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서한범 문화전문기자] 속풀이 <107>에서는 일반 대중들을 주 수요층으로 삼아 온 판소리가 양반층 청중의 취향을 반영하여 판소리의 사설이나 내용을 변화시켰으며 시창(詩唱)이나 우조(羽調) 틀의 음악을 삽입하게 되었다는 점, 감정의 지나친 표출을 자제하는 창법으로 우아한 미의식을 반영하게 된 배경과 이 같은 변화의 전범을 김세종제 춘향가로 보고 있는 내용들을 주로 이야기 하였다.
이제부터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 온 명창들의 이야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김세종의 판소리 <춘향가>는 장재백과 김찬업이 이어받았고, 김찬업은 정재근에게, 정재근은 그의 조카인 정응민에게 전해 준다.
한편, 박유전은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전라도 나주로 내려와 정재근의 집에 은거하면서 그에게 강산제 소리를 가르쳤다. 이렇게 정재근에게 전해진 박유전의 강산제 소리는 정응민에게로 전해 졌기에 정응민은 김세종제 <춘향가>를 비롯하여 박유전의 강산제 <심청가>와 <수궁가> 등도 익히게 된 것이다.
정응민의 보성소리를 이은 제자들로는 김연수, 박춘성, 김명환, 정권진,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등 쟁쟁한 명창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중 정권진은 정응민의 아들이다. 정권진이 소리를 하려고 할 때 아버지 정응민은 적극적으로 말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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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응민 명창은 그의 아들 정권진의 소릿길을 말렸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정응민은 소리꾼이면서도 선비의 면모를 갖춘 명창이었다고 하는데, 제자들이 말하는 정응민은 “어느 경우에도 행동이 흐트러짐이 없어서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긴장이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제자를 심하게 다그치거나 야단치는 일도 없었다.”고 전하는 제자들도 있다.
정응민은 뛰어난 스승이면서 이론가이기도 하였다. 정응민의 판소리 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을 김명곤의 명인명창에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명창이 되는 길은 정심, 정음, 사채에 달려있다. 정심이란 바르고 맑은 마음이니, 그 나라 음악을 듣고 그 나라 정치를 알아볼 수 있듯이 가객의 소리를 듣고 가객의 인격을 알아볼 수 있다. ‘심청가’를 부르는 가객이 ‘심청가’를 청중에게 권하면서 자신이 불효하면 열기가 없는 죽은 소리요, 자신이 효를 행하면 생명감이 있고 기가 충만하고 진수가 담겨 참된 소리가 되는 법이니 소리 이전에 자신의 인격과 참다운 사람됨을 권한다.
다음 정음이라 함은 소리를 엄격하게 성심껏 하여 득음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된다는 말이고, 사채라 함은 품위 단정한 동작, 즉 너름새이니 사채가 무게 있고 민첩하고 발 하나를 떼어도 정중함이 있어야 한다. 사방으로 이유 없이 활보한다든지 쓸데없이 부채질을 자주 한다든지 난잡한 태도를 보여 품격이 떨어지면 올바른 사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심, 정음, 사채는 보성소리의 이론적 기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심은 명창이 지녀야 할 바른 마음, 즉 인격적 태도를 말하는 것이며, 정음이란 정직한 소리, 요령을 피우지 않는 바른 소리를 말하는 것이라 할 것이며 사채는 지나치지 않는 몸동작이나 연기를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판소리를 즐기는 청중들이 계면(界面) 성음을 원하고 재미위주의 소리나 너름새를 원한다고 해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문가들은 보성소리를 진중한 무게, 남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응민은 정작 그의 아들 정권진에게는 ‘대우도 못 받고 힘만 드는 판소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한다. 아들이 판소리를 시작하려 하자 심하게 반대하며 막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명창이 되려면 수십 년 공을 쌓아야 되고 이런 노력 끝에 명창이 된다 하여도 자신이 들인 공만큼 대우도 못 받고 고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공을 학문하는데 쓰면 몸도 편하고 일도 훨씬 많이 할 수 있다고 아들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비단 정응민, 정권진 부자에게만 전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 시대의 명인 명창들은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자녀들까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게 될 이 길을 잇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단국대학교 국악과 교수
한국 전통음악학회 회장
전통음악진흥연구소 소장
충청남도·경상북도 문화재 위원
한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 한국측 대표
UCLA. Korean Music Symposi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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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편지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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