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번 고양시 대자동 건자산 자락에 있는 경혜공주와 정종의 무덤을 답사하였었다. 답사 뒤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건자산 건너편의 대자산 자락에는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 증손자 밀풍군의 무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밀풍군 무덤과 같은 산등성이 상에서 불과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명나라 출신 굴씨 여인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명나라 여인이 조선 땅에 묻혔다는 것만으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아니다. 굴씨 여인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를 모시다가, 소현세자를 따라서 조선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의문의 죽음을 – 나는 소현세자의 돌연한 죽음에 아버지 인종이 관련되어 있다는 강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 당했을 때도 돌아가지 않고 일생을 마치고 조선 땅에 묻혔다. 오직 소현세자만을 바라보고 낯선 조선까지 따라온 명나라 여인이 이곳에 묻혀있다니, 어찌 나의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있으랴. 더군다나 근처에 묻혀있는 소현세자의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 순탄치 못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지난번처럼 차를 관산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에는 항일무장투쟁을 한 홍범도 장군과 그의 아내 단양이씨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범도(1868~1943) 장군은 한동안 언론에 자주 오르내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홍장군의 아내가 단양 이씨(1874~1908)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단지 ‘단양 이씨’로만 알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홍장군의 아내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이들 부부는 서로 만나기 전에 비구와 비구니였습니다. 비구와 비구니였다고 하니, ‘으잉?’하며 갑자기 눈동자가 커지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홍장군의 활동에 대해 많이 알려졌지만 그래도 홍장군이 한때 승려였다는 것까지는 그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요? 그러면 홍장군이 어떻게 하여 스님이 된 것일까요? 홍장군은 출가 전 1883년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하였는데, 군교들의 부정부패와 사병에 대한 학대를 보다못해 그중 한 군교를 때려눕히고 병영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해도 수안군 총령 아래에 있는 제지소에서 3년 동안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공장주가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대하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열정과 집념의 여인, 이윤옥 교수님이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니까, 아부성 발언을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벌써 십수 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낸 것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10권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경기의 얼, 여성독립운동가 40인의 삶》,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를 냈고,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도 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여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전에는 ‘독립운동’하면 남성들을 먼저 떠올렸고, 실제 독립운동사도 남성들 위주도 되어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이교수는 이에 여성독립운동가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일에 뛰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