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2 (일)

  • 흐림동두천 23.5℃
  • 흐림강릉 30.0℃
  • 서울 24.7℃
  • 대전 24.5℃
  • 대구 28.9℃
  • 흐림울산 27.3℃
  • 광주 26.0℃
  • 부산 23.5℃
  • 흐림고창 25.6℃
  • 흐림제주 29.7℃
  • 흐림강화 22.9℃
  • 흐림보은 24.4℃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5℃
  • 흐림거제 24.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닫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가는 길 ‘문명 보고서’

‘열하일기(熱河日記) 답사기’ 여는 글

닫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가는 길 ‘문명 보고서’ 1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제52차 고(옛)조선유적답사회 답사기

열하일기를 따라서 배우는 길위의 인문학 역사답사

글, 사진 안동립(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동아지도 대표)

날자 : 2025년 4월 19일(토) ~ 4월 28일(월), 9박 10일

단원 : 24명, 대장 안동립, 단원 강경숙, 강계두, 강명자, 궁인창, 김완숙, 김제일, 김희곤, 문부산, 박석룡, 안옥선, 엄수정, 윤광일, 이래현, 이미선, 이우언, 이윤선, 이효웅, 정운채, 조성호, 조평규, 최성미, 하영택, 홍승원

안내 : 황일만, 손광휘, 운전기사 : 장개(张凯)

 

 

※ 연암 박지원의 일정에 사용된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양력으로 보면 한 달 정도 늦은 일정으로 보면 된다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울어 볼 만한 장소로구나!”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신단 40명과 하인 장복, 창대 등 모두 285명에 달하는 대규모 일행이 나팔을 불면서 창덕궁 앞 돈화문을 출발하였다.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떠나 6월 6일 평양 대동문을 거쳤고, 6월 24일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에서 한둔하였다. 이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심양(성경)에 머물렀고, 7월 23~24일에는 산해관을 지나, 8월 1일~5일에 북경(연경)에 도착하였다.

 

 

 

당시 황제가 열하에 있었기에, 사행단 가운데 74명은 다시 열하(승덕)로 향해야 했다. 이들은 4일 밤낮 동안 이동하여 5일 만인 8월 9일 열하에 도착하고, 15일까지 머물며 황제를 알현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1780년 10월 27일, 출발한 지 약 5달 만에 무사히 한양으로 돌아왔다.

 

이 여정의 전체 이동 거리는 한양에서 의주까지 1,080리, 단동에서 북경까지 2,030리, 북경에서 열하까지 700리를 합쳐 편도 모두 3,810리에 달했다. 왕복으로는 7,620리, 약 3,048km에 이르는 실로 방대하고 고된 대장정이었다.

 

《열하일기》에 담긴 기록은 놀라울 만큼 치밀하고 상세하였습니다. 운행 날짜와 기후, 역참 정보와 아침과 점심 식사 장소, 묵었던 숙박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 역사적인 장소를 기술하고, 사행단의 활동 모습, 심지어 술을 마신 일화까지, 여정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다.

 

우리 답사단은 연암의 이 방대한 기록인 《열하일기》를 길잡이 삼아 중국 현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연암 선생의 예리한 관찰력과 시대를 앞선 기록 정신에 깊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의 생생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창덕궁 돈화문, 열하일기 출발 재현식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낮 1시 30분, 고조선유적답사회 회원 아홉 명(김봉순, 이상향, 김희곤, 조성호, 조평규, 박인석, 정의영, 전찬호, 안동립)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에 모여 열하일기 답사 출발 재현식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병자호란의 비극적인 역사를 되새기고,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의미 있는 답사의 시작을 알렸다.

 

사행의 배경 : 병자호란(丙子胡亂, 인조 14년, 1636년 12월 28일 ~ 1637년 2월 24일)이라는 아픈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하였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와 친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하였고, 이는 결국 청 태종 홍타이지가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조 임금은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패배했으며, 결국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례'라는 치욕적인 굴욕을 당했다.

 

이 때문에 삼전도청태종공덕비가 세워졌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이 8년 동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야 했다. 그리고 많은 백성과 20여만 명에 달하는 공녀들이 청나라로 끌려가는 비극을 겪었다. 이번 답사는 이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속에서 열하일기가 탄생한 배경을 이해하고자 마련되었다.

 

 

지하철로 떠나는 역사 답사

 

우리 답사회원이 모여 서울의 지하철을 이용하여 병자호란과 관련된 역사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1. 삼전도비 : 지하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석촌호수 서호에 있는 ‘청 태종 공덕비’를 찾아갔다. 인조 임금의 ‘삼궤구고두례’를 한 치욕의 현장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비문 앞면은 몽골어로, 뒷면은 한문으로 ‘청태종공덕비’ 비문이 써져있다. 이 비는 여러 번의 풍상을 겪어 흐릿하게 비문이 남아있다.

 

 

2) 창덕궁 정문 돈화문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앞에 있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사행단이 실제로 출발했던 장소다. 우리 답사단은 이곳에 모여 사행단이 나팔을 불며 출발하였던 장면을 떠올리며, 재현식을 진행하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3) 영은문(迎恩門) 주초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앞에 서 있는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를 답사하였다. 고가도로 건너편 영천시장 부근에 청나라 사신이 머물렀던 모화관(慕華館) 터인데, 현재 재개발로 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4) 홍제원 터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 새마을금고 앞에 있는 홍제원터 표석을 돌아 골목길로 50m쯤에 있는데, 현재 홍제동 138번지 일대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홍제원은 1394년~189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홍제원 안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들이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