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
말없이 참고 침묵으로 살아온
시어머님(박순부)의 일생은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시아버님(김동삼)께서 직업혁명가로
평생을 국권회복을 위하여 공을 세웠다면
그 속에는 시어머님 몫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동 지음 ‘만주생활 77년’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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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어록전시장 |
* 이해동 (李海東, 1905.12.23 - 2003.8.20) 여사는 누구인가?
조동걸 국민대교수의 ‘만주 독립군 이면사 증언 살아있는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85세의 할머니 이해동 여사가 만주생활 77년을 끝내고 지난 18일 영주 귀국했다는 소식이 지상을 메웠다. 그리고 19일부터 조선일보에 여사의 ‘난중록’이 연재되기 시작하였다. 10리 밖도 나가보지 못한 일곱 살의 어린 소녀가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삭풍 휘몰아치는 만주로 떠나던 1911년은 서울 양반들이 그 미끈한 일본인의 흉내를 내기에 바빴고 시골에서는 망국이민이 누더기를 감싸고 산비탈 오솔길을 따라 북으로 탈출해가던 해였다.
그 행렬에 끼여 이해동 여사가 만주로 갔던 것이다. 도산(陶山)을 떠나 안동, 예천, 상주를 거쳐 김천까지 250리는 아마 걸었을 것이고 김천부터는 기차로 갔으리라. 이 무렵 안동 일대에서 1백여 호가 갔으니 줄잡아 5백여 명은 넘었을 것이다. 1911년 여사의 일행이 떠난 것은 한말 애국계몽주의 지하단체였던 신민회의 신한촌 건설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이해동 여사는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바가 없다. 그러나 이해동 여사만큼 독립운동의 최일선에 서 있던 분도 드물다. 이해동 여사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역사의 조명 한번 받아 보지 못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