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진회숙 음악평론가가 이번에 상상스퀘어를 통해 《길 위의 클래식》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그동안 20권 가까이 음악 관련 책을 냈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음악 관련 책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더구나 제목에 ‘클래식’이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이번 책은 제목의 ‘클래식’보다는 ‘길’에 더 방점이 찍히는 책입니다. 곧 기본적으로는 여행서인데, 제목에서 보듯이 여행하면서 그 여행지와 관련되는 음악 이야기 또는 여행지에서 떠오르는 음악 이야기도 하는 책입니다.

아! 참 진 선생의 책 중에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책도 있네요. 《기쁜 우리 젊은 날》이란 책인데, 이 책은 1970년대 중후반 긴급조치와 계엄 등으로 엄혹했던 군부독재 치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학생운동 1세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대음대를 나와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는 진 선생이 이런 책을 냈다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이지요? 진 선생은 대학시절 야학교사를 하면서, 학생운동에도 잠시 몸을 담았었지요.
저는 예전에 진 선생의 음악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제가 잘 모르던 음악을 접하는 즐거움과 진 선생의 맛깔스러운 강의에 되도록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들으려고 하였었지요. 그리고 진 선생의 강의에 빠져, 진 선생 책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진 선생이 이번에 새 책을 냈다고 문자가 왔기에, 바로 샀습니다. 진 선생은 이미 2021년에도 《영화 속 영국을 가다》라고 하여, 영화 속 영국을 여행하며 음악이야기도 하는 책을 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나라만 가는 것이 아니고,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군요.
이번 책은 유럽의 대표적인 네 나라와 북유럽 이야기입니다. 각 장의 제목을 보면, 1장 이탈리아 <음악이 깃든 시간 속을 걷는 여행>, 2장 프랑스 <예술의 나라에서 만나는 사색의 길>, 3장 독일 <역사와 음악이 빚어낸 풍경 속 시간의 울림>, 4장 영국 <낡은 거리와 새로운 리듬이 공존하는 이야기의 문>, 5장 북유럽 <거대한 자연과 숭고한 음악을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각 나라의 특색을 제목에 잘 표현했네요. 진 선생의 글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제 생각에는 ‘맛깔스러움’입니다. 이번 책에도 진 선생의 특유의 맛깔스러움이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1장 이탈리아 편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은 나폴리 폼페이 유적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나폴리’ 하면 먼저 떠오르는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 이야기를 합니다. ‘푸니쿨리 푸니쿨라’는 나폴리 인근에 있는 베스비오 화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 이름입니다. 19세기 말에 토머스 쿡이라는 사업가가 설치했는데, 쿡이 케이블카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노래가 ‘푸니쿨리 푸니쿨라’(루이제 덴차 작곡, 피피노 투르코 작사)입니다. 그러니까 전래 민요가 아닙니다. 그동안 저는 뜻도 모르고 흥얼대기만 했는데, 진 선생 책을 통하여 제대로 가사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빨간 불을 뿜는 저기 저 산, 올라가자!
그곳은 지옥같이 무서운 곳, 무서워라.
산으로 오르는 전차를 타고 누구든지 올라가네.
피어오르는 연기가 손짓을 하네. 올라오라! 올라오라!
그런데 서기 79년의 폭발로 폼페이가 화산재에 묻혀 사라졌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화산인데 어떻게 여기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생각을 했지? 실제 화산 폭발로 관광객이 죽거나 다지지는 않았다지만, 1906년에도 화산 폭발이 있었고, 1944년에도 베스비오 화산은 폭발하였습니다. 그래서 케이블카는 1906년 이후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1944년 완전히 운행을 끝냈다는군요.
프랑스 편에서는 프랑스 남부의 샹베리에 있는 장 자크 루소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루소의 집에 가면 루소가 직접 설계했다는 정원과 과수원을 볼 수 있고, 또 포도밭 근처 루소가 아침마다 산책하던 길은 ‘장 자크’ 길이라고 불린답니다. 그런데 ‘루소’ 하면 계몽주의 철학자를 먼저 떠올릴 텐데, 루소의 젊은 시절 꿈은 음악가였다는군요. 단순히 꿈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오페라도 작곡하였습니다.
첫번째 작곡한 오페라 <사랑의 시신들>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뒤에는, 백과사전학파 달랑베르의 권유로 백과전서의 음악 항목을 집필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 후 1752년에 작곡한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는 대본까지 직접 썼는데, 이번 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루소의 이 오페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결혼피로연에서도 공연될 정도였으니까요.
진 선생은 독일 편에서는 포츠담의 상 수시 궁전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상 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지은 궁전인데, ‘상 수시’는 불란서어로 ‘근심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른바 ‘프랑스 빠’였기 때문에 궁전 이름을 프랑스어로 지었답니다. 이렇게 프랑스에 심취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렸을 때부터 문학과 예술, 학문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이런 아들이 못마땅하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왕자인 아들을 때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네요.
