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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자유를 부르짖으면 반드시 자유가 온다 '이선호 편'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語錄展) 보기 19 >

[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자유를 절규하면

자유가 생긴다는 결심으로

자유를 부르짖으면

반드시 자유가 온다는 굳은 심념아래서

자유를 얻기 위하여 한 것이다.

             -법정진슬 내용 가운데서 ‘동아일보 1926년 11월 4일’-

*

   

 

 

   
▲ 어록 전시장 모습

 

 

*이선호 독립투사는 누구인가?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25년 9월 27일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중에 항일단체인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그 집행위원이 되었다.

이들은 기관 잡지 「과학운동」을 발행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4월 26일 그는 융희황제의 서거 소식을 듣고 이 단체 회원 및 동료 학생들과 만세시위 계획을 세우고 그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격문 1천여매, 태극기 30여개를 제작하고 동년 6월 10일을 기하여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드디어 융희황제의 인산일을 기하여 서울 시내의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그는 종로3가 단성사 앞에서 대여(大輿)가 지날 때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군중과 학생들을 지휘하여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일경의 무자비한 검거로 그는 무수히 매를 맞고 피체되었으며, 학교에서는 퇴학처분을 당했다. 그는 결국 1927년 4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및 출판법 위반 등의 죄명으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7년 9월 20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