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견줄 만큼 드넓은 비파호수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県)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 기름진 옥토가 많고 쌀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곳에 삼정사와 백제사 등 천년 고찰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년 고찰과 더불어 가을철 단풍으로는 일본 최고로 알려져 있어 가을철이면 숙박시설이 동이 날 정도로 일본 전국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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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정사 본당에 한무리의 답사단이 참배 중 |
삼정사(三井寺, 미이데라)가 자리한 시가현(滋賀県) 오오츠(大津市)는 천년고도 교토 동쪽에 자리하며 고대에는 오우미(近江)로 불렸다. 삼정사의 원래 이름은 원성사(園城寺, 온조지)로 이 고장은 백제인 오오토모(大友) 씨들의 근거지였다. 오오토모 씨는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치노오미(阿知使主)의 후손인 백제계 도래인들로 황실과 깊은 관계에 있었던 호족이다. 이들이 정착한 이 일대에 천지왕은 오오츠궁(大津宮)을 세웠고 불심이 깊었던 그는 미륵보살을 모시는 절을 세우려고 발원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 원래 원성사이던 절이 삼정사로 바뀌었다.사진은 글쓴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아들 오오토모황자(大友皇子, 후에 弘文天皇)도 숙부와의 권력다툼으로 25살에 자살에 이른다. 오오토모의 아들 곧 천지왕의 손자인 오오토모 요다노오오키미(大友与多王)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있던 재산인 전원성읍(田園城邑)을 희사해서 건립하였는데 여기서 ‘원성’이란 글자를 따서 원성사(園城寺)라고 지었던 것이다.
▲ 원성사에서 삼정사로 절 이름을 바꾼 유래를 간직한 우물
원진스님에 대한 출생관련 이야기는 일본의 최대 설화집인 《今昔物語集》11권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여기에 보면 그의 어머니는 아침해의 밝은 광채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원진스님을 낳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원진스님은 8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불경인 《인과경, 因果經》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아버지는 놀라운 마음에 이 경전을 구해주었고 어린 원진은 순식간에 그만 통째로 암기해 버리고 만다.
열 살 때에는 <논어><한서><문선>을 모두 암송해버리는 등 신통력을 발휘하게 되고 이러한 여세를 몰아 14살 때 연력사(延曆寺)의 의신스님(781-833)에게 맡겨져 불법 공부를 시작한 이래 19살 때 수계를 받고 ‘원진(円珍)’이라는 수계명을 받게 된다.
7세기에 오오토모씨의 씨사(氏寺)로써 창건되어 9세기에 당 유학을 마친 원진스님에 의해 재흥되는 삼정사는 헤이안시대 이후에 황실, 귀족, 무가들의 폭넓은 신앙의 모체가 되었으나 10세기 이후 비예산 연력사(比叡山延暦寺, 히에이잔 엔랴쿠지)와의 대립항쟁이 격화되어 불타는 등 여러 곡절을 겪었다. 또한 근세에는 풍신수길에게 사령(寺領)이 몰수 되어 폐사의 길을 걷다가 다시 일어서게 되어 항간에는 불사조의 절로 알려져 있다.
▲ 조용한 시골 간이역을 연상 시키는 삼정사 역
숙소인 오오츠 시내에서 삼정사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였는데 거리는 깨끗했으며 특히 비파호에서 상수원으로 끌어 쓰고 있는 대규모 콘크리트 수로(水路) 옆길로 난 길을 걷고 있자니 물들기 시작한 가을 단풍의 자태가 몹시 고왔다.
길가에 심어놓은 벚꽃나무는 또 얼마나 봄을 뽐낼 것인가 안 봐도 알겠다. 삼정사 본당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수로 곁에는 아주 작은 시골 간이역 같은 삼정사역이 자리하고 있다. 이 수로를 따라 오르면 삼정사 정문에 이른다.
"일본 시가현 삼정사와 신라계 원진스님"은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