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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초등학교 2학년 준호와 편지로 세상을 여는 사람들

   

“항상 저를 위해 아침마다 밥 챙겨주시고 제가 아플 땐 밤새 간호해주시는 할아버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발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빨리 어른이 되어서 효도 할게요. 이제는 할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은 느끼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매일 느낄 수 있으니 저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잠시지만 할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앞으로는 할아버지가 힘들지 않도록 제가 알아서 척척 하는 손자가 되겠습니다.”

남들은 다 있는 컴퓨터 하나 없이 할아버지랑 외롭게 살아가는 준호의 편지는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준호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으로 어머니 없이 할아버지와 둘이서 외롭게 살아가지만 밝고 아름다운 일상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써내려가 편지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깜찍한 아이였다.

나는 지난 11월 29일 안양우편집중국 대회의실에서 있었던 제2회 경기·인천지역 편지쓰기 대회 시상식 겸 편지글 모음집 <사람과 세상 사이에>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준호를 만났다.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라는 주제로 10월 한 달 간 모은 편지를 심사하여 상을 주는 이 날은 가슴 벅찬 상을 받기 위해 시상식장을 찾은 수상자와 가족들로 훈훈한 분위기였다. 수상자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주부, 회사원, 코흘리개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에서 응모하여 저마다 자신만의 색깔로 잔잔한 수채화 같은 편지를 쓴 사람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자리였다.

“날마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네 손으로 개어 깨끗한 곳에 두어라. (중략) 빗통을 정리하고 세수한 물건은 늘 제자리에 두어라”이는 조선시대 선비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 선생이 유배지에서 어린 딸에게 쓴 편지다. 이렇듯 편지는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을 살갑게 적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묘약이며 사람과 사람사이에 신뢰와 따스한 인정을 느끼게 해주는 상큼한 비타민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똑똑전화(스마트폰) 같은 매체의 보급으로 이제 편지지에 곱게 써내려가는 편지글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요즈음 학생들 특히 초등학생들이 편지 쓰기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솔 실타래 풀 듯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적이 놀랐으며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들이 갸륵한 마음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학력 위주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쓰기를 지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과외보다는 아이의 정서 함양을 위해 애쓰는 생각 있는 부모님,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자원봉사로 편지쓰기를 지도하는 (사)한국편지가족 회원들이 그 분들이다.

대상을 수상한 준호의 편지 외에 수상작품이 낭독되는 동안 시상식장에 모인 참석자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비록 초등학생의 글이지만 준호의 편지는 감동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의 밑바닥에 있는 정서를 유감없이 끌어 낸 귀한 선물이었다. 편지가 그것을 가능케 하다니 더욱 반갑고 고맙다.

독자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