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양대리 만세운동 14살 소녀 ‘한이순’
이윤옥
열네 살 광명학교 어린 소녀
읍내에 번진 만세운동
눈감을 수 없어
태극기 높이 들고
양대리 시장으로 떨쳐 나갔네
다시는 조국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한 태극의 물결
아우내의 유관순
양대리의 한이순
꺼지지 않는 횃불
두 소녀 높이 들어
독립의 투지 만천하에
비추었네
한이순(韓二順, 1906.11.14 ~ 1980.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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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이순 애국지사 |
위 기록은 조선총독부 검사 야마다 순페이(山田俊平)가 한이순 애국지사에게 “사립광명학교 학생으로 동교생을 선동 일반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치안을 방해한 사실이 있는 자”라는 죄명을 씌워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내린 판결문이다. 이 판결문에는 민옥금, 황금순도 함께 같은 죄목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만세운동 당시 14살이었던 한이순 애국지사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사립광명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 무렵 광명학교(光明學校)에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바로 강기형 (姜琦衡,1868. 1. 25 ~ 모름) 애국지사였다.
당시 만세운동은 양대리 장날 뿐 아니라 아우내 장날에도 독립만세 운동의 불길은 당겨지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유관순이 3월 13일에 귀향하여 유중권, 유중무, 조인원 등에게 서울의 3·1만세운동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우내(병천) 장터에서의 만세운동을 꾀하는 등 충남 지역은 천안, 공주 등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저항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곳이다.
▲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의 한이순 애국지사 판결문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이순 애국지사를 비롯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1-4권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