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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미스 K는 처음으로 K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1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해마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이 되면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스승에게 꽃을 선물하는 학생이 전에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도 많이 변하였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나날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수는 그저 지식의 전달자에 머물고 학생 또한 ‘나는 등록금 내고 당신에게 취업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겠다’라는 자세로 대한다. 스승에게서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고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하는 일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전통은 끈질긴 것이어서 개인적인 선물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학생회에서 꽃이나 넥타이 등의 가벼운 선물을 주는 일은 여전했다. 1998년 스승의 날에 K 교수는 주간 학생회장과 야간 학생회장으로부터 각각 장미와 안개꽃이 섞여 있는 꽃다발을 받았다. (당시 K 교수의 학과는 주간 40명, 야간 40명 정원이었다. 주야간이 있어서 학생회장이 두 명이었다.)


 

 

K 교수는 꽃다발 하나는 풀어서 연구실에 있는 꽃병에 꽂고, 나머지 한 다발을 들고서 밤 10시쯤 미스 K를 찾아갔다.

 

“마침 스승의 날이라서 꽃다발을 받았는데, 너무 많아서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내가 산 것은 아니지만 거절하지 말고 받아 주세요.”

“아, 고맙습니다. 저는 꽃을 참 좋아해요.”

“말하는 꽃이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K 교수님!”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미스 K는 처음으로 호칭을 '교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K 교수님’이라고 이름을 불렀다. 우리말은 영어와 달리 상대방을 호칭하지 않고서도 대화가 가능하다. 영어에서는 반드시 ‘I’ 또는 ‘You’라는 주어가 필요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주어를 생략하고 이야기해도 말이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미스 K는 처음으로 K 교수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것은 남녀 사이에서 대단한 진전이다. K 교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 미녀는 나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구나.

 

남녀가 꽃을 주고받으니 대화는 술술 잘 풀렸다. 미스 K는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 많은 것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뉴욕시에 있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교육심리학 석사 공부를 했다고 한다. 뉴욕과 LA에서 각각 2년 정도 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1년에 서너 번은 나라 밖 여행을 다니고. 글재주도 있는 모양이었다. 몇 년 전에 《진하게 블랙으로》라는 소설책을 내기도 했단다. 그럼 한 권 달라고 했더니, 어떻게 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다 나누어 주고 자기도 가진 게 없단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골프를 치느냐고 물어보니 대학 다닐 때 배웠다고 한다. 부잣집 딸이었나 보다. 그 밖에도 피아노, 승마, 수영, 볼링에다가 바둑까지 둘 줄 안다고 한다. 못 하는 게 없었다. 마지막 금상첨화로 책 읽기를 즐겨한다니,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가 다재다능한 재원으로 교육한 모양이다. 자녀는 아들만 둘인데 현재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그렇지만 끝내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K 교수 역시 궁금증을 꾹 참고서 남편에 대해서는 끝까지 물어보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