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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술과 안주를 시키고 아가씨를 한 사람 불렀다. 술집아가씨들은 자주 자리를 옮긴다던데 4달 전에 만났던 미스 나가 아직 있을까?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스 나가 커튼을 열고 들어오다가 김 과장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박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미스 나라고 했던가? 아가씨는 저 양반과 나 중에서 누가 더 좋은가? 좋은 사람 옆에 앉도록 해.”

“두 분 다 좋은데 어떡하죠?”

“김 과장이 너 보고 싶다고 여기 오자고 했는데 내가 양보해야지. 어이 웨이터! 아가씨 하나 더 보내. 영계면 더욱 좋고.”

 

조금 후에 예쁘장한 젊은 아가씨가 와서 박 과장 옆에 앉으며 자기 소개를 했다.

“미스 정이에요”

 

박 과장은 여자의 심리를 잘 아는 남자였다.

“아이고, 내가 여복이 있나 보네. 이런 절세미인을 만날 줄이야! 어쩐지 오늘 운세가 좋더라니까.”

 

곧 이어 마주앙과 마른 안주가 들어왔다.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나수련 씨. 내가 기억나나?”

“그럼요, 지난 6월 17일에 들리셨잖아요.”

“어떻게 날짜까지 기억해?”

“일기장에 써 있는 걸요.”

“일기를 써?”

“매일은 못 쓰지만 계속 쓰려고 노력은 해요. 그날 선생님께서는 가을이 되면 한번 다시 오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셨잖아요.”

“아, 그랬었지. 오후에 창밖에 가을비가 내리는 것을 보니 수련이가 생각나서 찾아왔지.”

 

김 과장은 이 아가씨가 보통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여자로서 일기를 쓰는 여자가 대한민국에 몇 사람이나 될까? 미스 정의 손금을 보아주고 있던 박 과장이 끼어들었다.

 

“김 과장!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자 건배합시다.”

“그래요. 참, 박 과장님 이번에 승진하신다고 소문이 돌던데 축하합니다. 건배합시다.”

“인사란 까놓고 보아야 알지요. 하여튼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미스 나가 김 과장에게 말했다.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니 반가워요.”

“나도 반가워. 가을이 되면 남자가 바람나는 모양이지.”

“저도 낮에 바람이 불며 비가 오는 것을 보니 왠지 쓸쓸해지던데요.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약간은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김 과장이 어조를 가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미스 나가 작은 목소리로 받았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김 과장이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아니 어떻게 알았어?”

 

미스 나가 조용히 과거를 회상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지훈의 낙화(落花)라는 시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문예반에 들었었죠. 한용운의 시와 조지훈의 시를 특히 좋아했어요.”

 

김 과장은 어떻게 해서 이 아가씨가 지금 이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