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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482. 조선시대, 6~7살 이후는 아버지가 양육했다




 

“집에서 애 하나 똑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뭐했어.” 어떤 가정에서 나오는 큰소리입니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짜증을 낸 것입니다. 물론 요즘 젊은 부모들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젖은 아버지들은 보통 그렇게 자식의 잘못에 대해 마치 어머니만의 책임인 것처럼 나무랐습니다. 그럼 조선시대 아버지들도 그처럼 자녀양육의 책임을 어머니에게만 맡겼을까요?

“아이가 학업에 소홀하여 나무랐는데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일어나 나가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동문 밖에 나갔다. 곧바로 종을 보내 불러오게 했는데 돌아온 뒤 사립문 밖에서 머뭇거리고 들어오지 않았다. (중략) 묵재가 그 불손함을 꾸짖으며 친히 데리고 들어오면서 그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다섯 번 때렸다. 방에 들어오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이에 손자가 엎드려 울었다.”

위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문건(李文楗, 1494∼1547)이 쓴 양아록(養兒錄)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문건은 손자를 가르치며,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때렸습니다. 물론 지나친 감정의 체벌은 아닙니다. 하지만, 때린 뒤 손자가 한참을 엎드려 울자 자신도 울고 싶은 마음뿐이라 고백합니다. 이문건은 장조카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고 자신도 귀양살이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손자를 가르침에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고 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문건이 쓴 또 다른 책 묵재일기(默齋日記)에 보면 손자가 6살 이전에는 어머니가 사는 곳에서 지냈지만 6살이 되면 자신의 거처에 오게 하여 항상 돌보며 가르쳤고, 이따금 밖에 나들이할 때면 데리고 가서 세상을 배우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란 이문건의 손자 이수봉은 임진왜란 때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고도 상을 사양해 많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6~7살 이후의 자식교육에 책임지는 사람들이었지요. 자식이 자라서 존경받는 큰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문건의 마음가짐을 배우면 좋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