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4. 도랑이 개울·시내·내·가람을 지나 바다로 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이 빗방울들이 어떻게 모여 바다로 갈까요? 이 과정을 토박이말로 이어가 봅니다. 맨 먼저 이 빗방울이 모여 폭이 좁은 작은 도랑이 되고, 도랑이 커지면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 곧 개울이 됩니다. 그 개울이 모이면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란 뜻의 시내가 되고, 시내가 모여 내가 되지요. 그리고 내가 모이면 다시 가람이 됩니다. 가람은 원래 강의 토박이말인데 이제 토박이말은 사라지고 한자말 강만 남았지요. 이 가람이 모여 모여서 바다로 갑니다. 바다는 다시 바닷가에 가까운 든바다가 있고, 뭍에서 멀리 떨어진 난바가다 있지요. 하지만, 강처럼 이 든바다·난바다는 잊히고 근해·원양만 남았습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일 때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곧 메밀꽃이 있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크고 사나운 물결이 넘실거리며 너울이 칩니다. 참고 :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뜨고 지고!≫, 박남일, 길벗어린이
1422. 모든 악기의 으뜸 거문고 소리를 들어볼까요?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 눈물이 앞을 가려서 / 밤은 바다가 되고 / 거문고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 당신은 거문고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위 시는 한용운의 일부입니다. 선비들은 거문고라는 악기를 통해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를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거문고의 규격도 우주를 축약해 놓은 소우주로 생각하였지요. 하지만, ‘백악지장(百樂之長)’ 곧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는 거문고가 선비를 최고 경지로 이끌지만은 않겠지요. 그래서 한용운 선생은 거문고 연주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리고 거문고줄은 무지개가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선비라 해도 가슴 속을 흐르는 정감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요. 올가을은 이 ‘백악지장’ 거문고 소리에 흠뻑 취해보면 어떨까요?
1421. 해동청이 늙은 닭만도 못할 때 있다 “해동청(海東靑, 조선 푸른매)은 천하의 좋은 매이지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게 한다면 늙은 닭만 못하고, 한혈구(汗血駒, 천리마)는 천하의 좋은 말이지만 쥐를 잡게 한다면 늙은 고양이만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닭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겠으며, 고양이로 수레를 끌 수 있겠습니까.(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위 글은 ≪토정비결≫을 쓴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포천 군수로 있을 때에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는데, 그 중 “사람을 쓰는 데에는 반드시 그 재주대로 하여야 한다.”라는 조목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을 쓸 때는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더불어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분명히 그 사람만 가진 특성이 있고 쓰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한번 생각해볼 이야기가 아닐까요?
1420. 정조임금, 등불을 가리고 세수했다 어린 시절 정조의 모습을 가장 잘 담은 기록은 ≪정조실록≫의 정조 행장이라고 합니다. 그 행장(行狀)을 보면, 정조는 네 살 때부터 ≪소학(小學)≫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날이 밝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는 그의 지나친 독서열을 염려해 “너무 일찍 일어나지 마라.”라고 타일렀고 그다음부터 정조는 “남이 모르게 등불을 가리고 세수했다. [每遮燈而]”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 살 먹은 정조가 ‘등불을 가리고 세수했다.’라고 한 것은 ≪태종실록≫에서 태종이 아들 충녕대군의 건강을 염려해 책을 치우자 병풍 사이에 한 권 남았던 ≪구소수간≫을 몰래 1,100번이나 읽었다는 대목과 비슷하지요. 이렇게 책을 좋아했던 사람이 위인이 되는가 봅니다.
1419. 영화 , 허구지만 명군 격파 통쾌해 최근 영화 이 인기를 끌고 있지요. 신기전은 1448년(세종 30년) 고려말 최무선이 만든 로켓형 화기인 ‘주화(走火)’를 개량한 것으로 대신기전(大神機箭),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 중신기전(中神機箭), 소신기전(小神機箭) 등의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 화약무기의 그림과 규격을 담은 에 신기전의 내용 곧 설계도가 있어서 신기전은 복원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병기입니다. 신기전은 자체 추진력으로 날아가므로 발사장치가 없어도 되지만 문종이 화차를 개발함으로써 발사각도와 방향을 정확히 잡게 되고 한 번에 많은 신기전을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신기전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 신기전을 바탕으로 허구를 보태 만든 것인데 가상이지만 명나라 10만 대군을 격파하는 장면은 참으로 통쾌합니다.
