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조동진 겨울비 수록 음반 표지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방안 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 두고 내가 하늘 보며 천천히 밤길 걸었을 때 내 마른 이마위에 차거운 빗방울이 어제 오후부터 시작한 겨울비가 오늘 아침나절까지도 내린다. 그동안 바람이 매섭다며 꼭꼭 닫아 놓았던 베란다 창을 열어젖히고 액자 속 그림 감상하듯 비에 젖은 겨울을 내다본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추위가 온다 하고 이미 고개 너머 세상은 폭설이 내린다니 어쩌면 갑오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비 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해가 또 내게서 떠나는구나! 창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결국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듯이, 나 역시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인생무상의 허탈감을 만끽하려고 밤늦도록 음악과 함께 주(酒)서방과 씨름한 결과가 고통스런 속 쓰림으로 돌아온다. 죽이라도 끓여 먹이려는 아내가 뒤주를 여니 습도 탓인지 유난히 쌀 향기가 진하게 퍼진다. 그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지난해 이맘때쯤 북한의 한 실세 정치인이 실각을 하였다하여 언론매체가 연일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혹시 전쟁이 나지는 않을까 하며 걱정하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625라는 골육상쟁의 참극을 겪은 우리로선 괜한 걱정이라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저 이 땅에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들으며 625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되짚어 보기로 한다. 작사가 반야월(가수 진방남)은 동란이 일어날 즈음 미아리에 살았다. 전쟁 하루 전까지도 전쟁이 나리라곤 상상도 못한 채 콩쿠르 준비에 골몰하다가 새벽녘에 들려오는 포성소리를 듣고서야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자유당정부는 북괴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며 거짓으로 국민들의 동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전쟁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적 치하에서의 생활이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붉은 완장 찬 사람들이 가가호호 뒤지고 다녔고 밤마다 인민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예술인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살기위해서 각 공산단체에 자발적으로 가입을 해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은 사람을 사귐에 있어 꽤나 까다로웠던 모양이다.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흘겨보아 백안시(白眼視)하였고, 자기 마음에 들면 눈에서 푸른 광채가 나며 청안시(靑眼視)하였다 한다. 완적이야 그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아서 그렇다지만 사람을 만나다 보면 괜히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나에게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데도 예쁜 사람이 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러한 현상은 각자 지니고 있는 에너지 파 때문이라 한다. 에너지 파가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 반대일 경우엔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오늘은 그 에너지 파가 아주 잘 맞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러브 스토리를 추억해본다. ▲ 영화 러브스토리 OST 음반 표지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난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했으며 모차르트와 바흐, 비틀즈를 좋아했고 나를 사랑했죠.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눈 내리는 공원 한 모퉁이에 쓸쓸히 앉은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는, 1970년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로 에릭시걸의 소설을 필름으로 담아낸 영상미학의 걸작이다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 백성욱이 떠나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자 김원주는 그를 잊기로 한다. 그렇게 결심이 선 이상 잊힐 때까지 기다릴 김원주가 아니었다. 신문사 기자인 국기열을 사귀기도 하고, 대처승 하윤실과 결혼을 하면서까지 백성욱을 잊으려 발버둥쳤으나 그의 빈자리만 커질 뿐이었다. 하윤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나자 그제서야 그녀는 백성욱의 참뜻을 이해하고 수덕사로 향한다. 하지만 불제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백성욱을 향한 불길이 쉬 꺼지질 않아 몸부림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 오다 세이조와의 관계라든가 아들 오다 마사오에 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물었었다. 다만 꿈길로만 오는 아이 라는 시를 써서 모성애의 흔적을 남기긴 하였다. 김원주는 눈물범벅이 되어 달려드는 아들을 얼음장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송춘희 음반 표지 스님, 웬 남학생이 스님을 찾습니다. 일엽스님은 웬일인지 새벽부터 마음이 뒤숭숭하여 면벽으로 마음을 다 잡고 있었다. 행자승의 전언을 듣고 요사채를 나와 섬돌을 내려서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중학생이 하나 서 있었다. 일엽스님은 한 눈에 그 학생이 핏덩이 때 버린 자신의 아들이란 걸 알아 차렸다. 귀족풍의 자태와 이목구비가 아버지 오다 세이조를 쏙 빼닮아 있었다. 그 학생은 목멘 소리로 어머니!하고 외치며 품으로 달려들었다. 이러면 안 된다! 그리고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 품에 안겨보는 게 소원이었던 소년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품에 안기기는커녕 잠도 절 아래 여관에서 자야했다. 비구니계의 큰 별 일엽 김원주. 그녀는 1896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한 탓에 어렵사리 이화학당을 마쳤다. 졸업은 하였으나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친척의 중매로 스물세 살에 연희전문 교수인 이노익과 결혼하였다. 