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 변소에는 변소각시가 있다. 옛 사람들은 뒷간을 맡는 귀신인 변소각시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방에 따라 측신(厠神), 칙간조신, 부출각시, 칙시부인, 칙도부인이라고 하며, 젊은 여자귀신이라고 생각했지요. 6이 들어 있는 날짜에 나타난다고 하여 이날은 뒷간에 가는 것을 삼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뒷간에 신발을 빠뜨리거나 사람이 뒷간에 빠지면 떡과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측신에게 빕니다. 이 측신각시는 머리카락이 길어서 그것을 자기 발에 걸어놓고 세는 것이 일인데 그러다가 사람이 뒷간에 올 때 자기를 놀라게 하면 그 머리카락을 뒤집어씌우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병이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밤에 뒷간에 갈 때는 헛기침을 한다고 하지요. 강원도에서는 뒷간을 지으면 길일 밤을 택해서 뒷간에 불을 켜고, 그 앞에 음식을 차린 다음, 측신부적을 써 놓고 제를 지냈습니다.
1102. 우물 속의 달을 병 속에 담았네 산속 스님이 달빛을 탐내더니 / 병 속에 달까지 같이 담았네 / 절에 돌아와서야 깨달았지 / 물을 쏟으니 달도 없어진다는 것을(山僧貪月色 竝汲一甁中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 위 글은 고려시대 문신이며, 문장가인 이규보가 쓴 “우물 속의 달(井中月)”이라는 한시입니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의 책을 냈으며, 몽골군이 침입하자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문장가였습니다. 그런데 이규보는 이 한시를 어떤 생각으로 썼을까요? 이 한시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은 탐내지 말아야할 것도 탐을 내지만, 그것은 우물 속의 달처럼 허무하게 없어진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이 시는 아름다움과 함께 교훈을 줍니다.
1101. 1930년대 조선문화를 대표하는 사람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조선문화를 대표하는 사람들에는 누가 있을까요? 당시의 일본잡지 “조선판 1939년”에는 조선의 각계 인사 100명 선정을 현상 모집한 결과가 있습니다. 이에는 당시 민족지도자 여운형, 한용운, 조만식과 친일문학인으로 꼽히는 이광수, 최남선, 한글학자 최현배, 그리고 손기정, 최승희, 문예봉 씨 등도 보입니다. 그런데 이중엔 판소리 명창 3분이 들어 있습니다. 근세5명창 중의 하나인 이동백과 여류명창 박녹주, 이화중선 등입니다. 문제는 이동백은 분명 명창으로 표기했지만 박녹주, 이화중선은 “기생”이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조선시대 이후 기생은 악가무를 겸비한 예인이기는 합니다만, 명창들을 굳이 “기생”이라고 표현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또 일제강점기에 음반이 100만 장 이상 팔려 유명했던 임방울 명창이 빠진 까닭도 궁금합니다. 참고 :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 윤소영 외, 어문학사
조선일보 사설 5달째 꼴찌 국어문화운동본부, 6대 일간지 5월 사설 문장 평가 결과 발표 ▲ 6대 일간지 5월 사설 평가표 ⓒ 국어문화운동본부 조선일보 사설이 5달째 꼴찌이다. 의도적인가? 국어문화운동본부(회장 남영신, 이하 본부)는 지난 1월부터 주요일간지 사설을 비교분석해왔다. 이번 달로 다섯 번째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꼴찌를 여전히 내놓지 않았다.이번 발표에서 종합적으로 가장 잘못이 적은 신문은 134.3점의 한겨레로 평가되었고, 종합적으로 가장 잘못이 많은 신문은 257.3점의 조선일보였다. 또 국어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적은 신문은 한겨레, 국어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많은 신문은 조선일보, 논술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적은 신문은 경향신문, 논술 부문에서 가장 잘못이 많은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 논술 부문에서 완벽한 점수(0점)를 받은 경향신문 2007년 05월 19일자 “남북 철도, 우선 개성까지라도 상시 개통을”이란 제목의 사설 전문 ⓒ 경향신문 이번 평가의 가장 특징은 경향신문 2007년 05월 19일자 “남북 철도, 우선 개성까지라도 상시 개통을”이란 제목의 사설이 논술 부문에서 완벽한 점수(0점)를 받았다는 점이다. 논점을 제대로 형성하였
1100. 심의ᆞ학창의 등 옷에는 가선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평상시에 간편하게 입는 옷인 편복(便服)에는 심의ᆞ학창의ᆞ중단ᆞ적의 따위가 있었는데 이들 옷에는 모두 가선이 둘러 있었습니다. 또 여성들의 회장저고리에도 가선의 풍습은 남아 있지요. 가선은 옷의 소매끝, 깃, 섶, 도련 등에 다른 빛깔의 옷감을 두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려ᆞ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선은 주로 붉은빛이나 검정빛깔이 많았지만 파랑, 흰빛들도 있었습니다. 상대시대의 가선은 모피를 옷 안에 넣고, 겉에는 옷감으로 지은 옷에 모피가 약간 밖으로 드러내도록 한 것으로 실용성이 주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엔 이 가선은 점차 장식용이 되어갑니다. 가선은 우리 겨레가 입었던 옷의 또 다른 아름다움인데 지금의 한복에도 응용해보면 어떨까요?
