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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좋게는 제로섬 게임, 나쁘게는 투기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 번 찍어도> 3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덟 번째 만남

 

김 교수는 그때까지 계속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데 어떻게 거부한다는 말인가?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참고 다닐 수밖에. 전에는 입시가 전기와 후기로 2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제도가 바뀌어 가나다라 군으로 4번의 기회가 있게 되었다. 수험생의 처지에서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아들의 수능 점수로는 아무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어렵다는데, 아들은 원서를 한번 넣어 보잔다.

 

김 교수는 조건을 붙였다. 가군과 나군은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되 다군은 김 교수가 근무하는 수도권의 S대로 원서를 넣자. 수도권의 S대에 합격하면 교직원 자녀로서 등록금이 면제되니까 조건이 좋았다.

 

이제는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이번에는 김 교수가 미스 최에게 전화했다. 만난 지 1주일도 안 되었는데 웬일일까 미스 최는 의아해한다.

 

“웬일이에요 오빠?”

“갑자기 네가 만나고 싶어서 전화했다”

“오빠, 나 《아리랑》 아직 다 못 읽었어요.”

“《아리랑》이 그렇게 중요하냐?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

“알았어요, 오빠. 그런데 오빠 바람났나 봐.”

“다 네 탓이다, 요년아. 네가 너무 예쁘니까 그렇지.”

 

호텔에 도착한 것이 5시 반인데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다. 또 늦나보다. 그래서 제일 안쪽에 앉아서 기다렸다. 마침 옆자리에 신문이 있어 읽어 보았다. 재테크 특집기사가 나와 있었다. 새해를 맞아 어떻게 하면 돈을 늘릴 수 있는가를 여러 가지로 해설한 특집기사가 6면에 걸쳐 실려 있었다. 은행별로 어떠한 예금이 있으며, 증권은 어떻고, 회사채는 어떻고, 국공채는 어떻고, 신상품으로 나온 MMF는 어떻고 등등. 김 교수가 잘 모르는 용어도 많았다.

 

김 교수는 재산을 불리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주식만 해도 그렇다. 주변에서는 더러 주식을 사서 재미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손해를 본 사람은 말을 잘 안 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손해를 본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을 것이다.

 

언젠가 나이 많은 학생이 야간학과에 편입하여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편입생은 직장인이었는데, 큰아들이 중학교 학생이었다. 이 직장인 학생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대학 졸업장을 따겠다고 공부를 시작했다. 대견한 일이다.

 

어느 날 그 늙은 학생과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주식을 좀 한단다. 김 교수가 듣고 보니 주식투자라는 것이 김 교수의 인생관과는 맞지 않았다. 주식투자를 하게 되면 자연히 주가가 매일 오르고 내리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 늙은 학생의 경우에는 아침 조간신문에서 자기가 가진 주식의 주가를 확인하고, 석간에서도 확인하고, 그사이에 궁금하여 오전 장에 한 번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오후 장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곧 하루에 4번 주가의 등락을 확인한단다.

 

그런 것은 김 교수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하루에 4번씩이나, 주가가 오르면 히히 좋아하고 주가가 내리면 찡그리고 한다니, 어디 그게 군자가 할 짓인가? 김 교수가 막연히 알기로는 주식투자란 여유 자금으로 주식을 사두었다가 연말에 배당금이나 받는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급한 현대인들이 어디 배당금 바라고 주식투자를 하나? 끊임없이 경기전망을 분석하여 주식을 사고팔고 하면서 그 차익금을 노린다고 하니 김 교수의 생각으로는 그게 투기이지 어디 투자인가? 내가 산 주식이 오르면 그 주식을 판 사람은 그만큼 손해를 보는 셈이니 결국 주식투자는 새로운 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주식투자는 기본적으로 ‘너의 손해는 나의 이익’이 되는 그런 구조이다. 좋게 말해서 제로섬 게임, 나쁘게 말하면 투기라고 볼 수 있다.

 

 

언젠가 강남의 돈 있는 주부들이 아침밥 먹고 나서 너도나도 증권거래소로 향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결코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요즘에는 모든 경제 활동이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투기화하는 것 같다. 투기는 나쁜 행위인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는 투기꾼이 떼돈을 버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모두 돈독이 올라버렸다. 사람들의 대화가 인간 중심이 아니고 경제 중심으로 변하였다. 돈, 부동산, 땅, 증권, 금리, 이자, 적금 등의 말이 자주 대화에 등장한다. 우정, 사랑, 여행, 경치, 낭만, 여유, 예술 등의 단어는 자꾸 사라지고 빛이 바래간다.

 

슬픈 일이다. 세상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어찌 보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우리들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이 우리들이 현재 사는 세상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김 교수는 그런 면에서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론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