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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드디어 독도를 보았습니다

‘독도대첩’, 홍순칠과 독도의용수비대 일본 함정 물리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독도에 관한 뉴스, 일본이 독도에 대해 뭐라고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 노래 '홀로 아리랑'을 흥얼거리게 됩니다. 1990년 무렵부터 대중가수 서유석의 노래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원래 한돌이란 분이 작사ㆍ작곡한 이 노래는 가사와 분위기 때문에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2005년 조용필 씨의 평양공연에서 북한 측이 앙코르곡으로 이 노래를 요청해 부른 이후 더욱 국민의 사랑을 받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저는 1980년대 후반 방송기자로 일할 때 수원의 서지학자인 이종학 선생이 일본의 독도침략 야욕에 맞서기 위해 발굴한 독도 관련 귀중 자료들을 뉴스로 전하는 과정에서 독도문제를 좀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래서 일본의 소유권 주장에서 지켜내야 하는 우리의 소중한 영토라는 생각에 이 노래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도는 많은 국민처럼 꼭 가 보아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

 

 

지난주 11월 21일은 ‘독도대첩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일본은 한반도의 전란을 틈타 세 차례에 걸쳐 독도에 무단 상륙하는 불법 영토 침략을 공공연히 저지르곤 했습니다. 이에 6.25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상처를 입고 대한민국 육군 특무상사로 전역한 울릉도 출신 홍순칠이 자기 재산을 털어 박격포와 중기관총 등 각종 무기와 장비를 사서 울릉도에 살고 있던 청년들과 함께 1953년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고 혹독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독도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54년 11월 21일 일본의 비행기와 1천 톤급의 일본함정 3척이 독도로 접근해 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때 홍순칠 대장의 권총 신호에 따라 수비대가 박격포 등을 발사해 첫발이 일본 순시선에 명중했고, 이에 놀란 일본 함정들과 비행기가 도망쳐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독도대첩’입니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에서 정문부 장군이 이끄는 의용군들이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을 격퇴한 이후 정규 군인이나 경찰이 아닌 민간인 의용군이 일본에 거둔 가장 혁혁한 전공일 것입니다. 그렇게 독도를 지켰습니다. 그 ‘독도대첩’ 69돌을 맞는 지난 11월21일 저는 독도를 가 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독도에 가려면 울릉도에서 배를 타야지요. 울릉도 사동항에서 아침 9시 반에 독도로 가는 씨플라워호를 탔습니다.

 

 

 

씨플라워호는 2천 톤 급에 정원이 450명이나 되는 꽤 큰 배인데 이날도 300여 명이 독도를 보기 위해 같이 갔습니다. 가는 동안 선내방송으로 나오는 '홀로아리랑' 노래는 장엄한 기분을 불러일으킵니다. 태극기를 손에 들거나 머리에 꽂은 승객들은 독도를 밟는다는 희망에 예정보다 30분이 더 걸린 2시간의 뱃길을 잘 참습니다.

 

마침내 독도에 다 왔다는 안내방송이 들립니다. 다들 들떠서 일어날 독도를 밟을 채비를 했지만, 그러나 곧 노을성 파도가 높아 접안이 안 된다는 방송으로 선내는 일순 탄식과 한숨으로 가득 찹니다. 대신 선미 쪽과 선 옆구리의 갑판 쪽에서 충분히 보라고 해서 다들 손전화기를 들고 몰려 나갑니다.

 

이 정도 파도로도 접안이 안 된다고 하니 아쉽기만 합니다. 선미의 갑판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잘 보일까 해서요. 배는 흔들리고 사람들은 많습니다. 가림막이 시야를 방해합니다. 안되겠다고 1층으로 내려가니 거기는 시야가 좋지만, 승객들 사이에서 촬영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감격입니다. 여름밤 하늘보다도 더 푸른 바닷물 저편에 두 개의 큰 바위가 보입니다. 중간에 작은 암초들이 있지만 더 이상 가까이 가 볼 수는 없지요. 아쉽지만 그것으로 가슴속의 한을 조금 풀었습니다. 배는 독도 쪽으로 시야를 열어주지만, 접근은 안 됩니다. 생각 같아서는 조용한 뱃전에서 애국가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은 어려웠습니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부모도 많았습니다. 후손들도 독도를 길이 지켜야 한다고 가르쳐주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역시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야 한다니... 69년 전 일본을 물리치고 수비대원들이 지르던 그 감격의 함성을 듣고 싶었고, 독도가 한국령이라고 바위에 새긴 큰 글씨도 보고 싶었고, 비바람과 추위와 배고픔을 참고 독도를 지킨 의용수비대원들에게 바로 그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싶었는데... 그동안 독도를 위해 저도 방송을 많이 했는데 "동해의 용왕이시여 조율 한 번 해서 상륙하게 해주세요" 하며 기원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울릉도에 왔다가 독도 자체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만도 큰 행운이라는 생각에, 가능한 한 독도를 눈으로 오래 보고 그 감동과 감격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자꾸 배가 흔들려 뭔가를 잡고 있으려니 얼굴이 경직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보자 독도여! 다시 보자! 얼마나 어렵게 온 길인가? 1972년 대학 시험 보고 오려고 했다가 폭풍우로 올릉도도 못 오고 말았었는데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서 울릉도에 오고 드디어는 독도에까지 와 보는 기쁨을 맛보지 않는가?

 

30분쯤 머물던 배가 다시 울릉도로 돌아갑니다. 독도를 떠나면서 저는 이종학 선생님께 마음속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평생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모아 이를 울릉도에 기증해 독도박물관을 짓게 하고 2002년 11월 24일에 세상을 뜨신 이종학 선생님은 죽어서도 독도를 지키겠으니, 독도 앞바다에 유해를 뿌려달라고 하셨기에 이 바다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독도를 지키고 계실 것입니다.

 

 

 

 

 

멀어져가는 독도여! 잘 있으세요. 이종학 션생님, 독도를 잘 지켜주세요!

 

돌아오는 뱃길에는 한층 높아진 파도가 뱃전을 때립니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 같습니다. 독도가 저를 쉽게 놔주지 않는군요. 독도여 꼭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계시며 우리를 지켜주세요!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