이런 아버지에 견디다 못한 프리드리히는 친구 2명과 영국으로 도망칠 계획까지 세웠는데 들통이 납니다. 한 친구는 무사히 도망쳤으나 왕자와 또 한 친구는 붙잡힙니다. 그런데 임금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이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하네요. 다행히 신하들의 만류로 왕자는 사형을 면하지만, 친구는 끝내 참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런데 임금은 프리드리히에게 형 집행을 그대로 지켜보게 하는데, 친구 목이 날아가기 직전에 왕자는 기절해 버렸답니다. 정말 잔인한 임금이군요.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년 28살에 왕위에 오릅니다. 임금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거리낌 없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임금은 생전에 무려 300여 곡을 작곡한 작곡가이며, 플루트 연주도 잘하였답니다. 그런데 임금이 작곡한 곡에 대한 음악적 평가는 꽤 박했다네요. 옆에서 아첨 떠는 평론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상 수시 궁전을 짓고나서, 왕은 볼테르를 초대합니다. 왕은 볼테르의 열렬한 팬이었거든요. 볼테르가 상 수시 궁전에 머물면서 한 일은 임금이 프랑스어로 지은 시를 교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는 교정 업무에 볼테르도 지겨워하지요. 볼테르는 임금의 시를 ‘더러운 린넨’으로, 자신의 일은 ‘세탁’으로 비유하였다네요. 그러다가 그게 임금의 귀에 들어가면 어떡하려고?
상 수시 궁전에 초대된 인물 가운데는 유명한 난봉꾼 카사노바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프리드리히 임금이 촉촉한 눈빛으로 카사노바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네처럼 잘생긴 남자를 몇 년 만에 보는지 모르겠네. 듣자 하니 자네는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던데...” 이게 무슨 소리? 순간 카사노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그동안 카사노바는 상 수시 궁전에 드나드는 사람 가운데 여자가 없는 것이 이상했다네요. 그래서 카사노바는 자기의 의심이 사실임을 깨닫고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답니다. 후후! 하마터면 천하의 카사노바가 임금에게 자기 엉덩이를 대줄 뻔했군요.
글이 너무 길어지니 영국은 건너뛰고 북유럽에서 하나만 얘기하겠습니다. 북유럽 편에서 진 선생은 먼저 건축 마니아에게 환상을 선물한 도시 노르웨이 오슬로에 관해 얘기합니다. 여기서 ‘건축 마니아’란 진 선생 자신을 말합니다. 진 선생은 멋진 건물만 보면 온몸에 엔돌핀이 솟는 듯한 행복을 느낀다네요.
진 선생은 오슬로에 오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뭉크를 보러 뭉크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뭉크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누구나 <절규>를 떠올리겠지요? 그의 정신 상태가 반영된 그림인데, 이 그림뿐만 아니라, 뭉크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음울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뭉크의 가족병력이 있습니다. 뭉크가 5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었고, 그러자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정신분열증에 걸립니다.
그리하여 뭉크는 한 살 위인 누나에 의지하여 살았는데, 그 누나도 15살에 죽습니다. 이뿐입니까? 남동생은 폐렴으로 죽고, 여동생은 정신분열증에 걸립니다. 뭉크도 끝내 정신분열증에 걸리지요. 그래도 뭉크는 81살까지 살았습니다.
진 선생은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슈만의 <유령 변주곡>을 떠올립니다. 슈만도 뭉크처럼 정신질환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슈만은 43살부터 환청에 시달리면서, 이를 잊기 위해 아편을 먹습니다. 아내 클라라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답니다. 이렇게 환청에 시달리면서 작곡한 곡이 <유령 변주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뒤 슈만의 환청은 더 심해져서, 어느 날 아침 자기 몸에 손을 대려는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실내화에 셔츠 차림으로 뛰쳐나가 라인강에 몸을 던집니다.
다행히 근처 어부들이 건져 올렸지만, 또다시 뛰어들려고 하여 어부들이 슈만을 꽉 붙잡아야 했었다네요. 9일 뒤 슈만은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2년을 폐인처럼 살다가 46살의 나이에 세상을 뜹니다. 슈만은 무슨 이유로 환청에 시달렸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나오지만, 명확한 것은 모른답니다.
진 선생은 <유령 변주곡>이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아 있으며, 깊고 우울하고 절망적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유튜브에서 이 곡을 찾아 듣는데, 과연 진 선생님 설명처럼 진한 우울함을 느끼겠네요.
길 위의 클래식! 이번에도 맛깔스러운 진 선생의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책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4가지만 맛보기로 말씀드렸는데, 책에는 맛깔나게 버무려진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 나옵니다. 책이 523쪽으로 좀 두껍기는 하지만, 한 번 손에 들면 덮기 싫을 만큼 재미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진회숙 평론가와 함께 함께 유럽의 길을 걸으며 진 선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지 않으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