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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

금산정사 방문기 10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1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잡지를 재미있게 읽다 보니 날이 밝아 온다. 차에서 내려 바닷가로 산책하러 나갔다. 마침 해가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다. 하늘과 바다는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 간다. 이글거리지만 눈이 부시지 않는 일출 광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방파제를 따라 상쾌한 바닷바람을 쐬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선창에는 굵은 줄로 묶어 놓은 고깃배들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어디에나 부지런한 사람은 있는가 보다. 저쪽을 보니 작은 배 하나가 모터 소리를 내면서 물을 하얗게 튀기며 앞섬을 향해 달려간다. 부둣가에는 이제 사람들이 보였다. 대개는 아주머니들인데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건강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멸치를 말리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멸치는 어떤 것은 굵고 어떤 것은 아주 잘고, 길에 깔개를 깔고 종류별로 널어놓는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어서 도시인들이 맛있는 멸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리라.

 

신도회장 집에 돌아오니 연담 거사는 일어나 방에서 고요히 명상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이 정의를 내린 명상이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호수에 떠 있는 온갖 티끌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명상하면 무엇이 좋은가? 마음을 맑게 하면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한다. 호수가 흐릴 때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맑아진 호수를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듯이 말이다.

 

우리는 날마다 바쁘게 살면서 지나치게 사물과 인간관계에 얽매이며 산다. 마음이 흐려져서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명상할 필요가 있으며, 명상을 통하여 사물을 제 모습대로 바르게 볼 수 있다. 그리하면 우리의 판단력은 정확해지고 우리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명상을 하기는 해야 할까 보다. 이제 몇 년 지나면 지천명(地天命)의 나이인데 나에게 주어진 천명이 무엇인지 아직도 흐릿하기만 하니 말이다.

 

신도회장 집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절에 가서 현정 스님과 녹차를 마셨다. 스님은 금산정사가 지금은 임시 건물에 불과하지만 근사한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선방(禪房)을 꾸밀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 나는 스님에게 ‘생태 선방’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선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거닐 산책로를 만들되, 산책로 주변에 자연의 여러 가지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마련하는 선방을 꾸미면 좋을 것이다.

 

인도의 명상철학자인 크리슈나 무르티는 “진리를 알고자 하거든 나무를 보라”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현대인은 진리를 책에서 배우려고만 하는데, 과학적인 지식은 책에서 배울 수 있어도 인생의 진리는 자연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나뭇잎을 바라보고, 꽃이 피어나는 신비를 느끼고, 꽃 진 후에 열매 맺는 것을 관찰하고, 온갖 벌레가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우리는 자신만이 깨닫는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여름방학에는 이러한 생태 선방을 지식 공부에 찌든 청소년들에게 수련원으로 개방하면 진리의 한 조각이라도 느낄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님과 작별할 시간이 왔다. 한 번 찾아오는 데 8년 걸렸으니 다시 뵐 때까지 또 얼마나 세월이 흘러갈지. 아쉬운 이별이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모든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진다. 그렇지만 나는 이럴 때 생각나는 시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다시 육지로 건너와 차를 몰았다. 우리는 저녁 4시에 광주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하였다. 광주로 가는 도중 선암사에 들렀다. 선암사는 나에게 생소한 절 이름은 아니다. 요즘 대학생의 필독도서인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의 고향이 선암사라고 책표지에 쓰여 있다. 곧 그는 대처승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벌교를 지나 경치 좋은 산길을 따라 꾸불꾸불 운전하다 보니 선암사가 나타났다.

 

 

 

선암사는 승주군 조계산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계산의 서쪽에 있는 송광사하고는 등산로로 3시간 거리라고 한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림으로서 매우 아름다운 절이었다. 대개 절에 가면 단청이 화려한데, 선암사는 단청이 희미하게 퇴색되어 매우 고풍스러웠다. 건물의 배치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곧 한눈에 절이 다 보이는 것이 아니고 일주문에서는 대웅전만 보이고 대웅전에 가면 뒤에 있는 건물이 보이는 이러한 건물 배치였다.

 

송광사를 아름답게 꾸며 주었던 목백일홍은 입구에 단 한 그루만 보였고 선암사에는 대신 상사화가 활짝 폈다. 상사화는 노란색의 꽃이 길쭉한 줄기에 얹혀 피어나는 예쁜 꽃인데, 잎이 모두 지고 난 뒤에야 꽃이 핀다. 꽃과 잎이 운명처럼 서로 보지 못하는 꽃이라고 하며 주로 절에서 많이 심는 꽃이란다.

 

우리는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다른 사람 사진도 찍어주고, 아이가 지나가면 이름이 무어냐, 몇 살이냐고 말도 걸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연담 거사는 절 의식과 법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해 주었다. 불교에서 합장하며 손바닥을 모으는 것은 부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또 불교에는 사물이 있는데 범종, 목어, 법고, 운판이다. 법종은 지옥 중생을 제도함이며, 목어는 물속 중생, 법고는 가축 중생, 운판은 하늘을 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고 한다.

 

절 구경을 마치고 광주까지는 가는 데는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송광사와 선암사라는 좋은 절을 가진 광주시민은 행복하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들 바쁜지 그저께 광주에서 만났던 두 친구도 아직 선암사 절 구경을 못 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은 결국 욕심 때문이 아닌지? 기업인은 돈을 더 많이 벌 욕심, 학자는 논문을 많이 쓸 욕심, 여인들은 더 예뻐질 욕심에 사로잡혀 이런저런 형태로 바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욕심을 조금만 줄인다면 바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