1099.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을 아시나요? 혹시 자개농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전엔 자개로 장식한 농이나 상자들을 흔히 보았습니다. 자개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 등 화려한 빛이 나는 조개껍질을 써서 장이나 상자들에 장식을 한 것을 말합니다. 그 자개의 재료 가운데 여수와 부산 사이의 한려수도에서 잡히는 것이 빛깔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 재료로 자개 무늬를 만들어 표현하면 조개 특유의 오색영롱함을 내뿜는 신비감을 드러내는데 오색영롱함을 내뿜는 것은 조개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무색투명한 결정체여서 빛을 받았을 때 무지개와 같은 색광현상이 일어나는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조개껍질로 아름다운 조각을 하여 공예품을 만들고, 장 등에 장식하는 사람을 나전장이라고 합니다. 1962년 재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나전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이 되어 현재는 송방웅, 이형만 두 분이 나전장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098. 부산시와 인천시는 영어에 미치지 말아야 최근 부산시와 인천시는 영어도시를 만든다고 발표하여 한글단체의 큰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그동안 각 지방자치단체가 수천 억 원씩 들여 영어마을을 설치하고 영어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전문가들은 전혀 실효성이 없는 짓을 했다고 비판합니다. 예산은 국민의 혈세입니다. 서민들은 아직도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서민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에 엄청난 예산을 쓰는 지자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요? 영어를 배우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언어에 대해선 한 푼의 예산도 쓰지 않으면서 영어에 목매다는 모습은 문화사대주의가 아닐까요? 한글맞춤법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영어는 조금만 틀려도 큰일 나는 듯 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외국인들이 보면 뭐라 할까요? 번역이나 통역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은 영어를 몰라서가 아니고, 국어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1097. 서도민요를 들어보세요. “구부러졌다 활나물이요 펄럭펄럭 나비나물 / 이나물 저나물 바삐펴서 채광우리를 채와가지구 해지기전에만 집에 가자 / (후렴)끔대끔대 끔대끔 놀아라 끔대끔대 끔대끔 놀아라“ 서도민요의 하나인 ‘나물타령’ 일명 ‘끔대타령’인데 2박 계통의 빠른 장단으로 여러 종류의 나물을 열거해 나가는 것으로 참 재미있는 노래이지요. 서도(潟)소리는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평안도ㆍ황해도 등 관서지방의 향토민요입니다. 우리나라 민요는 크게 경기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제주민요, 서도민요 따위로 나뉩니다. 서도소리의 선율은 흔히 ‘수심가토리’라 하여 위의 음은 흘러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가락으로 되어 있는데, 느리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줍니다. 서도소리는 크게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안주애원성 따위의 평안도민요와 긴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의 황해도민요가 있습니다.
1096. 남을 살피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살피라 “남을 살피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살피고, 남에 대해 듣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들으라.(與其視人寧自視, 與其聽人寧自聽)” 위는 천문ㆍ지리ㆍ율력(律曆)ㆍ복서(卜筮, 점의 한 방법)ㆍ산수 따위에 통달하고 특히 주역(周易)에 정통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위백규(魏伯珪, 1727 ~ 1798)가 열 살 때 지었다는 에 나오는 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 잘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고, 제 허물은 덮어 가립니다. 남 비방하는 말은 솔깃해서 듣고, 남이 제 말 하는 것은 못 견딥니다. 하지만, 공연히 바깥 말에 솔깃하기보다, 내 눈을 똑바로 뜬 채 내가 나를 보고, 내 귀를 열어 놓은 채 내가 나를 듣는 것이 백번 낫다는 말입니다. 남의 눈에 티끌이 보이지만 혹시 내 눈 속에는 대들보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위백규가 열 살 때 깨달은 이치를 우리는 나이가 먹어도 잘 실천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