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고향집 오막살이가 황혼 빛에 물들어 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는 그곳 아--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 ▲ 박양숙 어부의 노래 수록 음반 표지 새벽녘에 비가 그치기에 서둘러 묵호등대로 향했다. 걸어서 등대에 오르려면 논골담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사실 나는 언덕위에 우뚝 선 등대에서 동해바다의 광활함을 바라본다거나 동해시 전경을 감상하는 일보다 이 길을 더 사랑한다.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지에다 마추피추유적처럼 집터를 닦고, 한 뼘의 땅도 금싸라기보다 귀히 여기며 삶을 가꾸어온 뱃사람들의 내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길. 1940년대부터 오징어 따라 명태 따라 흘러온 사람들이 하나둘 이 언덕에다 집을 짓기 시작 한 게 논골 마을의 기원이라 한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야 어찌 글로 다 표현 될 수 있겠는가. 아랫마을에서 물을 지고 올라가면 이리저리 새고 흘러서 반통밖엔 남지 않았다한다. 리어카도 다닐 수 없는 좁고 가파른 길이기에 명태를 지게에 지고 꼭대기에 있는 덕장으로 날랐다 한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존 레논(JohnLennon)의 Imagine 음반 표지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어렵지 않아요 우리 발밑에는 지옥이 없고 위에는 창공만 있겠죠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해 봐요 어렵지 않아요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 봐요 죽일 일도 죽일 필요도 없어요 종교가 없다고 생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겠죠 나를 몽상가라할지 몰라도 나만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도 우리와 함께해요 세계는 하나가 될테니까 재물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탐욕도 굶주림도 없겠죠 오직 인류애만 있고 세계는 하나가 될테니까 -JohnLennon Imagine 가운데 태국의 어느 난민 수용소.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조국 캄보디아를 탈출한 디스 프란과 그의 미국인 친구 시드니 쉔버그가 감격의 포옹을 한다. 그때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존 레논의 목소리가 영혼을 울리며 영화 킬링필드는 159분의 종장을 맞는다. 롤랑 조페 감독의 1985년 작 킬링필드는 전쟁과 이념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되는 집단학살과 인권 유린, 그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가치마저 짓밟히는 참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화제작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도회지의 거리를 걷다보면 행인들의 매무새가 참으로 다양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옷의 모양이나 빛깔도 그러하거니와 머리모양이나 색깔도 옷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각양각색이다. 다양, 다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청년들은 어떤 형의 여성을 선망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소위 70, 80세대들은 갸름한 얼굴에 긴 머리가 찰랑대는 여성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남성들은 관능미보다 청순미를 선호했다. 일단 머리카락이 길면 겉보기에는 청순해 보인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특히 우리 민족에 있어서 단발의 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남성의 경우에는 고종 32년인 1895년에 일제의 강압에 의한 단발령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들에게는 강제성이 없었기에 1922년에 가서야 모발 현대화가 이루어진다. 한남권번 기생이었던 강향란이 그 효시이다. 하지만 강향란의 단발은 굳은 의지의 표현일 뿐 미용 목적은 아니었다. 강향란의 단발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져 온다. ▲ 1926년 10월 8일 동아일보에 나온 강향란 사진 그녀는 1900년 대구에서 강석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열네 살에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수업을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창틀이 오려낸 네모난 하늘이 빨래줄 위에 펼쳐지던 구월이었다. 때 이른 낙엽 하나가 대숲을 훑고 나온 바람에 얹혀 뫼비우스 띠를 그리며 섬돌위에 살며시 내려앉던 가을의 첫날이었다. 액자 속 그림 보듯 창밖의 풍경들을 감상하던 나는 남천가절(藍天佳節)이로구나. 단 한마디를 신음처럼 내뱉으며 일어나 무언가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벽장으로 골방으로 다시 다락으로 여기저기 틈 있는 곳마다 끼워 넣은 LP판 무더기 속에서 오래된 음반 한 장을 찾아내 먼지를 닦아내고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지직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지는 소리 꽃잎이 피는 소리 노래는 몇 소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아려왔다. 눈시울은 빨개지고 온몸이 촛농처럼 녹아 내렸다. 턴테이블이 돌아갈수록 음반에 새겨진 지난 한 해 세월, 고난의 삼백예순날 하루하루가 전축바늘 끝에서 되살아났다. ▲ 패티김 구월의 노래가 수록된 음반 집안이 몰락하였다는 기별을 듣고 끝내 못다 털어낸 번뇌 조각들을 책갈피에 주섬주섬 끼워 넣은 채 산문을 나서던 날, 범종 소리는 왜 그리도 골짜기를 오래 맴돌던지. 