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술을 마셨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았다. 다른 날이라면 당연 취기가 온 몸을 적셔 와야 했다. 그런데 마시면 마실수록 의식이 또렷해 졌다. 윤자신의 앞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김충선에게 모질게 대한 것이 마음 아파서도 아니었다. 이순신은 윤자신 앞에서 그런 연기를 해야 하는 자신이 서글퍼서 술이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이 반목(反目) 하였단 말이요?”
선조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윤자신에게 물었다. 강두명의 미행과 유성룡의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제 3의 인물 윤자신을 직접 이순신에게 보내 의중을 살피게 했던 것이다. 용의주도(用意周到)한 선조다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윤자신에게서 나 온 보고는 의외였다.
“김충선이란 자는 아직 혈기방자(血氣放恣) 하여 그리 근심이 될 것 같지 않사옵니다.”
선조는 김충선과의 독대를 떠올렸다. 이순신을 구해내기 위한 사내의 의지가 굳었고 총기가 남달랐다. 배짱도 대단한 자라고 생각했었다. 선조의 용안에 주름이 잡혔다.
“그대가 혹 잘 못 본 것은 아니겠고...... 과인이 그대를 보낸 것을 짐작하고 했던 위선의 행동은 아니었소?”
놀랍게도 선조는 이순신과 김충선에 대해서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들이 윤자신 앞에서 서로 언쟁을 벌이고 등을 돌렸다는 그것이 도통 믿어지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전하...! 그들이 눈치 챌 리가 없사옵니다.”
윤자신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그대로 아뢰었다. 선조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긍하는 빛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요. 그것이야 시간이 흐르면 자연 밝혀질 일이지.”
윤자신은 등줄기에 땀이 배었다. 왕의 지시는 지난밤에 갑작스럽게 내려졌다. 어명을 받고 어전으로 달려갔으나 왕은 달빛아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어딘지 처량해 보이는 왕은 달려온 윤자신에게 뜬금없이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순신을 아시오?”
“예......전하.”
“과인이 그에게 너무 과하였소. 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오.”
윤자신은 처음에는 왕이 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순신을 백의종군하게 하신 상감의 처사는 매우 적절하신 처사라 사료 되옵니다.”
“그렇소?”
“훌륭한 장수를 포기하지 않으신 은덕이 주나라 문왕, 무왕에 비할 바가 아니옵니다.”
선조 이연은 이래서 윤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거 아첨 아니요?”
“신의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선조는 안타까운 얼굴이 되며 독백했다.
“이순신이 과인을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꼬?”
윤자신은 왕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신이 그를 만나도록 하겠나이다.”
“이순신의 휘하에 항왜 장수가 있음을 아시오? 김충선이라고 하지요.”
윤자신은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었다.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