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지와 반지는 둘 다 손가락에 기우는 장신구이지만 이 중 반지는 하나로 된 것으로
미혼, 기혼을 가리지 않고 끼었습니다. 또 가락지는 쌍으로 된 것인데 기혼자만 끼는
것으로 원래 장식물이기보다는 신분확인을 위한 신표였으며, 나중에 남녀의 사랑에 대한
믿음과 절개를 약속하는 정표로 썼습니다. 조선시대에 가락지는 ‘이성지합(二性之合:서로 다른 두 성이 합하였다는 뜻으로, 남녀의 혼인을 이르는 말)’과 부부일신(夫婦一身:부부는 한 몸이라는 뜻)을 상징하는 표지였습니다.
가락지의 재료로 상류층에서는 비취, 칠보, 옥, 마노, 호박, 산호 따위를 썼으며, 서민들은
은이나 백동을 많이 썼습니다. 또 조선시대 가락지는 민무늬로 만들거나 무늬를 넣어 세공
하기도 하였습니다. ‘월패(月佩)’라고 불렸던 옷고름에 단 가락지는 아녀자가 남편에게
자신의 생리를 알리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