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이윤옥 기자]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파호(琵琶湖)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은 교토와 오사카에 면해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곳은 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하여 55건의 국보 그리고 806건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로 국보보유로 치면 교토부, 도쿄도, 나라현, 오사카부 다음으로 많은 곳이다. 에도시대에는 강남, 강서, 강동 지역으로 나누던 것을 명치시대 이후에는 비파호를 중심으로 호남, 호동, 호북, 호서 4곳으로 생활권역을 구분하고 있다.
예부터 시가현은 관동지방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특히 가을철 단풍의 명소로 꼽혀 단풍철에는 숙박을 정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에 맞춰 “호동3산 순례”라든가 “호남3산 순례”와 같은 유서 깊은 절 순례코스를 만들어 놓고 임시버스를 운행하는 등 지역 관관협회의 홍보도 매우 적극적이다.
▲ 고구려 혜자 스님도 이곳의 단풍에 매료 되었을 듯!
백제사는 호동3산(湖東3山)속하는 절로 단풍철에만 임시 운행하는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이는 것이 싫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찾아 나섰다. 역시 문제는 절까지 들어가는 버스 횟수가 많지 않은 것이 단점이었으나 천천히 절을 돌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당산은 스이코왕(推古天皇) 14년(606)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창건당시의 본존불은 태자가 손수 만든 관음상이라고 전해지며 본당 (대웅전)은 백제국의 용운사를 본 따 지었다. 개안법요 때는 고구려 스님 혜자를 비롯하여 백제스님 도흠(道欽)과 관륵스님 등이 참석하였으며 이들은 오랫동안 이 절에 주석하였다. 가마쿠라시대 이후에는 천태별원(天台別院)으로 사세가 확장되어 1300여명의 승려들이 거주 할 정도 대규모 사원으로 발전했으나 전국시대(戰國)의 거듭되는 병화(兵火)와 약탈로 절은 황폐화되어 갔다. 에도시대에 들어서 현재의 본당 (1650)건물이 완성되었다. 일찍이 대규모 사찰이었던 만큼 참도(参道) 양쪽에는 승방이 처마를 나란히 잇대고 있었는데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 루이스프로이스는 1000방(坊)의 건물이 소실(燒失) 된 것을 두고 ‘지상의 천국’이 사라졌다고 아쉬워 했을 만큼 백제사는 그 역사가 깊은 절이다.” - 신록과 일본 홍엽백선의 고사(新綠と日本紅葉百選の古寺) 중에서-
위의 안내문 중에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라는 것이 이채롭다. 백제사 누리집(http://www.hyakusaiji.or.jp)에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성덕태자의 스승인 고구려 스님 혜자가 태자의 인격과 지식을 쌓게 하려고 이루카(斑鳩)・나라(奈良)・우지(宇治)・시가라키(紫香楽)・코토(湖東)・코호쿠(湖北)・와카사(若狭) 등지를 데리고 함께 여행했다고 한다.
▲ 고운 단풍 터널로 유명한 백제사 본당 가는 길
이른바 태자의 길(太子の道, Dr-Prince Road)이라고 하는 것으로 혜자스님은 성덕태자와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지금의 백제사 터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산 속에서 두 사람은 이상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 빛을 쫓아 가보니 그곳에는 영목(霊木)인 삼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11면관음상을 조각하여 이 불상을 안치할 당우(堂宇)를 지은 것이 백제사의 시초라는 설명이다. 이때 백제사의 가람배치는 백제의 용운사(龍雲寺)가 모델이었기에 절 이름을 백제사로 지었다고 한다.
백제사는 시가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절의 위치가 한국의 백제와 일직선에 놓인 것을 주목하는 의견이 있다. 시가현의 백제사와 한국의 백제를 잇는 이러한 위도는 우연이 아니라 방위에 능한 백제 스님 관륵이 이곳에 체류 하면서 절을 지을 때 관여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관륵 스님은 일본에 역(暦)・천문(天文)・지리(地理)・둔갑(遁甲(兵術))・방술(方術)・선인술(仙人術)을 전한 스님으로 602년에 일본에 건너가 백제사 창건에 관여한 것이다. 북위(北緯) 35도선을 백제사 측에서는 백제망향선(百済望郷線, Pecche Nostalgia Line)이라고 부르는 것이 흥미롭다.
▲ 시가현의 백제사는 고국 백제를 향해 지어졌다.유감스럽게 일본판 지도에 독도가 죽도로 되어있다.
일본최초의 여왕으로 불교를 적극 수용한 스이코왕 3년(595)에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혜자스님(慧慈,에지,? - 623)은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일본에 불교를 흥륭시키고 아스카에 법흥사가 완성되자 백제의 혜총 스님과 주석하면서 20년간 일본불교발전에 힘을 쏟다가 고구려로 귀국하였다. 스님은 귀국 후에 제자인 성덕태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슬퍼하면서 자신도 같은 날에 정토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 이듬해 성덕태자가 사망한 같은 날에 입적하였다.
