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 한복의 색다른 멋 가선 우리 겨레의 옷에서 소매끝·섶·깃 등에 다른 빛깔의 옷감으로 두르는 것을 가선(加襈)이라고 합니다. 옷에 선을 두르는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성행하여 고려·조선까지 이어집니다. 선은 주로 소매끝·깃·섶·도련에 붉은빛이나 검정빛을 두르는데 파랑 또는 흰빛을 두르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선을 둘렀지만 나중에는 점차 장식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고구려 벽화 무용총 주실 동벽의 가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 사대부가 평상시에 입는 옷인 편복에도 깃·도련·소매 끝에 선을 둘렀고, 학창의·중단·적의에도 가선이 있고, 여기에 무늬를 넣기도 했습니다. 깃·끝동·겨드랑이·고름 등을 색헝겊으로 대는 회장저고리에도 가선의 풍습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가선의 풍습은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로 예복에 쓰였습니다.
1391. 조선시대 의궤, 어람용과 분상용이 있었다 조선시대 의궤는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도록 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그 의궤는 임금이 볼 수 있도록 만든 어람용과 의정부·규장각·예조 등 주요관청이나 사고(史庫) 등에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나뉘어 펴냈습니다. 어람용(御覽用)의 겉표지는 붉은색 비단(고종황제 때는 노랑 표지)이고 경첩으로 묶여 있으며 내지는 고급 초주지(草注紙)를 썼습니다. 분상용 의궤는 겉표지를 삼베로 하고 내지는 초주지보다 질이 떨어지는 저주지(楮注紙)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분상용에 견주어 어람용은 반차도(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를 전문 화원이 그려 분상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어람용 의궤의 반차도는 정밀함, 가마나 의장물의 섬세한 표시, 사람의 눈매․수염의 뚜렷한 모습 등 그 가치가 대단합니다.
1390. 세시풍속 삼칠일 이야기 우리 민속에 보면 삼칠일 얘기가 있습니다. 삼칠일은 이레를 세 번 지낸다는 것으로, 즉 21일을 뜻하는데 민속에서 금기하는 때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출산풍속에서 중요한 날로 아기를 낳으면 초이렛날, 두 이렛날, 세 이렛날에는 밥과 국을 마련하여 삼신할머니에게 올립니다. 또한 삼칠일 동안 출산을 했음을 알리고 액을 막기 위하여 금줄을 쳐 두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상을 당하는 등 부정한 사람 등의 드나듦을 막아 부정 타는 것을 방지합니다. 또 단군신화에서 보면 환웅이 곰과 범에게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하고 했지만 삼칠일인 21일 만에 곰이 인간으로 변신했습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삼칠일 만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삼칠일이 부정을 쫓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주술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암시했던 것이지요.
1389.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했던 한반도의 구석기 사람들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인정되었던 것은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였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약 3000년이나 더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한국에서 발견됐다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2003년에 보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기관인 지오크론(Geochron)과 서울대의 AMS연구팀이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견된 탄화볍씨 59톨로부터 동일하게 얻은 것이기에 인정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겨레는 이미 1만 5,000년 전부터 벼를 재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밖에 청원 두루봉동굴 유적 자료들을 볼 때 한반도의 구석기 사람들은 장례문화와 더불어 동물을 숭배한 토템의식, 일상생활에서의 꽃의 사용 등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반도 문화가 무조건 외부로부터 유입됐다는 이야기는 고쳐야 할 것입니다. 참고 :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임재해, 지식산업사
1388. 고조선 청동거울,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잔무늬거울)”은 고조선이 만들어낸 뛰어난 청동거울입니다. 거울 뒷면에 새겨진 기하학적 무늬는 높이 0.7mm, 폭 0.22mm로 구성된 13,300개의 정밀한 직선, 1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동심원, 그 원들로 등분하여 만든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삼각형 따위가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무늬의 선은 머리카락 굵기에 불과한데 이렇게 정교한 선이 새겨진 청동거울은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이제까지 발굴된 적이 없습니다. 또 직선과 동그라미들이 이루는 기하학적 배열은 현대 컴퓨터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다고 하지요. 이런 청동거울을 기원전 4세기경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고조선의 청동합금 기술은 황하 중류의 중국 것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다뉴세문경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나요? 참고 :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김병기, 역사의아침
1387. 엉터리로 복원된 오목해시계(앙부일구)들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목해시계 곧 앙부일구(앙부일귀)입니다. 세종실록 77권 19년(1437년) 4월 15일 내용을 보면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仰釜日晷, 오목해시계)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惠政橋)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연구소를 제외한 어떤 곳의 오목해시계 복원품에도 12지신 그림은 없습니다. 그저 “子時(자시)ㆍ丑時(축시)ㆍ寅時(인시)”처럼 한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에겐 이 해시계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은 온데간데없는 것이지요. 동국대 김슬옹 교수는 한 학술대회에서 오목해시계의 올바른 복원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1386. “숭정경오 풍정도감의궤”를 아시나요? 조선시대에는 많은 “의궤”를 펴냈는데 의궤는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지요. 이에는 '가례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친경의궤'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의궤 “숭정경오 풍정도감의궤(崇禎庚午 豊呈都監儀軌)”도 있습니다. 이 의궤는 1630년(인조 8년) 3월, 인경궁(仁慶宮)에서 인목대비의 풍정(豊呈) 의례를 거행한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풍정’이란 국가에 기쁜 일이 있을 때 이를 축하하고자 신하가 임금 또는 왕비에게 음식을 바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인조가 인목대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잔치를 연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 의궤는 프랑스에 있는 1건이 유일본으로, 왕실이 보관하던 어람용(御覽用)이 아니라 주요 관청이나 사고 등에서 보관하던 분상용(分上用)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프랑스는 약탈해간 이 의궤를 돌려줘야 할 것입니다.