저자거리로 돌아와 뒤늦게나마 가장의 책무를 다해 보겠노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고추잠자리가 늦여름 하늘가에 표산(飄散) 하던 날 헌릉 근처 호젓한 사행(蛇行)길을 빨간 승용차 한 대가 물방개 헤엄치듯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차 안에는 친구사이인 청년 둘이 타고 있었고 때마침 서쪽하늘에 걸린 새털노을은 두 사람의 얼굴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음은 시(詩)를 닮고 시심은 가을로 향하고 바람은 이미 여름을 떠나가고 둘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게 한참동안 가을맞이를 하다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동원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명함만 하게 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모 여성지에 실린 시 한편이었다.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 내려가던 차종태(딕 훼밀리 보컬) 눈에는 어느새 붉은 노을이 녹아 뺨을 타고 흘렀다. 이동원은 대모산 기슭의 어느 허름한 대폿집에 차를 세웠다. 양은주전자를 사이에 놓고 마주앉은 두 사람 사이엔 또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나뭇잎들이 다가올 갈색 세상에 대하여 소곤거리는 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몇 사발로 목을 축인 차종태가 먼저 침묵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동원아, 이 시는 네 노래다. (최)종혁이 형에게 곡을 맡기자. 편곡은? (신)병하 형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앵두 알 만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악수를 마친 교육대장이 한 발짝 옮겨서라는 손짓을 보냈는데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힘든 일주일이었다. 차라리 논산에서 한 달 더 훈련받는 게 낫지 수경사 보충교육은 정말 못 받겠다고 아우성들 쳤지만, 막상 퇴소식을 마치고 나니 그간의 고생은 간데없고 우리 모두의 흰 눈자위는 빨갛게 봉숭아 물감이 들어 있었다. 퇴소 후 우리 동기들은 각 예하부대로 뿔뿔이 흩어지고 서너 명만이 나와 동행했다. 우리가 당도한 곳은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사령부였다. 나는 그 곳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근무할 처부가 정해지고 겨우 부대 내 건물의 위치를 알아갈 즈음 내가 DJ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처부에서 처부로 번져 나갔다. 나를 예쁜 아가씨라 생각하고 한 번 읊어봐. 이 하느님께서 졸리시는데 잠 쫓는 멘트를 시작한다. 실시! 말년 병장들은 훈련과 근무에서 열외 되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주 좋은 소일거리였다. 너 연애편지도 잘 쓰지? 일과 끝나고 나를 알현한다. 알겠나? 나는 대장보다도 높다는 자칭 오성장군의 명을 받들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고 떠들썩할 때니까 1970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식구는 서울 변두리 어느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올라간 빈농가정이 수도 서울에 발붙일 곳은 그런 판자촌밖엔 없었다. 전력사정이 나빠 걸핏하면 정전이 되어 자주 남포등을 켜야 하는 동네였다. 상수도 혜택은 더욱 알량하여 물지게로 산 아래 동네에 있는 공동수도에서 길어 와야만 했다. 갈수기엔 그나마도 공급이 끊겨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절(寺)이나 계곡으로 물을 찾아 헤매야 하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버텨야만 하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비록 봉지쌀을 사다먹고 새끼줄에 꿴 낱장연탄을 사다 땔지언정 이웃 간의 인정만큼은 넘쳐흘렀다. 굶고 있는 집이 있으면 부족하나마 나누어 먹었고 이웃의 아픔도 내 것 인양 여기며 살았다. 나는 거기서 나를 평생 음악인으로 살게 해줄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나보다 대엿 살 위인 동네에서 하나 있는 대학생 이었다. 반딧불이 같은 별들이 하나 둘 하늘가에 날아들 때면 그는 늘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황금성교회로 나를 데리고 갔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교회마당에서 내려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가마솥처럼 달아오른 대지는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먼지 냄새가 풍겨왔다. 벌써 보름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뜨거운 코피가 인중을 타고 흐르듯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역사 천장에 매달린 바람개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정도면 사람들과 눈빛 마주치는 것조차도 짜증이 나겠지만 그날 용산역에서 경포대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짜증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활기차게 떠들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지난 열흘간 바캉스비용 마련을 위해 막노동판에서 땀방울 깨나 흘린 우리 삼총사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우리를 태운 완행열차는 영주를 돌아서 하오가 돼서야 경포대역에 도착하였다. 망상과 정동진, 안인진으로 이어지는 해안철도도 절경이지만 솔밭으로 둘러싸인 경포대역은 그 가운데 백미 중의 백미요 압권이었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렸을 때 경포백사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때마침 미스터 경포선발대회 결선이 진행되고 있어 그 열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우린 번잡함을 피해 순개울이라는 한적한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밤늦게까지 기타를 치며 한여름 밤의 낭만을 만끽하다 잠이 들었다. 한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