성덕태자와 고구려 혜자 스님은 아주 각별한 사이였는데 시가현 오오츠시 사카모토 (滋賀県大津市坂本5丁目13-1)에 있는 서교사(西敎寺, 사이쿄지)는 성덕태자가 고구려로 돌아간 혜자 스님과 혜총 스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절로 유명하다.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서로 그리면서 불법(佛法)을 펼친 아름다운 인연이야기는 후세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깊어 가는 가을 단풍이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백제사에서 그리고 비파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교사 경내를 둘러보며에 나는 오랫동안 고구려 스님 혜자와 더불어 혜총, 관륵 같은 한국 스님들에 대한 상념을 놓지 못했다. 한국에는 이들 스님들의 기록조차 없는 데 일본의 절에서는 곳곳에 한국출신 스님들의 발자취와 기록들이 남아 있으니 어찌 향수를 느끼지 않을 손가!
시가현에 도착한 첫날,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며 백제사 절터 입구에서 깊어가는 가을밤 하늘의 별을 바라다본다. 1400여년의 시공을 뛰어 넘은 오우미 백제사 하늘의 맑은 별들이 총총하다.
▲ 고구려 혜자 스님을 그리며 성덕태자가 지은 서교사
시가현에서의 첫날은 백제사 나들이만으로 마치고 둘째 날은 호남3산 임시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JR고세이 역에서 탑승한 임시버스는 맨 처음 목적지로 장수사에 내려 주었다. 국보답게 고색창연한 본당 건물은 세월의 무게를 두툼한 지붕으로 용케도 버티고 있었다.
장수사(長壽寺, 쵸쥬지)는 시가현 코난시(滋賀県湖南市東寺5丁目1-11)에 있는 절로 양변 (良弁, 로벤, 689-774)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양변 스님이라하면 백제출신으로 동대사 초대 주지를 맡은 스님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밭일을 하러 나가 밭에 놓아두고 일을 하다가 그만 매가 낚아채고 가버려 30년을 울며불며 찾아 다녔다는 일화를 갖고 있는 스님이다.
매에게 물려간 양변스님은 동대사 이월당 앞 삼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백제 고승 의연스님 눈에 띄어 출가득도한 이래 동대사 주지를 거쳐 시가현에 와서 장수사와 상락사를 창건했으니 대저 스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어디일까?
장수사에 이어 호남3산 임시버스가 내려 준 곳은 선수사(善水寺,젠스이지)이다. 임시버스로 각 절의 이동 거리는 10여분 정도였는데 선수사는 시가현 코난시 이와네(滋賀県湖南市岩根3518)에 있는 절로 나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이 절은 백제 출신 행표스님(行表, 교효, 722-797)을 은사로 12살에 출가한 백제계 최징(最澄, 사이쵸, 767-822))스님이 훗날 천태사원으로 재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수사는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아들인 50대 간무왕(桓武天皇)이 중병에 걸렸을 때 최징 스님의 법력으로 이 절의 영수(霊水)로 치료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 몸에 병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절이다. 단풍이 물들어 가는 선수사의 영험한 우물물을 마시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절이 한국과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싶은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상락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 일본 시가현 위치/선수사의 단풍/호남3사 순례 홍보물/답사단과 글쓴이(위 부터 시계방향)
상락사(常樂寺, 죠라쿠지)는 호남 3산 중에 가장 나중에 들른 절로 시가현 코난시 니시데라(滋賀県湖南市西寺六丁目5-1)에 있다. 창건연대는 708년으로 이 절을 지은 사람은 장수사를 지은 백제 스님 양변 스님이다. 황실보호 사찰로 한때는 그 규모가 아성사의 오천방(阿星寺五千坊) 중심 사원이었으나 가마쿠라 시대로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되는 등 쇠락의 길을 걷다가 명치 정부 때 본당 건물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날 답사한 3사의 이름은 선을 열심히 닦으면(善修寺) 장수하고(長壽寺) 항상 즐거운 일(常樂寺)이 생긴다고 해석한다면 절 이름 외우기가 좋다는 생각을 하며 호남3사순례를 마쳤다. 빠듯한 일정이었으나 한국인으로 이들 한국계 출신 고승들의 발자취를 돌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부터 한국출신 고승들의 일본 활약상을 부지런히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연일 강행군인 일정의 고단함도 잊을 수 있었다.
★ 찾아 가는 길
<백제사>
*주소:滋賀県東近江市百済寺町323(百濟寺,햐쿠사이시)
*가는 길:JR니시니혼 비와코선(西日本 びわこ線)을 타고 오우에하치망에키(近江八幡駅) 에서 내리면 백제사까지 가는 순환버스가 1시간 1대씩 있다.
<서교사>
*주소 :滋賀県大津市坂本5丁目13-1 (西敎寺,사이쿄지)
*가는 길:JR 코사이센 히에이잔 사카모토역(湖西線比叡山坂本駅) 앞에 나오면 서교사행
버스가 자주 있다.
<장수사>
*滋賀県湖南市東寺5丁目1-11 (長壽寺, 쵸쥬지)
<선수사>
*滋賀県湖南市岩根3518(善水寺, 젠스이지)
<상락사>
*滋賀県湖南市西寺六丁目5-1(常樂寺, 죠라쿠지)
*이들 3사는 매년 가을 호남3사 순례 (11월 12일~30일) 임시 버스를 타면 경제적으로 알찬 순례를 할 수 있다. 매년 날짜가 다르니 확인하는 게 좋다.
*문의:滋賀県 湖南市 觀光物産協會, 일본 0748-71-2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