1385. “속풀이”로 편안한 삶을 누려볼까요? “속풀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주변에는 ‘속풀이 해장국’, ‘속풀이 재첩국’, ‘개운한 국물이 속풀이에 그만이다.’처럼 쓰입니다. 여기서 ‘속풀이’는 ‘속을 푸는 일’이란 뜻인데, ‘속’은 ‘속이 쓰린다. / 속이 아프다. / 속이 거북하다. / 속이 더부룩하다. / 속이 메스껍다. / 속이 울렁거린다.’ 등에 쓰인 ‘속’으로 ‘사람 몸속’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전에서 ‘속풀이’를 찾아보면 ‘분풀이’의 잘못 또는 ‘분풀이’의 북한어라고 나옵니다. 사전이 ‘속풀이’라는 말을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은 것과 분명히 다른 뜻의 ‘속풀이’와 ‘분풀이’를 연결한 것은 잘못입니다. 여기서 ‘속풀이’는 ‘답답한 마음이나 생각을 풀어 버리는 일’의 뜻으로 쓰입니다. ‘풀이’라는 말은 우리말에 자주 나타나는데, ‘모르거나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밝히어 말하는 일’ 또는 ‘어떤 문제가 요구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일’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참고 :
1384. 신과 인간이 함께 먹는 헛제삿밥 안동지방에 가면 “헛제삿밥”이란 음식이 있습니다. 헛제삿밥은 원래 제삿날 조상신과 후손이 함께 먹는 제사용 음식입니다. 그런데 이 제삿밥이 맛이 있기에 평상시에도 일부러 제사 이 제사 때 올리는 음식들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헛제삿밥”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밥과 음식이 부족했기에 조선 시대에 살았던 몇 명의 학자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헛제사를 열어 맛있는 제사음식을 즐겼다는 설과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상민들이 쌀밥이 먹고 싶어 헛제사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데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헛제삿밥은 이제 안동지역의 중요한 향토음식이 되었습니다. 안동 헛제삿밥은 흰 쌀밥과 탕에 도라지, 고사리, 무, 시금치, 콩나물, 토란, 박 등의 익힌 나물 그리고 전류, 산적, 생선 등으로 구성됩니다. 또 헛제삿밥은 제수 음식이었으므로 양념에 파, 마늘 같은 냄새가 강한 재료는 쓰지 않았습니다.
1383. 글과 그림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예술, 배첩장 조선의 글과 그림은 종이ㆍ비단 따위를 붙여 미적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실용성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 서화처리법을 거쳐 족자ㆍ액자ㆍ병풍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 공예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배첩장(褙貼匠)”이라고 부르지요. 배첩장은 조선시대 초부터 제도화되어 도화서 소속으로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하던 전문 기술자로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보유자는 서울시의 김표영 선생입니다. 배첩의 제작기법은 액자ㆍ병풍ㆍ족자ㆍ장정 그리고 고서화 처리의 다섯 가지인데 이 가운데 장정은 표지나 속지가 상한 고서 처리를 말하며, 고서화 처리는 높은 안목과 기술을 갖춘 배첩의 최고 경지로 분해-가(假)배접-세탁-배접의 과정이 있고, 경우에 따라 손상된 서화 부분에 붓을 대는 수정작업이 따릅니다. 표구는 배첩과 비슷한 말이지만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용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