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광주역 앞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4시에 광주에서 출발하였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연담 거사와 불교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담 거사는 특이하게도 부인이 교회에 다닌다. 자녀가 둘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 따라 절에 다니고, 하나는 어머니 따라 교회에 다니는 독특한 가정이다. 연담 거사는 그러한 가정 내력 때문인지 이미 기독교 교리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가 설명하는 불교 이야기는 이해하기 쉬었다. 나는 수원대 교수로 오기 전에 국토개발원에서 3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이 과장이라는 분과 차를 마시면서 불교에 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불자로서 불교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일반인의 행동 차이점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깨닫는다면 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내 질문을 들은 이 과장님은 이것은 금강경에 나오는 보물 같은 이야기인데 좋은 질문을 했으므로 나에게만 말해 준다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연담거사가 설명하는 무주상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잡지를 재미있게 읽다 보니 날이 밝아 온다. 차에서 내려 바닷가로 산책하러 나갔다. 마침 해가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다. 하늘과 바다는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 간다. 이글거리지만 눈이 부시지 않는 일출 광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방파제를 따라 상쾌한 바닷바람을 쐬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선창에는 굵은 줄로 묶어 놓은 고깃배들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어디에나 부지런한 사람은 있는가 보다. 저쪽을 보니 작은 배 하나가 모터 소리를 내면서 물을 하얗게 튀기며 앞섬을 향해 달려간다. 부둣가에는 이제 사람들이 보였다. 대개는 아주머니들인데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건강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멸치를 말리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멸치는 어떤 것은 굵고 어떤 것은 아주 잘고, 길에 깔개를 깔고 종류별로 널어놓는다.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어서 도시인들이 맛있는 멸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리라. 신도회장 집에 돌아오니 연담 거사는 일어나 방에서 고요히 명상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이 정의를 내린 명상이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마음의 호수에 떠 있는 온갖 티끌을 가라앉히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 카페는 평범한 술집이었다. 물수건이 나오고, 맥주가 나오고, 안주가 나오고, 웨이터 총각이 아가씨를 둘 데리고 들어오고. 이 자리를 빌려 토로하건대, 나는 술 따르는 아가씨들에게 불만이 많다. 조선시대에 기생은 나름대로 뚜렷한 직업의식을 가졌으며 엄격한 교육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떳떳한 직업인이었다. 기생은 대개 천민 출신이었는데, 정2품 이상의 관리에게 사랑을 받으면 신분이 상승하기도 했다. 기생의 딸은 자동적으로 기생이 되는 식으로 세습되었는데, 유명한 황진이는 그 어머니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기생이 되고 만 것이다. 특히 관기(官妓)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생으로서 말하자면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관기가 되기는 매우 어려웠다. 3년마다 전국의 관기 가운데에서 150명을 뽑아 시(詩), 화(畵),가(歌), 무(舞), 악(樂)의 다섯 가지 기예를 매우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기생은 재생(才生)’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온갖 재주는 오늘날의 전통예술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기생들이 국채보상운동에까지 대거 참여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기생들이 꼭 갖추어야 할 마지막 덕목은 지조였다. 이 덕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식사 때에 보니 인원이 많이 줄었다. 주말에는 방문객을 받지 않고 이미 들어와 있는 방문객도 특별히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모두 낮 12시까지는 떠나야 한다. 아침 식사 뒤에 나는 오거스틴에게 물어서 공동체 식구 중에서 학부형을 소개받았다. 내가 만난 사람은 이솔로몬이라는 사람으로서 매우 착해 보였으며 얼굴에서 평화로움이 배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생과 초등학생, 이렇게 두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 아들은 지금 황지중학교를 다니는데, 고등학교는 간디고등학교로 보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큰아들은 예수원 입구의 큰길 가에 있는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고 작은아들은 아직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천덕 신부님의 두 딸도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두 딸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한국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고 전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 진학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니, 그분은 대뜸 “기도해 보시오. 어떤 필요가 생기거든 1차적으로 기도해 보시오.”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준다. 기도해 보면 길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그 말을 듣고도 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를 타기 전 대합실에 있는 책방에서 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칼슨이라는 심리 치료사인데 이 책은 1997년 저작으로 미국에서 5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짧은 글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당시에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그 일의 결과에 따라서 세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사소한 일이고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거나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며칠 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내는 여섯 자매 가운데 둘째니까, 언니 하나에 여동생이 넷이나 된다. 자매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일 나쁜 일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둘째 여동생과 무슨 일로 서운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자기가 동생을 생각하는 만큼 동생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3남 4녀의 장남인데, 역시 형제자매 간에 희로애락이 많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