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3. 거문고, 그 소리가 그칠 때 빈자리를 마음이 채워준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거문고를 늘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걸어두고 책을 읽는 사이에 틈이 생기면 거문고를 당겨 간단한 곡조를 타곤 했습니다. 그것은 공부하다가 잠깐잠깐 잡념이나 사특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군자가 되는 길은 사특한 마음과 욕심을 다 털어버린 경지에 이르는 수준이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지요. 그래서 예(禮)와 악(樂)을 다 동원하여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또 사특한 마음을 없애고 욕심을 털어버리는 음악은 소리가 요란할 필요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이란 소리가 계속 울릴 때보다는 소리가 그칠 때 그 소리의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데서 마음이 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계속 나는 관악기보다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거문고나 가야금을 좋은 악기로 친다고 합니다. 참고 : “거문고와 관련한 음악사상의 문제”, 최종민
1282. 조선시대 5대 궁궐의 법전 이야기 서울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5대 궁궐이 있습니다. 바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경운궁), 경희궁(경덕궁)이 그것인데 경희궁은 현재 숭정전 등 주요 전각의 기단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궁궐에는 임금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의식, 연회 등 행사를 치르는 공간인 정전(正殿) 혹은 법전(法殿)이라고 부르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법전의 이름은 경복궁엔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엔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엔 명정전(明政殿), 경운궁엔 중화전(中和殿), 경희궁엔 숭정전(崇政殿)입니다. 그런데 모두 이름 가운데가 정(政)자 돌림이지만 중화전만 돌림이 아닙니다. 그것도 처음엔 즉조당(卽阼堂)이었는데 고종의 명으로 태극전(太極殿)으로 고쳤다가 1898년 2월 13일에 중화전(中和殿)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법전들이 궁궐에선 가장 중요한 건물이지요.
1281. 기모노 입고 일본 관광에 열광하는 여성들 요즘 한복산업은 거의 죽어갑니다. 한국 사람이 한복을 입지 않으니 한복산업이 살아날 리가 없지요. 몇 년 전 한 여고 박물관에서 열린 어린이 한복 전시회에 구경온 여고생들이 한복은 제대로 보지 않고 기모노 앞에서 흥분하는 것에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모노를 입고하는 일본 관광에 열광하는 젊은 여성들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기모노를 입어보고 좋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나라 옷은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남의 것만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여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달 한 한복단체는 대통령 취임식 때 대통령이 한복을 입어달라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는데 이 행사에 참석한 회원들의 2/3가 한복을 입지 않은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에게 한복을 입으라고 권장하면서 자신은 입지 않지 않는 우스운 꼴이었지요.
1280. 고약한 사람을 이르는 갈개발, 들때밑 남을 괴롭히는 고약한 사람을 이르는 토박이말들이 있습니다. 먼저 권세 있는 사람에 붙어서 덩달아 세도 부리는 사람은 ‘갈개발’이라고 합니다. 원래 갈개발은 연 아래 양 귀퉁이에 붙이는 종잇조각 곧 연의 균형을 잡아주는 날개를 말하는데 뜻 그대로면 지도자를 돕는 참모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개발은 권세 있는 사람에 붙어서 세도 부리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그에 못지않은 ‘들때밑’도 있습니다. 들때밑은 세력 있는 집안의 고약한 하인을 가리키는데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과 군사정권시절 공안기관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 세력 있는 사람의 주위에서 총기를 어지럽히는 사람은 ‘해가림’, 별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면서 큰소리치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거통’입니다. 그런가 하면 심사가 비뚤어져 하는 짓이 험상하고 남의 일에 헤살을 잘 놓는 ‘불땔꾼’도 있습니다. 참고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1279. 옷칠, 우리 공예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옻칠공예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을 통해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 중 하나인 이 옻칠공예는 한민족의 슬기로움과 얼이 담긴 예술품의 진수로 평가됩니다. 나무는 습기와 온도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이를 막으려고 사용된 것이 바로 옻나무의 분비물인 옻칠인데 이는 우리의 공예를 더욱 아름답게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물건에 옻칠을 하면 나무 표면에 단단하고 견고한 막을 형성시켜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아 나무의 내구성을 크게 향상시켜 줍니다. 옻칠의 주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 옻산)은 공기와 만나면 효소반응에 의해 고분자를 형성하면서 견고하게 굳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고분자의 특이한 3차원 구조가 옻칠의 훌륭한 막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겨레는 독성이 있는 옻칠을 공예작품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습니다.
