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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고구려 박작성이 호산장성으로 둔갑된 현장에서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백두산 답사단' 취재기 -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백두산 답사단‘ 답사 넷째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압록강변에 있는 중국명 호산장성(虎山長城, 후산창청)에 도착했다. 호산장성은 원래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이었던 것을 중국이 동북공정의 한 작업으로 ‘만리장성의 기점을 날조’한 대표적인 역사 현장의 한 곳이다. 중국은 2009년, 진장성(진시황 때 축조한 부분)과 명장성(명나라 때 축조한 부분)으로 대표되는 만리장성의 전체 길이와 위치를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이때 단둥시에 있는 호산장성을 집어넣음으로써 만리장성의 길이는 1,000킬로나 늘어났다.

 

 

 

버스가 호산장성을 따라 달리다가 주차장에 서기 전까지 가이드는 우리에게 오른쪽 차창을 보라고 안내했다. “여러분 오른쪽에 보이는 저 산이 호랑이 모양입니까? 중국에서는 저 산의 모습이 호랑이 모습의 산이라고 해서 호산(虎山)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산성이 호산장성이랍니다.”라고 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산을 올려다보니 호랑이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형태로 전북 진안의 마이산 모양을 하고 있었다.

 

호산장성의 입구에 도착하여 검표를 마치고 산성 입구에 들어서니 성인 키 몇 배 크기의 육중한 조형물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 모습을 보니 만리장성 기점이라고 만들어 놓은 시안(西安)에서 보았던 조형물과 유사하다. 개망초꽃이 활짝 핀 꽃밭을 지나 산성 입구에 이르는 곳곳에 호산장성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중국어로만 표기되어 있다. 장수왕릉이라든지 광개토대왕릉 등의 안내판에는 한글을 비롯한 5개 국어 안내판이 서 있는 것에 견주면 이곳은 중국인만을 위한 안내판 같았다. 조금 내용이 길지만 중국어 안내문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근원을 살펴보면 그동안 사람들(중국인)은 산해관을 만리장성의 기점으로 여겨왔으며 이곳(호산장성)의 만리장성 기점을 몇백 년 동안 매몰시켜 왔습니다. 이곳(호산장성)은 랴오닝성 문물고고학 전문가가 다년간의 고고학 조사를 거쳐 호산장성 유적을 발견하였고 그 기초 위에 전문가 위원회의 논증을 거쳐 국가문물국의 비준을 받은 뒤 최종적으로 이곳(호산장성)이 만리장성의 기점으로 정식으로 확인되었으며, 매스컴을 통해 전 세계에 만리장성의 동쪽 끝 기점은(산해관이 아니라) 랴오닝 단둥 압록강변의 호산이란 것을 알렸습니다.

 

호산장성 유적의 고고학적 발견은 고고학계의 중대한 일로, (그동안) 만리장성 동쪽의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는 잘못된 설을 바로잡고 이곳(호산장성)이 자리한 압록강 역사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였습니다. 만리장성은 동쪽으로 랴오닝성 후산, 서쪽으로 간쑤성 자위관, 동쪽으로 랴오닝성, 허베이성, 톈진성, 베이징, 산시성, 네이멍구, 산시성(닝샤), 간쑤성 및 칭하이성의 10개 성(자치구 및 중앙정부 직할시)의 156개 현(縣)을 통과합니다. 지금 보시는 호산장성은 기존의 유적을 복원한 것으로 만리장성의 흐름, 적루의 위치 모두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세계 유형문화유산으로서 이미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호산장성은 만리장성으로 밝혀졌습니다.” - ( ) 안 내용은 기자가 보탠 것임-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을 뚱딴지처럼 만리장성의 시발점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중국의 만리장성은 1,000킬로미터가 늘어났다. 왜 이들은 이렇게 남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이유도 없는 동북공정이 그 시발점이다.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중국 동북부(만주)에 있었던 고구려 등의 나라들이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정부 주도의 수정주의적 역사 왜곡을 말한다.

 

박작성에 대한 우리 쪽 기록으로는 《고구려본기》에 박작성 이름이 나온다. 《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寶藏王)>에 보면,

 

“〔7년(648) 9월에〕 태종이 장군 설만철(薛萬徹) 등을 보내 쳐들어왔다.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도달하여 멈추어 진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이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이를 막았다. (가운데 줄임) 박작성은 험준한 산에 의지하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지만 빼앗지 못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장에서 중국이 왜곡해 놓은 호산장성을 올려다보니 산성은 그다지 험준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산성 뒤편이 낭떠러지로 바로 압록강이 턱 버티고 있는 천하의 요새였다. 이러한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泊灼城)이 스리슬쩍 만리장성의 기점인 호산장성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고구려본기> 편에 나오는 박작성(泊灼城) 해설에 따르면, “박작성(泊灼城)은 압록강 하구의 고구려성이다.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호산산성(虎山山城)에 비정된다. 현재 중국에서는 호산산성을 명나라 천리장성의 시발점으로 보고 장성 일부를 복원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고구려시대의 우물 유적이 발굴된 바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답사단은 호잔장성(600미터) 꼭대기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중간 지점까지 올랐다. 이날은 장맛비가 약간 소강상태라 우비와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았지만, 그 대신 비탈진 성곽을 오르는데 비지땀이 온몸을 적셨다. 고구려 역사의 왜곡된 현장이라 그런지 이날따라 무더위는 더욱더 답사단을 괴롭혔다. <취재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