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관동 최고(最古)의 절 도쿄 아사쿠사 천초사 (淺草寺, 센소지) 관음당 뒤쪽에 나란히 있는 아사쿠사신사(淺草神社) 경내에는 이곳이 히노구마(檜前) 목장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히노구마 목장이란 백제계 히노구마 씨의 목장을 말하며 당시 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의 상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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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계 어부형제와 하지스님의 그림이 천초사에 걸려있다 |
히노구마 어부 형제와 관련이 있는 천초사의 유래를 에도시대 학자 하야시라잔(林羅山)이 쓴《등원성와문집, 藤原惺窩文集》에서 살펴보면, “서기 628년 스미다가와(隅田川)에서 고기를 잡던 히노구마 하마나리, 다케나리 형제는 평소처럼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날따라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다. 여러 번 그물을 던진 끝에 어망에 걸려나온 것은 사람모습의 인형(금동불)이었다. 형제는 이 이상한 물체를 그대로 바다에 던져 버렸으나 몇 번이고 그물에 걸려 나오는 것을 이상히 여겨 건져서 당시 마을의 원로인 하지(土師中知) 씨에게 가지고 가서 내보였다. 그러자 하지 씨는 이것이 성관세음보살상(聖観世音菩薩の尊像) 이라며 깊은 믿음으로 공양했다. 어부형제도 이 불상이 중생의 모든 소원을 현세에 이뤄주는 현세이익불임을 알고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열심히 기도한 결과 그 소원을 이루었다. 한편 하지 씨는 이후 삭발하고 출가하여 자기 집을 절로 고쳐서 이 불상을 모시고 마을주민을 가르쳐 이끄는데 일생을 보냈으며 이것이 천초사의 시작이다”라고 나와 있다.
어부 형제가 찾아간 마을 원로 하지 씨는 당시 아사쿠사 마을의 유명한 히지리(日知り) 였다. 히지리란 장례나 혼례에 관련된 날짜를 잡아 주는 사람을 이르며 고대에는 해를 아는 자로서 곧 태양의 사제(司祭), 주술자를 뜻했다. 그러나 불교가 전래 된 이후에 “히지리(日知)”는 학덕이 높은 스님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아사쿠사의 하지 씨는 말하자면 동네의 사제이자 원로스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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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초사 대웅전 앞에선 필자 |
그렇다면, 불상을 가지고 하지 씨를 만나러 간 어부 히노구마 형제는 어떤 사람들일까? 《신찬성씨록》에는 “히노구마(檜前) 씨는 본래 야마토(大和國) 히노구마마을(檜前鄕)에 정착한 도래인으로 히노구마스구리(檜前村主)는 백제계의 고조(高祖)” 라고 나와 있다.
아사쿠사 천초사는 신도들에게 관세음신앙의 명소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나카미세(절 입구에 즐비한 상점)의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천초사 정문인 가미나리몽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에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 등의 먹거리와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류 까지 팔고 있어 구경거리가 쏠쏠하다. 거기에 뒷골목에는 식당들도 즐비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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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초사의 명물 나카미세(대웅전에 이르는 가게)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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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나카미세는 1685년에 생겨났는데 처음에는 상점가 사람들이 절 경내를 청소해주는 조건으로 개업을 허용했다고 한다. 또한, 에도시대 중기에는 절의 서쪽 지구에 속칭 오쿠산(奧山)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오늘날로 말하면 연극 등이 자주 공연되는 등 옛부터 천초사 주변에는 서민들의 오락, 친교의 장소로 사랑받았다. 이후 가부키(일본 고전 연극, 歌舞伎)를 공연하는 공연장이 들어서서 에도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곳으로 탈바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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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초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아사쿠사신사 |
아사쿠사 신사(浅草神社)는 천초사(浅草寺)와 낮은 울타리 하나 사이를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러나 명치정부의 신불분리정책(神佛分離政策)으로 신사와 절이 각각 분리되었다. 이 두 시설이 한울타리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사쿠사 신사와 천초사의 유래는 같이 공유하고 있다. 백제계 히노구마 형제가 고기잡이하다 건져 올린 불상을 지역원로 하지스님께 가지고 와서 모시게 된 것이 천초사와 아사쿠사신사의 유래다.
천초사에서는 현재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신사에서는 어부형제와 하지스님을 모시고 있다. 신사란 말하자면 한국의 사당이라고 이해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만 한국의 사당과 다른 점은 일본의 신사에서는 결혼식 등이 열린다는 점이다. 마침 3월 9일 기자가 찾아 간 날도 신사 앞뜰에서는 결혼을 마치고 나온 신랑신부들의 사진촬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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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이곳에서 결혼식을 마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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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에서 가장 오래된 절 천초사는 백제계 히노구마 어부 형제와 마을 원로 하지 스님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요즈음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인들은 이곳에 모셔진 세 명의 한국인 곧 히노구마 형제와 하지스님의 전설이 깃든 천초사를 건성으로 돌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화창한 봄날 천초사 뜰을 거닐며 당대의 지식인 하지 스님과 히노구마 어부 형제 그리고 1400여 년 전 아사쿠사 일대를 경영하던 백제계 한국인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그려보았다.
★찾아 가는 길★
도쿄메트로긴자센(東京メトロ銀座線)을 타고 아사쿠사역(浅草驛)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