1278. 우리나라 고유의 운반기구 지게에 담긴 슬기로움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지게는 짐을 얹어 사람이 등에 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반 기구입니다.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도는 “지게는 양 어깨와 등의 힘을 조화시킨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운반기구다.”라고 칭찬했습니다. 또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짧은 거리일 때 보통 체구의 지게꾼이 189킬로그램의 짐을 운반할 수 있는 엄청난 기구라고 했지요. 지게라는 이름이 17세기 말의 어학서 ≪역어유해(譯語類解)≫라는 책에 처음 나와 최소한 300년 이상 된 것은 분명하며, 신라 시대 토우에 지게 비슷한 것이 있는데, 어쩌면 지게의 역사는 삼국 이전부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군은 이 지게를 A자 모양의 틀이라 하여 “A FRAME”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지게에도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은 있었습니다.
1277.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 영어는 나도 어렵다 지난 13일에 한글문화연대가 주최한 영어교육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영어를 잘하는 나라들은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런 상황을 살피지 않고 그들을 따라가려는 자세는 한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영어 하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7년 반을 미국에 살며 영어 공부를 한 나 같은 전문가도 영어는 정말 어려운데 온 국민을 영어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또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인 진중권씨는 “우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우리나라 사람 중 국제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는다. 그 반 사무총장은 발음이 좋지 않은 편인데도 외국인들과 훌륭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교양·상식·지식이 있어야 하고, 사고능력이 있어야 함을 증명한다.”라고 말합니다.
1276. 자연을 껴안은 우리 겨레의 한옥 우리 겨레는 자연과 더불어 하는 사람들인데 그것은 한옥의 구조에서 더욱 확연히 나타납니다. 특히 방에 우럴이창을 내면 먼 산의 꽃과 나무를 가슴 속으로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또 밤에는 하늘을 수놓은 보석같은 별을 세어볼 수 있습니다. 가을엔 저 멀리 산등성이의 불타는 단풍이 보이고, 겨울엔 처마에 달린 고드름의 정겨운 모습이 보입니다. 집을 지을 땐 높은 땅을 맘대로 깎아내지 않고 그저 땅에 맞춰지었지요. 심지어 구불구불한 소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 겨레는 곧은 나무만 집을 짓는 재목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문에 붙인 한지(창호지)는 공기를 소통시키고, 햇빛을 투과시키는 특성이 있지요. 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기에 자연과 한몸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망치지 않고, 자연과 한 몸이 되려는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은 한옥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작거나 화려하지 않은 모양새만 보고 뛰어난 건축물 한옥을 낮춰보아서는 안 됩니다.
1275. 양반가 한옥의 솟을대문 이야기 ‘솟을대문’은 대문 양옆에 붙은 행랑채나 담장보다 높은 대문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들이 타던 외바퀴 수레인 초헌(軺軒)을 탄 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높게 만든 것이지요. 솟을대문이 양반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자 조선 후기에 가면 양반집이 아니어도 솟을대문을 짓기도 했습니다. “참자주빛 진달래꽃잎은 바람의 솟을대문 / 햇빛의 농도에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 열렸다 닫히고 닫혔다 열리는 꽃잎 대문으로 / 푸른 하늘이 들락거린다 흰구름이 들락거린다 / 산비둘기 울음도 들락거린다” 이라는 이해리 님 시 일부입니다. 솟을대문이 진달래꽃잎에 옮겨져 아름다운 시어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산골짜기마다 ‘바람의 솟을대문’ 진달래꽃잎 천지가 되겠지요.
1274. 한자말이 우리말의 70%가 아니다 얼마 전 한 학술회의에서 어떤 학자는 “우리말 속에 한자말이 70~80%를 차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일까요? 지난 90년대 국립국어원에서는 당시 소설에 쓰인 낱말들을 분석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많이 쓰인 낱말 가운데 한자말은 33위에 ‘여자’가 들어 있었고 100위 안에 8 낱말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실제 쓰이는 말에 한자말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국어사전에 ‘고수부지’, ‘매물’, ‘부지’, ‘촌지’ 따위의 일본 한자말을 무분별하게 담는 대신 아름다운 우리 토박이말은 사투리라고 모두 빼버렸기에 올림말 가운데 한자말이 부쩍 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속에 한자말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왜곡된 것입니다. 김수업 우리말대학원장처럼 글을 한자말이 거의 없이 토박이말로 쓰는 분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