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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 인연 서북 지역 역사 지리 탐방

진용옥 교수의 통일생각 8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문정공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20)선생은 영남과 기호의 양 학파에서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으며 서북지역 평안도 희천에서 환원당 문경공에 수학했고, 희천의 상현서원, 양현사에 제향 되었다. 근세의 안중근 의사와 함께 통일 한국의 대표적 인물이 될 수 있는 인연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정암 선생에 대한 북부 지역과 북인들 관심에 대하여 역사자료에 의하여 살피고 원격 위성 탐사, 현지방문 자료를 통하여 통일 시대의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기록하고 추론한다. 여기에 나오는 용어는 가능한 한 분단 이전의 용어를 사용한다. 예하면 남인과 북인은 조선시대의 정파 명칭이 아니라 각각 남한[남부한국]과 북선[북조선]의 주민을 지칭한다.  

정암 선생과 서북지역의 인연  

정암 선생은 개국 공신 조온의 5대 손으로 본시 훈척 계열이었지만, 문경공 김굉필에게 수학하면서 사림[士林]의 영수가 될 수 있었다. 김굉필은 유배 중이었음에도 조광조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우리나라 유학의 정통 학맥을 잇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성리학의 대중화 위훈삭제 소격서 혁파 전제 개혁 등 요즘 말로 경제 민주화를 시도했다. 성리학적 도학 정치를 구현하려다 전라도 화순애 유배되었다가 사사된다. 인종 때 신원[사면]되고, 선조 때 기 대승의 상소로 영의정에 추증 되고 문묘에도 배향되었다. 사상과 학맥은 백인걸을 통해 율곡에 전해졌으며 퇴계 선생에게도 전수되어 조선 실천 유학의 관점에서 성인화되고 있다.  

기호학의 조종으로 주기론적 입장에서 실천 유학의 정립과 보급에 힘써. 배향 서원으로 서도(경기 황해, 평안도)와 동북(함경도)지역에서 가장 많다. 동인(영남인)과 서인(기호인) 쪽에서 동시에 추앙 받고 있다. 북인[조선인공]들의 반응은 잘 알 수 없으나 서북과 기호 지방의 학문적 경향이 주기론적 입장이고 정암의 개혁 사상은 북에서도 추구하는 가치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경제민주화 정책은 여야가 같이 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암은 남인[남한]과 북인[북선]에서 동시에 추앙 받는 선조로 예상된다. 

평안도 희천에서 환원당 선생과 사제의 인연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_선조40~1689_숙종15) 선생이 지은 (심곡서원) 강당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우암 송시열의 강당기(심곡서원 소재)

 

 

 

조정(朝廷)에서 이미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였으니 그 융숭하게 보답함이 극진하였고, 지방 유생들이 또 묘소(墓所)의 곁에 사당(祠堂)을 세워 신주(神主)를 모셨지만 강당(講堂)은 미쳐 지을 겨를이 없었다. 그 뒤에 유생과 관리들이 또 다시 의견을 모으고 물자를 마련하여 효종(孝宗) 10(1659) 3월에 착공하고 현종(顯宗) 2(1661) 봄에 준공하였으니, 글 읽고 휴식할 처소가 이에 대략 갖추어 졌다.(정암집에는 1657년으로 기록되어 차이가 있었으나 상량문 기록이 발견되어 1659년이 정당하다)  

