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항공학교에 다니던 그는 매우 영특했는데 훈련비행 9시간 만에 단독비행이 허가될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1925년 2월 28일 드디어 권기옥은 운남항공학교를 제1기생으로 졸업하여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가 되었다. 그 뒤 유시천 교장의 부탁으로 후배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며 견습비행을 한다.
그러나 막상 권기옥을 비롯한 비행사들이 활동할 무대가 없었다. 1925년 5월 상해로 돌아온 권기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서 조선총독부를 폭파할 테니 비행기를 사달라고 말했지만 임시정부의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고 그해 1925년 가을 광동의 국민혁명정부에서 가담했다.
그 뒤 1926년 봄 의열단의 배후 실력자인 손두환의 소개로 북경에 있는 개혁성향 군벌 풍옥상군(馮玉祥軍)의 항공대에 들어갔다. 1926년 4월 권기옥은 동로군 항공대의 부비항원으로 임명된다. 그 무렵 남원항공학교 교장 겸 동로군 항공대 대장인 서왈보의 소개로 독립운동가인 이상정(시인 이상화의 형)을 만나게 되고 훗날 그와 결혼하여 함께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1927년 장개석총통이 북벌(北伐)할 때, 동로 항공사령부(東路航空司令部)에 최용덕(崔用德)과 함께 가담하는 등, 10여 년 동안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였다. 그러다가 1928년 5월 31일 남경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 뒤 중국 공군에서 소령, 중령에까지 진급하는 대활약을 하였다. 1931년 만주를 기습 점령한 일본군이 1932년 상해전쟁을 일으키자, 권기옥은 비행기를 몰고 가 일본군에게 기총소사를 한다. 이른바 상해전쟁에서 활약한 공로로 권기옥은 중국 정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는다.
용감무쌍한 여성비행사 권기옥의 이야기를 들은 당시 항공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송미령은 권기옥에게 선전비행을 제안한다. 1935년 일이다. 당시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미령은 비행기가 무서워서 공군에 자원하지 않는 중국 청년들을 독려하기 위해 여류비행사 권기옥의 선전비행을 계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전비행은 상해에서 북경까지 날아가는 화북선, 화남선,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경유하여 일본까지 날아가는 남양선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권기옥은 남양선 비행의 마지막 순간 일본으로 기수를 돌려 황거를 폭격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선전비행 출발 당일 북경의 대학생 시위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선전비행이 무산되고 말았다. 어린 시절 비행사가 되고자 했던 꿈을 이룰 절호의 기회가 산산 조각나 버린 것이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중경으로 이동하여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영어와 일본어, 일본군 식별법과 성격 등을 강의했다.
▲ 1935년 중국 선전비행을 준비하던 무렵의 권기옥 애국지사(오른쪽)
이어 1939년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오자 권기옥은 좌우로 분열되어 있던 부인들을 설득하여 1943년에는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 직할로 김순애·방순이·최선화·최애림·최형록 등과 함께 한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사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여름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던 최용덕, 손기종 비행사 등과 함께 한국 비행대 편성과 작전계획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1945년 3월에 임시정부 군무부가 임시의정원에 제출한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 계획〉 중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이 그 결실이었다. 미국과 중국에서 비행기를 지원받아서 한국인 비행사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일본이 예상보다 일찍 패망하여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자 1949년 귀국하였으며,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이 된 권기옥은 ‘공군의 어머니’로서 한국 공군 창설의 산파역할을 했다. 권기옥이 또 관심을 가진 것은 올바른 역사기록에 대한 신념으로 1957년부터 1972년까지《한국연감》발행에 관여하여 1966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유일한 여성 출판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1975년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가 내 자식이고, 극일(克日)하는 젊은이들을 키워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전 재산을 장학 사업에 기탁했다. 한편 권기옥 여사가 한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항간에서는 영화 <청연>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박경원이 최초 여류 비행사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권기옥과 박경원 가운데 누가 정말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일까?
“권기옥” 애국지사 이야기는 <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