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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전히 고해(苦海)다

금산정사 방문기 12
이뭐꼬의 구도 이야기 1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내친김에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이냐고 연담 거사에게 물었더니,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라고 대답한다. 아니라는 뜻의 비(非)자가 세 개나 나오는 것을 보니 설명을 듣기도 전에 겁부터 나서 더 이상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기차는 거의 100킬로미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테제베인가 TGV인가 하는 고속전철이 프랑스에서 도입되면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다니, 수원에서 광주까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궁금하였다. 이렇게 세상이 빨라지면 정말로 좋은 세상이 될까? 정보 고속도로, 인터넷, 무한 경쟁 등의 단어들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세상은 모든 것이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그런 세상이 될 모양인데, 불교에서는 21세기의 정보화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래서 연담 거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빨라지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보느냐고?

 

그것은 불경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연담 거사로서도 대답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불경이 쓰인 당시에는 1초에 10억 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등장하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정보화 사회와 불교에 대해서 연담 거사와 내가 나눈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불교에서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관심을 가지는 인간의 행복은 욕망의 절제와 무소유에 있다. 하루의 일정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바쁜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잃기 쉽다. 정신없이 뛰다 보면 마음의 평정은 멀어진다. 평안한 마음은 머릿속이 정보로 가득 찰 때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일상생활에서 최소한으로 소비하고 최소한으로 움직일 때 마음의 평안이 얻어진다.

 

정보화 사회가 인간을 행복으로 인도할 것 같지 않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하다.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 참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고서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설혹 좋은 것이라고 해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선(善)이 퍼지는 것은 예로부터 시간이 걸렸다. 자꾸 서두르는 사람,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그는 장사꾼이기 십상이다. 상업적 이익이 있어서 서두르며 큰 소리로 떠든다.

 

정보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모든 가정, 모든 직장, 모든 절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좋은 정보보다는 나쁜 정보가 더 빨리 퍼질 것이다. 온갖 쓸데없는 상품 광고와 음란물이 우리의 마음과 의식 속에 들어와 소란을 피울 것이 염려된다. 인터넷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정말로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경우보다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과유불급이라고,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불교의 ⟪반야심경⟫에서 추구하는 반야, 곧 지혜는 대상의 인식 과정에서 내 것이라는 집착을 없애는 지혜이다. 곧 ‘색즉시공(色卽是空, 인식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는 아니다.)’이다. 여기저기를 검색하여 복사하고 프린트하고 전달을 잘하는 것이 불교에서 추구하는 지혜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보의 바다는 고해(苦海) 곧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이 세상이다. 앞으로 닥칠 정보화 사회는 인간이 더 괴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혜로운 불자들이 할 일이 더 많아지는 그러한 사회가 될 것이다. 비관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깨달은 세상은 원래 생노병사 고해가 아니었던가? 지금이나 2,500년 전이나 인간과 세상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 적용되는 인간에 관한 진리나 21세기 현대인에게 적용되는 진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똑같을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고해다.

 

 

수원으로 돌아온 뒤 여행 가방을 정리하다 보니 송광사에서 산 부채가 나왔다. 여름도 물러가는데 이 부채를 어이할꼬? 생각 끝에 광주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갔던 술집의 주소를 물었다. 나는 큰 봉투에 부채를 넣어 그날 밤 내가 만났던 광주의 아가씨에게 전해달라고 우송했다. 그 부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는 누구에게나 배우는 자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기를 이기는 자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는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자이다.

 

부채를 받고서 그 아가씨가 이 말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연담 거사와 내가 2박 3일의 여행에서 나눈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 않았어도 아가씨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확신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