돈이 많은 이노익은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아내를 출판계의 꽃으로 만들었으나,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와 의족을 찬 불구의 처지인지라 아내의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은 영국문단에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문호(文豪)로 대접을 받는다. 전 12권으로 발간된 실낙원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 따른 낙원에서의 추방, 그로 인한 끝없는 고통과 방랑, 사탄과의 사투 등을 서사시로 그리고 있다. ▲ 한대수 음반 표지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 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도 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그보다 한 세기쯤 먼저 살았던 토마스 모어는 혁명적 내용을 담은 역작 유토피아를 썼다.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없는, 부자도 빈자도 없는 나라. 재산은 공유제로 하고 식사도 공동으로 하며, 공통의복을 입고 공통된 주택에서 사는 평등한 나라를 그렸다. 홍길동이 건설했다는 율도국과 베낀 것처럼 닮아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전 내내 햇살이 봄볕 같았다. 강의가 빈틈을 이용하여 연못가 단풍나무 아래 자리 잡은 나는 장자끄 루소의 고백록을 꺼냈으나 못으로 떨어지는 단풍잎에 눈길이 갈 뿐 영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청룡상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불어온 삭풍에 은행잎이 날리어 하늘은 온통 병아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아련해왔다. 대상도 없는 그 누군가가 그리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수업을 빼먹기로 마음을 굳히고 상경대 강의실을 기웃거렸다. 한 동네 친구 수길이를 불러내어 막걸리 내기 당구나 치러 가자며 꼬드겼다. 우리는 땅거미가 드리우기도 전에 벌써 얼굴이 벌개져서 버스에 올랐는데 많이 본 듯한 여성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옆집 봉님이었다. 우리는 반갑다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봉님이 옆에 또 한 여성이 있었다. 봉님이가 친구라고 소개하는데 보니 탁구선수 정현숙과 많이 닮은 아가씨였다. 포장마차에 들어간 우리는 밤늦게까지 소주잔을 부딪치며 떠들다 보니 어느새 통금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술판을 근처 여인숙으로 옮겨 새벽까지 마셨다. 먼동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에디뜨 피아프 사랑의 찬가 음반 표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당신 한 사랑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매일 아침 사랑이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 품에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건 아랑곳없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세상 끝에라도 가겠어요 검은머리를 금발로 바꾸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밤하늘의 달도 따러 가겠어요 보석을 훔쳐 오라해도 하겠어요 조국도 친구도 버리겠어요 그러다 어느 날 운명의 신이 당신을 데려가 우리를 갈라놓아도 당신 사랑만 있다면 상관없어요 나 또한 당신을 따라갈 테니까 - 에디뜨 피아프 사랑의 찬가 가운데 보고 싶어요. 빨리 와줘요. 배는 너무 느려요. 비행기로 오세요. 이 전화통화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인 사이의 마지막 대화였다. 1947년 에디뜨 피아프는 미국공연 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마르셀 세르당이라는 권투선수를 만났다. 마르셀은 미들급 세계챔피언으로 방어전을 위해 뉴욕에 왔다가 에디뜨를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은 첫눈에 반해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마르셀은 이미 아이 셋을 둔 기혼자였다. 그는 에디뜨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설득하려고 알제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황규현 애원 음반표지 목이 메어 불러보는 내 마음을 아시나요 사랑했던 내님은 철새 따라 가버렸네 허무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소리 그대는 아나요 무정한 내 사랑아 몸부림 쳐봐도 재회의 기약 없이 가버린 그님을 소리쳐 불러본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소식이나 전해다오 얼마 전 40년 만에 동두천을 다녀왔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옛 모습을 잃은 건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그나마 변하지 않고 있는 개울과 역 광장을 토대로 옛 모습을 그려 보았다. 미군 제2사단이 있던 자리며 개천을 따라 늘어선 기지촌자리, 자취방이 있던 생연리. 본토음악 배우겠다고 전국의 기지촌을 떠돌던 시절, 동두천읍 보산리는 기지촌의 대명사이자 8군무대의 대명사였다. 오늘은 기지촌과 8군무대를 회상하며 얘기꽃을 피워본다. 일반적으로 기지촌에 있는 클럽과 8군무대를 같은 존재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 둘 사이엔 엄연히 경계가 있다. 8군무대는 부대에 부속된 클럽을 지칭하는 용어로 장교들이 출입하는 officers 클럽, 하사관들을 위한 NCO 클럽, 사병들이 이용하는 EM클럽이 있었다. 8군무대에 서기 위해선 미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도리스데이 Que sera sera 음반 표지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께 물었어요. 난 커서 뭐가 될까요? 예뻐질까요? 부자가 될까요? 어머니는 말했지요. 무엇이건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 물었어요 뭘 하게 될까요? 그림을 그릴까요? 노래를 할까요? 선생님은 대답하셨지요 무엇이건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내가 자라서 사랑에 빠졌을 때 그이에게 물었어요 우리 앞에 무엇이 있을까? 날마다 무지개가 있을까? 그이는 말했지요 무엇이건 되겠지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Que sera sera 가운데 들판은 연노랑 물감이 칠해지고 있었다. 백설보다도 하얀 뭉게구름들이 쪽빛바다를 떠다니고, 해바라기 꽃은 활짝 벌어져 가냘프게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논 위를 낮게 나는 참새 떼들은 아이들 함성에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그 어느 한 장면도 놓치기 싫어 눈(眼)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니는 메뚜기 안 잡고 뭐 하나? 급우의 채근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들 메뚜기가 가득한 병을 하나 씩 들고 있었다. 오전 수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