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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조선인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68돌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 교토 앞바다서 폭파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일본의 탄광에서, 비행장 건설현장에서, 군수공장에서 힘겨운 노역을 하던 한국인들은 8월 15일 감격의 해방을 맞아 꿈에도 그리던 고국행 배에 올랐다. 한국인 7,000여 명은 해방되던 1945년 8월 22일 우키시마호(浮島丸)를 타고 일본 북동부의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돌연 이 배는 교토 앞바다 마이즈루항으로 기항을 시도했고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20분 ‘우키시마호’는 폭침되고 말았다. 고향땅을 밟기도 전에 승선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진실로 참혹한 사건이지만 국내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 추모제날 살풀이 춤 (주일한국교육원제공)


당시 승선자 7,000여 명 중 4,000여 명이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 수장 된 지 올해로 68년을 맞이한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우키시마호의 도리우미 함장은 사건전모를 발표하고 조선인 3,735명 중 524명과 일본인 25명을 합해 총 54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승선장부가 없는 상황에서 일본측의 이런 숫자는 무의미한 것으로 아직 이 사건의 정확한 전모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폭침의 원인을 두고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 도중 미국이 설치해 놓은 어뢰에 배가 폭발했다고 밝혔지만, 생존자들은 일본이 강제 노역 등의 보상을 피하려고 배를 폭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65년 박경식 씨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재일동포 작가인 김찬정 씨의 <우키시마호는 부산항으로 향하지 않았다>등이 발표되면서 이 문제가 전면으로 드러나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완전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해마다 이곳을 찾아 조선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교토 김리박, 우에노 시인


오매불망 고국으로의 귀환을 꿈꾸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끝내 귀국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바닷 속에 잠겨버린지 68년 째. 이들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깊은 모임이 부산에서 열린다. 부산시민협의회는 24일 오후 5시30분 중구 중앙동 부산연안여객 터미널 옆 수미르공원에서 68년 전 광복을 맞아 우키시마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지만, 배가 폭침하는 바람에 희생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합동 위령제를 연다고 23일 밝혔다.  

   

▲ 1978년에 세운 우키시마순난자 추도비

 

올해로 2회째인 위령제는 지역 30여 시민단체가 참여하는데 우키시마호 추모회 김희로 회장은 "한일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1945년 8월 24일 우키시마폭침으로 숨져간 동포들을 기억하고 진상을 낱낱이 밝혀 그 넋을 기리는 것은 오늘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