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 얼숲(페이스북)을 보는 일본인을 위해 결론 부분을 먼저 일본어로 싣는다. “群馬県の朝鮮人強制連行追悼碑撤去という事態を見守りながら、日本が過去の侵略戦争の反省をきちんと整理できないまま、再び火薬庫を爆発させる火種を育てている現実に心が痛む。群馬県の朝鮮人強制連行追悼碑撤去の方針は、日本帝国主義が犯したアジア侵略の歴史的事実を"撤去"し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これは侵略戦争の被害国民であり、平和を愛する人として決して座視できない重大な事案で考える。群馬県に対抗して闘っている角田義一氏を中心とした日本の良心と勇気に大きな応援の拍手を送る。(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추도비 철거라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의 반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또 다시 화약고를 터뜨릴 불씨를 키우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 철거 방침은 일본제국주의가 범한 아시아침략 사실 “철거”하려는 것이다. 이는 침략전쟁의 피해국민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으로 생각한다. 군마현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츠노다기이치 씨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양심과 용기에 큰 응원의 손뼉을 보낸다.” |
일본 조선신보(朝鮮新報)는 8월 21일자로 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 철거문제를 들어 시민단체인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의 츠노다기이치( 77, 角田義一, 변호사, 전 참의원부의장) 씨가 현정부(縣政府)에 대한 부당함과 추도비의 역사성에 대한 단독 인터뷰를 했다고 보도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군마현립공원<군마의 숲, 다카사카시 소재>에 있는 조선인강제연행 희생자추도비를 둘러 싼 논쟁이 한창이다. 이 추도비는 일본 최초로 현유지(県有地)에 세워 국내외의 지지를 받아온 조선인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다. 그러나 2년 전부터 공원을 관리하는 현직원(県職員)과 우익단체와의 사이에 작은 충돌이 있었다. 그 뒤 군마현에서는 추도비의 설치기간 갱신을 불허했다.
츠노다 공동대표를 비롯한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이 7월 28일에 발표한 성명에서는 ‘그들(우익)에 대한 굴복 또는 동조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뷰에서 츠노다 씨는 특히 이번 현(縣)의 결정은 국제문제화 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올 가을 소송을 제기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츠노다 씨는 추도비의 역사적 경위에 대해서 “일찍이 일본은 조선을 36년간 식민지 지배했다. 당시 조선의 많은 사람들을 강제연행하여 탄광, 댐건설, 철도, 도로, 비행장 등에서 가혹한 중노동을 시켰다. 군마현에도 6,000명 정도 끌려 왔으며 오오타시에 있던 나카지마비행장에서 노동을 강요했다. 강제연행된 조선인들은 일본 최대(당시)군수산업과 전투기 부품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극심한 강제노동으로 죽어간 사람이 많다. 우리들은 그 실태조사를 하여 《지워진 역사를 되찾는다 (군마현내의 조선인 강제연행)》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리고 역사의 가혹한 사실을 기억하고 침략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과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위해 추도비를 세우는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현민과 일본각지에서 참여한 찬동자는 개인 500명, 60개의 단체로부터 1000만엔의 돈을 모금했다.”고 그간 추도비와 관련된 경위를 설명했다.
츠노다 씨의 설명은 이어졌다. “우리는 추도비를 적정한 장소에 세우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현유지(県有地)인 군마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에 세우는 안(案)을 마련하여 현지사(県知事)에게 제출하여 허가를 얻었다. 그리고 2004년 4월 24일 추도비가 건립되었다. 비문(碑文)에 대해서는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 군마현, 외무성 3자가 협의했다. ‘강제연행’이라는 말은 들어가지 않았으나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향해 서로 새로운 이해와 우호를 깊이 새기자는 생각에서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추도하는 비를 세운다. 이 비에 담긴 우리들의 마음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고 더나가 아시아평화와 우호 발전을 기원”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역설했다.
▲ 일본 군마현에 세운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가 우익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밀려 강제 철거 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사진위키제공>
그러면서 츠노다 씨는 국가 땅인 현유지(県有地)에 조선인 강제연행 추도비를 세운 것은 일본 초유의 일이며 늦었지만 군마현에서 이를 성사 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고 술회했다. 추도비를 세우고 츠노다 씨 등 시민단체는 해마다 이 추도비 앞에서 추도식을 열어 왔으며 추도식에는 현(縣) 간부를 비롯하여 재일조선인과 현의원들도 다수 참석하는 등 해마다 추도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상황이 돌변했다고 했다. 츠노다 씨가 조선신보(朝鮮新報)와 나눈 인터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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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에 <LE PETIT PARISIEN>에 실린 서울거리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만행과 저항하는 한국인을 그린 그림. 당시 이러한 사진만 봐도 알듯이 조선인의 강제연행과 일본내의 불법노동강요는 수많은 증언과 기록으로 남아있다. 츠노다 씨 등 양심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일제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한일간 미래의 우호를 생각해서 추도비를 세운 것이리라. (수원 광교박물관 제공) |
이번 군마현의 추도비 철거 결정에 대한 입장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간 이곳에 추도비를 세워 해마다 희생된 이들을 위한 추도집회를 아무 탈 없이 해오고 있었는데 2년 전부터 우익단체들이 추도비의 존재가 부당하다면서 현의회에 철거할 것을 청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군마현에서는 추도집회를 자숙하라는 등 간섭을 하더니 작년에는 아예 추도비 앞에서 추도식을 하지 못하게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추도식을 가져야했다.
추도비 철거 방침에 대해 수용할 수 없음을 4회에 걸쳐 협의 해왔으나 그러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현정부는 추도비 철거라는 명령으로 이 문제를 종결지으려고 하나 이에 불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군마현이 추도비를 철거하라는 이유는 “시민들이 편안히 공원을 이용할 수 없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고 있으나 이는 우익강경단체에 굴복하는 처사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연 불허가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추도비를 둘러싼 군마현과 우익단체와의 사이에 작은 충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추도비설치 불허가 결정은 우익들에게 굴복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추도비 철거는 서로 합의한 비문을 부정을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추도비에 새겨 넣은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유를 봉쇄하는 것이며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행위다.
츠노다 씨는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군마현의 처사를 비난”했다. 그것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베정권의 군국주의 부활이 결국 지방정부 공원에 세운 추도비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우려했다.
군마현의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 철거라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과거 침략전쟁의 반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또 다시 화약고를 터뜨릴 불씨를 키우는 일본사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군마현의 조선인 추도비 철거 방침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철거”하려는 것이며 침략전쟁의 피해국민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결코 좌시 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으로 생각한다. 츠노 씨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양심과 용기에 큰 응원의 손뼉을 보낸다.
*츠노다기이치(角田義一, 77살) 는 누구인가?
군마현 출신으로 명문 교토대학 법학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 1989년부터 군마현 참의원으로 3선 의원이다. 제25대 참의원부의장(2004-2007) 역임했으며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 중. 군마현에 세운 조선인강제연행 추도비와 관련해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를 위한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記憶 反省 そして友好の追悼碑を守る会)’의 공동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