1418. 세종의 어떤 점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했을까요? 어제는 562돌 한글날,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어떤 능력, 어떤 철학이 작용했을까 생각해볼까요? 훈민정음 창제에는 먼저 세종이 음성학, 음운학, 문자학 등에 통달한 대단한 학자인 점이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당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부터 대다수 사대부의 반대가 강력할 것이 뻔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당신의 전문 지식은 아주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밖에 세종이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는 점과 명나라의 간섭을 따돌리기 위한 지성으로 사대하는 듯한 모습의 전술전략을 쓴 점, 훈민정음의 정착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한 치밀함, ≪구소수간≫이란 책을 무려 1,100번이나 읽은 지독한 책벌레였음도 한 몫을 했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백성을 하늘로 생각한 세종임금의 끔찍한 백성사랑이 아닐까요?
1417. 오늘은 한글날, 한글을 아십니까?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한글을 아시나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도대체 한국 사람치고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한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요. 어떤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은 한글, 한국말을 잘 안다는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국어를 12년에서 16년을 배우고도 간단한 맞춤법 하나 모르는 것이 우리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특징이 무엇인지, 훈민정음이 언제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는지, 세종임금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한글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지요. 또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격찬하는 위대한 글자인데도 정작 우리는 그 위대함을 모르고 푸대접하며, 남의 나라 글자인 영어 쓰기에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더 골몰해 있습니다.
1416. 경복궁 흠경각은 백성사랑을 늘 새기던 집 동아시아 농업국가에서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때를 알려주는 일 곧,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임금의 가장 중요한 의무와 권리의 하나였습니다. 이에 따라 세종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재자로서, 하늘의 시간을 땅으로 가져와 백성에게 알려주려고 천문을 관측하고, 해시계와 물시계, 역서(曆書)를 만들어 반포하였지요. 특히 세종은 강녕전 서쪽에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륜(玉漏機輪)을 설치했습니다. 흠경각이란 말은 바로 이 ‘관상수시’를 실천하는 집이란 뜻입니다. 세종은 흠경각을 편전인 천추전 가까이 짓고, 수시로 드나들며,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여 농사지을 때를 알아 백성에게 알려주고, 하늘의 차고 비는 이치를 깨달아 왕도정치의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또 세종은 흠경각루에 갖추어놓은 춘하추동의 풍경과 7달의 농사짓는 모습을 보며 백성 사랑과 농사의 중요성을 늘 되새겼지요.
1415. 영어 몰입교육, 최만리 의 새로운 판 어제는 (재)외솔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말글 정책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의 학술회의가 있었습니다. 외솔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글을 크게 발전시킨 큰 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을 기리는 학술단체입니다. 이 자리에서 발표자들은 해방 뒤 각 정부로 나눠서 해당 시대의 말글 정책을 분석했습니다. 발표자 가운데 부경대학교 김영환 교수는 최만리의 상소문에서의 “이제 동문동궤의 시기를 당하여~”를 예를 들면서 “는 중국 중심의 사대교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미국말을 공용어로 삼자는 말이나 영어 몰입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의 새로운 판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는 ≪중용≫에 나오는 말로써 글쓰기에서 중국 각 지방의 서로 다른 글자의 형태를 통일하고 수레를 만드는 법식을 같게 한다는 말인데 중국 중심의 질서로부터 이탈한다는 뜻입니다.
1414. 훈민정음은 표절이 아니라 독창적 작품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어떤 이는 단군 때 만든 글자인 ‘가림토문자’를 세종이 표절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세종 당시의 중 신미대사가 창제했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그러니 일본 엉터리 학자들은 훈민정음은 일본이 만든 ‘신대문자’를 표절한 것이라고 우기기까지 합니다. 그런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요? ‘가림토문자’는 단군조선이 만든 글자라는 근거를 ‘환단고기’에서 들고 있지만 아직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또 설령 환단고기가 진서라 하더라도 가림토문자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기와에 새겨진 글자라든가 하는 물리적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것이 없어서 확실하게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세종이 뛰어난 학문적 지식으로 당시 존재했던 글자들을 모두 섭렵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글자들을 뛰어넘는 과학적 창제를 했던 것으로 보아야 하기에 표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