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무계원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이야기를 계속한다. 무계원이란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옛 전통가옥으로 현재는 이곳에서 종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종로구청이 후원하는 -해설이 있는 국악공연- 풍류산방을 열고 있다. 지난주 12월 5일, 첫 음악회에서는 남창가곡과 여창가곡, 시조와 가사 등의 정가류 음악을 올려 참석자들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 남창에는 박문규, 여창은 황숙경 명창이 출연하였는데, 이들의 열창에 산장의 음악은 점점 더 절정으로 치달았고, 특히 전통한옥에서 음향기기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정가류의 음악은 너무도 맑고 깨끗하게 전달되어 진정 아름다운 노래임을 알게 해 주었다. 이 곳, 무계원은 무계정사(武溪精舍), 또는 무계정사지에서 따온 이름이며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의 집터로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무릉도원(桃園)과 흡사해서 안견이라는 화가에게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를 그리게 했다는 이야기, 무계원 건물은 과거 종로구 익선동에 있었던 오진암의 건물 자재를 그대로 활용했는데, 이 전통 가옥은 1910년대 초에 지어진 대표적인 상업용 도시한옥으로써 그 희소성과 함께 보
[그린경제=서한범 문화전문기자] 앞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받은 정응민의 제자로 성우향 명창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6살이 되었을 무렵 가곡이며 평시조를 배웠는데, 판소리나 일반 민요를 배우려는 초보자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교가 아니라, 힘찬 발성, 긴 호흡법, 다이나믹, 역동성 등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성우향은 18세가 되던 1953년부터 4년간 보성의 정응민에게서 김세종제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 전 바탕을 배웠고 30이 넘어 다시 보성에 들어가 춘향가와 심청가를 다시 닦았다고 했다. 그는 소리하는 태도가 곱고, 발림 구사며, 판을 휘어잡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온 명창으로 성창순이 있다. 성창순은 1934년에 예향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성원목 역시 판소리의 명창이요, 고법으로 일가를 이룬 당세의 명인으로 어려서부터 임방울과 동문수학하였으며 한승호, 송순섭 등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렇듯 당대 판소리의 명창이자 명고수였던 아버지의 유전자는 성창순에게 그대로 이어져 소녀 성창순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판소리를 따라 부르게 되었고 북장단도 제법 멋지게 흉내를 내게 된다.
[그린경제=서한범 국악전문기자] 앞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받은 정응민의 제자로 조상현 명창의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 댁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일곱 해 동안 춘향가를 비롯하여 심청가와 수궁가를 배웠고 임방울 명창으로부터도목이 좋은 놈 처음이라는 칭찬을 들었다는 이야기, 김명환에게 북을 배우면서 소리 사설을 잊어버려 선생으로부터 혼이 난 이야기, 천자뒤풀이대목을 무려 1500번이나 불렀다는 이야기, 그는 맑고 힘찬 목을 타고 난 위에 공력이 녹아있어 한번 듣게 되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하여 다시 듣고 싶은 소리로 꼽힌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정응민의 제자로 성우향이 있다. 그는 1935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고 그가 6살이 되었을 무렵에 큰아버지인 성차옥은 그에게 가곡이며 평시조를 가르쳤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물론, 젊은 국악인들도 판소리와 가곡, 판소리와 시조는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인데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판소리와 가곡, 판소리와 시조창은 목 쓰는 법이나 표현방법에 있어 전혀 다른 장르의 성악이다. 그럼에도 장차 판소리 명창을 꿈꾸고 있는 어린 소리꾼에게 먼저 가곡이나 시조를 지도했다는
