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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여행을 다녀왔지만, 구도에는...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식사 때에 보니 인원이 많이 줄었다. 주말에는 방문객을 받지 않고 이미 들어와 있는 방문객도 특별히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모두 낮 12시까지는 떠나야 한다. 아침 식사 뒤에 나는 오거스틴에게 물어서 공동체 식구 중에서 학부형을 소개받았다.

 

내가 만난 사람은 이솔로몬이라는 사람으로서 매우 착해 보였으며 얼굴에서 평화로움이 배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중학교 3학년생과 초등학생, 이렇게 두 아들이 있었다. 중학생 아들은 지금 황지중학교를 다니는데, 고등학교는 간디고등학교로 보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큰아들은 예수원 입구의 큰길 가에 있는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고 작은아들은 아직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천덕 신부님의 두 딸도 하사미 분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두 딸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는데, 한국말과 영어를 완벽하게 한다고 전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 진학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니, 그분은 대뜸 “기도해 보시오. 어떤 필요가 생기거든 1차적으로 기도해 보시오.”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준다. 기도해 보면 길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공동체 회원은 어떻게 가입하느냐고 물어보니, 지원자가 있으면 제일 먼저 예비 기간이라고 해서 3달 동안 예수원에서 살아 본다고 한다. 그다음 본인이 원하면 1년 동안 수련 기간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원하면 정회원이 되는데, 정회원은 재산을 공유한다고 한다. 들어보니 공유재산제와 기독교 신앙, 그리고 생태마을을 합한 그런 형태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이러한 공동체 마을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저 살고 싶다는 정도가 아니고, 그런 곳에서 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내가 현재 고생하고 있는 이따위 우울증은 당장 사라질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나 혼자서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가 있고 두 아들이 있으며, 아직은 돈을 벌어서 학비도 대고 쌀도 사고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누군들 이처럼 좋은 자연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을까마는 막상 가족이라는 제한 때문에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를 길러 혼인시키는 데까지는 부모로서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았고, 33살에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성경에는 가장의 책임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다. 혼인한 석가모니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서 출가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출가하면서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아들을 낳자 라훌라(우리말로 장애라는 뜻)라고 이름 지었다. 석가모니가 추구하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데에 아들이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석가모니는 아들과 아내를 버리고 진리를 찾아서 비장하게도 출가를 결행하였다. 실상은 무책임한 가출, 또는 비정한 가출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석가모니보다 현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예 혼인 같은 것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거스틴에게 물어보니 황지역에서 낮 1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면 큰길에서 11시 15분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나는 베갯잇과 이불보를 반납하고 2박 3일 동안 먹고 잔 값은 내야 할 것 같아서 헌금함에 몇만 원을 집어넣었다.

 

올라올 때는 일행이 있었는데, 내려갈 때는 혼자서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20분쯤 걸어 나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 옆 길가에 연보라색 벌개미취가 한 송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지금이 벌개미취가 필 시기는 아닌데, 사람으로 말하면 조산아라고나 할까? 자연이나 인간 세계나 규칙을 벗어나는 사례는 으레 있는 법이다.

 

황지역에서 낮 1시에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였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까? 내가 예수원 공동체에서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 외견상으로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이 예수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책을 읽어서도 알고 있다.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 있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행복하기 위하여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내가 30살부터 20년 동안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펴보니,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에 행복할 수 있는 비법이 제시되어 있는 것 같다. 제10계명은 ‘너희는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다. 영어 성경에서 그 구절을 찾아보니 ‘탐내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envy, 곧 ‘부러워하다’라는 뜻이다.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 정확히 번역하면 ‘네 이웃의 소유를 부러워 말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이웃이 가진 많은 재산, 공부 잘하는 자녀, 요리 잘하는 부인 (또는 돈 잘 버는 남편), 비싼 차, 명품 가방, 예쁜 옷, 멋진 가구 등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이웃의 소유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는 결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교에는 끝이 없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만족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내가 당장 아내와 두 아들을 떠나 예수원에 들어가 산다고 해도 남과 비교하는 마음, 이웃의 소유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우울증에 빠진 것은 어느 형태로든지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 부러워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남과 견주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기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2박3일 예수원에 구도 여행을 다녀왔지만, 구도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도를 깨닫는 것은 쉽지 않나 보다. 공자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


 

 

후기: 대천덕 신부는 내가 2000년에 예수원을 방문한 뒤 2년이 지나 2002년에 돌아가셨다. 부인 현재인 여사는 2012년에 돌아가셨다. 그 후 예수원은 대천덕 신부의 아들인 대영복 신부가 맡아서 운영하다가 현재는 회원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예수원에서는 주중에 2박3일 동안 묵으면서 공동체 생활을 체험해 볼 수가 있다. 예수원을 방문하려면 1주일 전에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전화: 033-552-0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