선생의 5세손(世孫)으로 지금 삼산부사(三山府使)로 있는 위수(渭叟)군이 제생(諸生)들을 위하여 나에게 기문(記文)을 요구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선생이 우리 동방에 태어 난 것은 마치 염계(濂溪)가 송()나라에 태어난 것과 같다. 어찌 반드시 주고받는 차례가 구슬을 꿰는 것처럼 차서(次序)가 있은 뒤에야 도학을 전하는 것이 되겠는가. 무릇 후인으로서 이강당(講堂)에 오르는 자는 한갓 선생의 용색(容色)과 성음(聲音)만을 상상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선생이 배운 바를 강구(講求)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주돈이(周敦頤: 1017~ 1073)는 중국 북송(960-1127)의 유교 사상가이다.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존칭하여 주자(周子)라고도 한다. 송나라 시대 유학의 형이상학적 사유는 주돈이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평가되는 분이다. 조선의 주돈이가 곧 정암 선생이란 뜻이다 이어서 강당기 맨 끝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그것은 문경공(文敬公- 환원당 김굉필의 시호)을 희천(熙川)에서 따르던 때의 유사(遺事, 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사적)로서 나이 겨우 17세 때의 일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경공이 한 가지 맛진 음식[꿩을 말린 고기]을 얻어 장차 그 어머니에게 보내 드리려 했는데, 간수하는 자가 삼가지 않아 치악(鴟鶚_솔개)이 움켜 갔으므로 문경공(文敬公)이 노발대발하였다. 선생께서 나아가선생께서 봉양하시는 정성이야말로 참으로 지극하오나, 군자(君子)는 사기(辭氣,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를 잠깐이라도 그대로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하였다. 그러자 문경공(文敬公)은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무릎 앞으로 가서 손을 잡고는,내가 네 스승이 아니라 네가 실로 나의 스승이구나하면서 하루 종일 큰소리로 칭찬하였다.> 선생의 아름다운 자질은 참으로 고금에 뛰어 났고, 문경공(文敬公)의 선()에 복종하는 도량(度量) 역시 선생에게서 발 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희천(熙川)지방의 노인들은 지금까지도 전하여 미담으로 삼는다. 이 일은 강당(講堂)에 게시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아울러 기록한다. 숭정 (崇禎) 계축(癸丑,1673)10월 일에 은진(恩津) 송시열(宋時烈)이 기록하다.’ 

이 이야기는 정암이 어떻게 문경공과 사제지간이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문경공 환훤당 김굉필(1454-1504)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장() 80대와 원방부처(遠方付處)의 형을 받고 평안도 희천에서 2년 동안 유배살이를 하였다. 문경공은 유배지에서도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힘썼는데, 특히 조광조와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조광조는 17세 살이었는데, 어천찰방(魚川察訪-영변과 희천의 중간지점 )으로 부임하는 아버지 원강(元綱)공을 따라왔다가, 인근에서 유배 중이던 김굉필을 찾아가 수학하였다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은 성리학자철학자정치가이자 시인작가로서, 유교 주자학의 대가이자 노론의 영수였다.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호는 우암(尤庵)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대로(大老), 송자(宋子), 송부자(宋夫子)이다.의정부 좌의정 영중추부사에 이르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번의 예송 논쟁에서 중심 인물이었다. 제주도에 유배됐으나 숙종 때 장희빈의 아들 원자 균을 세자로 지정하는 문제를 반대하다가 숙종의 진노로 국문을 받으러 오던 중 정읍에서 사사된다. 정조(正祖)에 의해 성인(聖人)으로 추숭되어 국가의 스승으로 추대되고 송자로 격상되고 1707년 송자대전(宋子大全)이 간행된다. 한국의 유학자 가운데 도통을 이은 성인을 의미하는 자() 칭호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이름이 3,000회 이상 언급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후기 서인과 기호학풍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상현서원, 어철찰방, 한훤당 유배지 옛지도

희천시 (북부 자강도 )란 어떤 곳인가?  

자강도 남서부, 청천강 상류에 있는 시로 희천 읍성이 일부 남아 있으며, 말봉성우농정영파정 등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가을단풍이 유명한 개고개(价古介)가 있으며, 묘향산의 금선대법왕대척반대고숙대 등이 희천시 영역에 있다. 시와 묘향산을 바라볼 수 있는 초연정옥류각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광천이 많은 곳으로 모두 미약수정아주약수청운약수여침약수관대약수지신약수청량약수 등이 있다. 1959년 평양체신대학으로 출발한 희천공업대학과 희천체신대학이 있으며, 희천고등중학교·남천고등중학교 등이 알려져 있다. 소규모의 탁아소·유치원·군중문화회관·도서관 등이 있다. 

19491월 새로 생긴 자강도(옛 평안북도 일부)에 속하였다가 196710월 희천시로 승격되었다. 희천시는 자강도 남서부 청천강 상류 유역에 있는 도시로서 북부와 북서부는 송원군, 서부는 운산군(평북), 동부는 동신군, 남부는 묘향산 줄기를 경계로 하여 평북 향산군, 평남 녕원군과 각각 잇닿아 있다. 개마고원에서 평안북도로 내려가는 청천강이 자강도에서 평북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관통하는 지역이다. 2012유역 변경식 제2 수력 발전소를 세웠다 

대동여지도와 위성지도를 보면 희천은 주봉을 좌로 하여 상현산이 있고 동강이 흘러오다가 서천의 물과 함해 지면서 두물머리 형성되고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다. 희천 아래는 묘향산 보현사가 있다. 그 아래는 영변이 있다. 희천과 영변과 어천의 중간지점이다 위성 지도에서 희천 주위를 살펴보면 어천(영변)과 묘향산이 가까이에 있다.
 

