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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장인환ㆍ전명운 의사의 샌프란시스코 의거일

[얼레빗으로 빗는하루 2972]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1908년 3월 23일 이른 9시30분 무렵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정거장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한국민족운동사상 첫 의열투쟁이 만천하에 울려 퍼진 것입니다. 장인환(張仁煥, 1876.3.10~1930.5.22)과 전명운((田明雲, 1884.6.25∼1947.11.19) 두 의사가 한국정부의 ‘외교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광분하던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 ns)를 총살 응징한 것이지요.


   
▲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왼쪽), 전명운 의사

육혈포라 불리던 권총을 들고 대기 중이던 전명운 선생이 먼저 앞으로 다가서며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불발되자 그는 총대를 잡고 총두로 스티븐스의 얼굴을 맹타했고, 스티븐스는 그를 잡으려 했지요. 이 순간 스티븐스의 뒤에서 역시 권총을 품고 기다리던 장인환이 세 번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첫발은 아쉽게도 전명운의 어깨에 관통상을 입혔지만, 제2발과 3발은 스티븐스를 명중시켜 그 자리에 쓰러뜨렸지요.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이틀 뒤 25일에 죽었고, 다행히 전명운 의사는 치명상은 아니어서 치료 후 퇴원 구금되었습니다.

스티븐스는 “한국 신정부(정미7조약 후에 일제 괴뢰정부화한 정부)가 조직된 뒤로 정계에 참여치 못한 자가 일본을 반대하나 농민들과 백성은 전일 정부의 학대를 받지 아니함으로 일본사람을 환영한다.”는 등의 거짓 성명을 발표하여 우리 겨레의 분노를 촉발했던 것입니다. 두 의사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은 최초의 의열투쟁 중 하나였으며, 이후 안중근, 강우규, 윤봉길 의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장인환 의사는 “스티븐스는 일본의 보호정치를 도와주었다. 이런 매국노를 죽이지 아니하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를 죽이고 나도 죽는다면 조국 대한의 영광이 될 것이다”(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1908.3.23)라고 선언하였지요. 오늘은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샌프란시스코 의거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