[그린경제=서한범 문화전문기자] 앞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받은 정응민의 제자로 조상현 명창의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열두어 살 무렵 마을에서 단가와 춘향가 토막소리를 배운 뒤 정응민 선생 댁을 찾아가 집안일을 도우며 일곱 해 동안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등 세 바탕소리를 익혔다. 소년명창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임방울 명창으로부터도목이 좋은 놈 처음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다가 김명환으로부터 북을 배우면서 소리와 어울리는 북이 재미있어 정작 주전공 분야인 소리의 사설을 잊어버리기도 하여 선생으로부터 혼이 난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다.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어린 소년은 그 이튿날, 하직 인사도 못 드린 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얼마 동안은 모진 맘으로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특히 선생 앞에서 막히기 일쑤였던 천자뒤풀이 대목은 무려 1,500번이나 불렀다하니 그의 집념도 보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조상현 명창이 소리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밤이나 낮이나 선생이 계신 회천면 쪽을 향했고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선생 앞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한다. 3개월이 지나면서
[그린경제=서한범 문화전문기자] 앞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받은 정응민의 제자로 그의 아들 정권진을 소개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판소리를 듣고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소리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는 이야기, 50년대 후반에는 군산, 대구, 대전 등지의 국악원에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국립창극단과 교육현장에서 공연과 후진양성을 병행하였다는 이야기, 그만의 특이한 훈련방법으로 정응민의 판소리 바디를 충실하게 이어받은 명창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호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 전승의 특징을 가장 명쾌하게 전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상현 명창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유영대교수의 김세종제 춘향가의 전승자들이란 글을 보면 조상현에 관한 재미있는 글들이 있다. 이을 참고해 보면 조상현의 선친은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그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에 서당으로 보냈다고 한다. ▲ 소리를 하는 조상현 명창 열두어 살 무렵 마을에서 소리하는 분에게 단가 몇 마디와 춘향가 토막소리를 배웠다. 싹수가 있다고 칭찬이 자자해 지자, 그는 열세 살 되던 해 회천면의 정응민 선생 댁을 찾아간다. 선생 집에 들어가 집안일을 도우며 그
[그린경제=서한범 문화전문기자] 1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받은 정응민이 박유전의 강산제 심청가와 수궁가 등도 익혔다는 이야기, 제자들이 말하는 정응민은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는 스승이었으며, 제자를 심하게 다그치거나 야단치지 않았다는 이야기, 보성소리의 이론적 기반은 정심(正心), 정음(正音), 사채라는 이야기, 재미위주의 소리나 너름새를 원한다고 해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성소리를 진중한 무게, 남다른 품격이 느껴지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정응민은 그의 아들 정권진이 판소리를 시작하려 하자 노력 끝에 명창이 된다 하여도 대우도 못 받고 고되니 그 공을 학문하는데 쓰도록 설득하였다고 한다. 이들 부자에게만 있었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판소리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전통음악분야에서도 자녀에게 세습을 원치 않은 부모의 만류 이야기는 하나 둘이 아니다. 소리가 좋아서, 악기를 만지는 것이 재미가 있어서, 춤을 배우기 원하는 자녀들을 집안에 감금시켜 놓고 바깥나들이를 금지시킨 부모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담이다. 그래서 부모 몰래 집을 뛰쳐나가 갖은 고생을 이겨가며 소리를 배우고 재주를 익혀 왔던
[그린경제=서한범 문화전문기자] 속풀이 107에서는 일반 대중들을 주 수요층으로 삼아 온 판소리가 양반층 청중의 취향을 반영하여 판소리의 사설이나 내용을 변화시켰으며 시창(詩唱)이나 우조(羽調) 틀의 음악을 삽입하게 되었다는 점, 감정의 지나친 표출을 자제하는 창법으로 우아한 미의식을 반영하게 된 배경과 이 같은 변화의 전범을 김세종제 춘향가로 보고 있는 내용들을 주로 이야기 하였다. 이제부터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 온 명창들의 이야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김세종의 판소리 춘향가는 장재백과 김찬업이 이어받았고, 김찬업은 정재근에게, 정재근은 그의 조카인 정응민에게 전해 준다. 한편, 박유전은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전라도 나주로 내려와 정재근의 집에 은거하면서 그에게 강산제 소리를 가르쳤다. 이렇게 정재근에게 전해진 박유전의 강산제 소리는 정응민에게로 전해 졌기에 정응민은 김세종제 춘향가를 비롯하여 박유전의 강산제 심청가와 수궁가 등도 익히게 된 것이다. 정응민의 보성소리를 이은 제자들로는 김연수, 박춘성, 김명환, 정권진,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등 쟁쟁한 명창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중 정권진은 정응민의 아들이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