 

   
▲ 희천시 지도

 

   
▲ 보현산과 핵발전소

북한 자강도에 20124월 완공된 희천발전소가 평양에 직접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재일본 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3일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이날 '희천 발전소, 수도에 전문적으로 공급'이라는 평양발 기사에서 "(희천)발전소는 수도(평양)에 전문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로 규정되고 있다""생산된 전기의 전량을 평양에 직접 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또 "발전소에서 평양까지 이르는 송전선도 동시에 꾸려졌다""새로 설치한 송전선을 통해 희천에서 직통으로 전기가 (평양에) 들어옴으로써 주파수와 전압이 안정된 전력을 시민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김명철 북한 내각 전력공업성 국장도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종전에 평양시는 필요한 전력을 평양화력발전소, 동평양 화력발전소, 북창 화력발전소 등에서 공급받았다.""희천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기는 상당한 정도로 평양시의 전력공급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신보는 "현지에서는 희천발전소 제2단계 건설이 추진 중에 있고 1, 2호 발전소에 이어 청천강 유역에 10개의 중소형 발전소를 (계단식으로) 더 건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지난 45일 준공한 희천1호 발전소와 희천2호 발전소는 청천강 상류에 건설된 유역변경식 발전소로, 발전용량은 30에 달한다.  

   
▲ 희천 2호발전소 모습

희천 근처에 있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및 국제 전람관  

보현사는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 위치한 절이다. 신라 때인 784년 의상에 의해 세워졌고, 1024[고려]에 복원되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1984년에 향산 문헌 보존고를 만들어 옮기고, 지금은 불교의 종교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글쓴이는 2005년 이곳을 방문하고 범문다라기경 박본을 구입하여 가지고 돌아왔다

 

   
▲ 보현사와 국제전람관( 김일성 김정은 부자가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장소)

 


희천시 갑현동 하갑의 지하 핵시설 

 

자강도 희천시 갑현동에 조선노동당 5기계공업총국 예하 핵관련 시설이 있다. 이 시설들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 플루토늄 생산이나 저장, 고폭시험 실시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북은 경수로건설을 지원받는 대신 핵무기 생산을 중단키로 한 북() 합의를 어기고 지하 핵무기 개발시설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뉴스를 공급하는 허스트 뉴스페이퍼즈가 보도했다. 허스트 뉴스페이퍼즈는 이날 미 국방정보국(DIA)의 비밀문서를 인용 북한이 오는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평안북도 묘향산 부근의 향산에서 서북쪽으로 약 4.8떨어진 하갑지역에 지하 핵시설로 보이는 건물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허스트 뉴스페이퍼즈는 또 이 시설물의 용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핵 생산·저장용 시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제의 핵시설은 북한의 핵개발 관련 시설 중 유일하게 지하에 건설된 것으로 미 국방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곳을 최초 공격지점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나 중앙정보국, 국무부, 하원 정보위원회 등 관련기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모두 언급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하갑 지역은 3개 단지로 구성돼 있는데, 공개된 지역의 경우 30개의 건물이 완공돼 있고 현재 5개의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단지에는 또 최소 4개의 터널이 있고 11개의 보조건물이 들어서 있다고 허스트 뉴스페이퍼즈는 전했다.
 

 

   
▲ 지하 핵시설
  1. 맺음  

청천강은 살수 대첩과 감감찬 장군이 거란의 소배압을 물리친 역사적 강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군수공장이 밀집된 제 2경제권 지역이다. 1959년 평양 체신학교가 희천 체신대학과 김책공업대학 체신학부로 갈리고 이어 희천 공업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정보와 통신의 명문대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암 선생은 배향한 상현서원과 양현사의 연계를 상상해 본다. 정암선생은 분명 남북인 동시에 추모하는 드문 인물일 것으로 추론해 본다. 이를 물어볼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또 희천 수력 제 1,2 발전소는 영변 핵 시설과 희천 인근 하갑 지하 핵 시설에다 전력을 공급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수력발전이므로 연료가 거의 먹히지 않는다는 점에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유서 깊은 역사와 교육 도시에 수력 발전소를 짓고 지하 핵 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니 무언가 잘 연결되지 않는 써늘한 감이 돈다. ! 어쩌란 말인가? 이를 무력화 시키고 통일을 지향해야 하지만 멀고도 험한 고개를 또 얼마나 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