. 그야말로 시간을 세우니까 먼저 간 시간이 다시 돌아와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 집의 모든 소품도 시간을 안고 있다. 이 집 주인이 아마도 프랑스 파리에서 받았던 아름다운 인상과 기억을 다시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작은 화병의 주둥이와 어깨에도 그들의 시간과 마음이 남아 있다. 게다가 박제화된 마른 꽃들이 더욱 정제된, 썩지 않는 시간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두움을 밝히던 램프들도 밤이란 시간에 담긴 생각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여기서 와인을 시켜 드신 분들은 누구이고 왜 이 와인을 선택했을까? 그분들은 어디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 벌써 멀리 저세상으로 가신 분도 있겠지? 그렇지만 모두 여기서 와인 한 잔으로 입을 통해 시간의 달콤한 추억을 몸 안에 넣어 머릿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그들의 기억과 추억은 또 어디쯤 가서 있을까?

 

그렇게 한참 동안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카톡이 온다. 일주일에 한 편씩 쓰는 글이 이번에 200회를 기록했단다. 아니 그러면 일 년에 54편씩을 쓰는데 3년이 넘어 4년이 거의 다 돠어간다는 뜻이구나. 그동안 무슨 글을 그리 많이 썼을까? 그 속에 담긴 나의 생각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벌써 5시 가 넘었다. 곧 멈추고 시간을 보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이 이 길에 많이들 집에 올라오시겠지. 그분들에게 이제 시간을 내어드릴 때가 되었다. 그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자.

 

 

 

 

 

집 밖으로 나오니 5월이 막 다 간다고, 6월이 온다고, 계절의 여왕이라나 뭐라나 부르는 장미들이 집 주위에서 활짝 피어 웃고 있구나. 《발해고》라는 역사서를 쓴 유득공(1748-1807)이 근처 어딘가에 살았을 것이다. 유득공은 꽃나무 심기를 좋아해서 서재 앞에도 울긋불긋 대략 갖춰놓았는데 친구인 이덕무(1741∼1793)가 꽃이 뭐가 그리좋으냐고 묻자 "세상살이는 정 때문에 시달리지 않느냐? 내가 좋아하건 남이 좋아하건 간에 얽매여 벗어날 수가 없다. 새와 짐승도 먹여서 길을 들이고 나면 반드시 그 주인을 사랑하는데 꽃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사랑을 주어도 저들은 덤덤하니 정이라고는 없는데, 그래서 좋다"라고 답했단다.

 

그래 저 꽃도 나에게 정을 주니 안주니 하며 나를 얽어매지 않아서 나도 그냥 보고 좋구나. 그러나저러나 이제 또 다음 글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가는구나.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