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서한범 국악전문기자] 앞에서는 김세종제 춘향가를 이어받은 정응민의 제자로 조상현 명창의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 댁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일곱 해 동안 ‘춘향가’를 비롯하여 ‘심청가’와 ‘수궁가’를 배웠고 임방울 명창으로부터도“목이 좋은 놈 처음”이라는 칭찬을 들었다는 이야기, 김명환에게 북을 배우면서 소리 사설을 잊어버려 선생으로부터 혼이 난 이야기, ‘천자뒤풀이’대목을 무려 1500번이나 불렀다는 이야기, 그는 맑고 힘찬 목을 타고 난 위에 공력이 녹아있어 한번 듣게 되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하여 다시 듣고 싶은 소리로 꼽힌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정응민의 제자로 성우향이 있다. 그는 1935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고 그가 6살이 되었을 무렵에 큰아버지인 성차옥은 그에게 가곡이며 평시조를 가르쳤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물론, 젊은 국악인들도 판소리와 가곡, 판소리와 시조는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인데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판소리와 가곡, 판소리와 시조창은 목 쓰는 법이나 표현방법에 있어 전혀 다른 장르의 성악이다. 그럼에도 장차 판소리 명창을 꿈꾸고 있는 어린 소리꾼에게 먼저 가곡이나 시조를 지도했다는 점은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판소리뿐 아니라, 경기명창 벽파(碧波) 이창배도 오늘날의 명창들을 지도하면서 좌창이나 선소리, 일반 민요를 부르기 전에 반드시 가곡이며 시조를 가르쳤다고 한다.
서도명창 박기종씨도 해방 전후, 평양에서 서도 소리를 공부할 때, “네가 만일 남쪽에 가거들랑 거기서 꼭 가곡이나 시조를 배우도록 하라.”는 조언을 스승 이정근으로부터 수차례 들었다고 술회하였다. 왜 판소리며 민요의 명창들이 가곡이며 시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까? 자세한 이유는 별도의 기회를 만들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느린 템포의 음악에서 소리를 힘차게 내는 발성과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능력, 그리고 기교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소리의 다이나믹을 강조한 역동성을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 소리꾼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교가 아니다. 소리에 힘을 넣고 길게 끌고 갈 수 있는 긴 호흡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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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공연실황음반 <성우향 춘향가> |
어린 성우향은 당대의 명창 안기선으로부터 1년 동안 착실하게 ‘춘향가’를 배우게 된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가를 알게 하는 예가 바로 7살 먹은 어린 소녀가 동일창극단에 입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여기서 점차 소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더더욱 소리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면서 더욱 맹활약을 하게 된 것이다.
15세가 되면서 정광수에게 ‘춘향가’, 다음해에는 강도근에게 ‘흥보가’, 그리고 18세가 되던 1953년부터 4년간 보성의 정응민에게서 ‘김세종제 춘향가’와 ‘강산제 심청가’ 전 바탕을 배웠던 것이다. 또한 ‘적벽가’와 ‘수궁가’도 익혔다. 25세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서 박초월에게 ‘흥보가’, 29세 때에도 박록주에게 ‘흥보가’를 배웠다. 그리고 30이 넘어 다시 보성에 들어가 ‘춘향가’와 ‘심청가’를 다시 닦았다.
성우향 소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은 정응민이다. 김명환과 성우향이 보성으로 소리를 배우러 들어갔을 때, 정응민은 ‘내 소리는 구식소리’라면서 선뜻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소리판에서 정응민이 부르는 ‘신연맞이’ 대목을 멋지게 북으로 반주하자, “인자 내가 근 오십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북얼 만냈다.”고 말하면서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결국 그날 이후 하루에 8~9시간 이상을 학습하며 4년 동안 보성에서 지냈다고 김명환은 회고한 바 있다.
성우향은 소리하는 태도가 곱고, 발림도 우아하게 구사하며, 판을 휘어잡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성우향 소리가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게 된 배경은 김명환의 공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성우향 소리는 김명환의 북반주와 함께 성장한 것이며, 김명환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소리는 “잔 까시가 빽다구 굵어질 때까지” 공력 담긴 소리로 되었으며 ‘대학원생 소리’라고 칭찬할 만큼 격조 있는 소리가 되었다.
성우향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중하성이 강한, 알맞게 익은 수리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별가’와 같은 계면조를 실감나게 부른 1974년의 공연실황을 담은 음반 ‘성우향 춘향가’에 잘 드러나 있다.
성우향의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수연·은희진·김영자·임향임·최영길·정회석·정춘실·이용길·이규호·안애란·염금향 등 여러 명창들에게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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