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1908년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수난처로,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운동가들의 고난처였던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화 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이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관장 박경목)으로 재탄생했다.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화운동가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심도 있는 역사물 전시ㆍ교육ㆍ체험 학습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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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15돌 기념 학술심포지엄 모습 |
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개관 15돌을 맞아 뜻 깊은 심포지엄을 열었다. 11월 2일 늦은 2시부터 서대문공원 안 독립관 무궁화홀에서 서대문구 주최, 서대문도시관리공단 주관의 “4ㆍ19혁명기 서대문형무소”가 그것이다. 먼저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정일택 이사장의 인사말씀이 있었고,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문 구청장은 환영사에서 “프랑스는 우리보다 짧은 피지배 역사였지만 5만의 나치협력자를 처단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친일과 단절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역사는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4ㆍ19혁명기 서대문형무소를 되돌아보는 오늘의 심포지엄은 참으로 소중한 행사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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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말을 하는 정일택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왼쪽), 환영사를 하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
심포지엄의 시작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4월 민주혁명과 서대문형무소”였다. 그는 “임시정부와 4ㆍ19혁명 직후 두 번이나 쫓겨난 이승만을 국사편찬위원장은 위대한 위인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는, 아니 독립운동을 훼방한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왜곡된 역사가 아닌 분명한 사실의 역사만을 말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3ㆍ15부정선거와 서대문형무소”라는 주제로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3ㆍ15부정선거는 여러 가지 객관적 사실로 보아 이승만과 친일파의 합작품임이 분명하다.”며 조목조목 그 증거들을 설명했다. 또 “당시 허약한 민주당 정권의 한계이기도 했지만, 이승만을 사법처리 하려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기소조차 안 한 것은 4ㆍ19혁명을 성공하지 못하도록 한 결정적인 요인이다.”라고 진단했다.
다음 발표자는 서대문 형무소를 수차례 드나든 이력의 소유자인 이슈투데이 김정태 논설위원이었다. 그는 “썩은 밀과 약간의 쌀을 섞은 밥을 먹는 체험을 한 뒤 심포지엄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년부터라도 그렇게 진행하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5ㆍ16 직후 “서대문형무소 스케치 -여기는 8사하(舍下) 감방 안-”이라는 소제목이 말해주듯 생생한 감방 이야기를 들려주어 청중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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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를 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 김정태 이슈투데이 논설위원(왼쪽부터) |
이후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좌장을 보는 가운데 발표자들과 한승동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김승균 남북교역 대표 등이 참석한 열띤 종합토론도 있었다.
이제 4ㆍ19혁명이 일어난 지 어언 반세기가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4ㆍ19혁명을 완성하지 못한 죄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의 심포지엄은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