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 일제의 “내선일체”, 잡지에서도 거들었다. 최근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는 어문학사를 통해서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 완역판을 펴냈습니다. 이 잡지는 “모던일본”이라는 일본 잡지인데 조선판 특집으로 발행한 것입니다. 여기엔 조선 가정부인의 생활모습, 조선 영화를 말한다, 해외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들(조선인) 등 당시 조선의 생활문화를 묘사했고, 평양기생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주된 내용은 “내선일체(內鮮一體)”입니다. 일본의 정치평론가 미타라이 다쓰오의 “내선일체론”, 조선총독부 학무차관을 지낸 세키야 테이자부로의 “내선일체와 협화사업” 등의 글을 실어 일본제국주의의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내선일체론”에서는 “내선 두 민족은 이제 분립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라며 단정 짓기까지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를 잡지에서도 거들고 있었습니다.
1002. 한양으로의 천도, 동전을 던져서 결정했다. 태종실록 4년 10월 6일조에 있는 글입니다.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예배(禮拜)한 뒤에, 조상의 혼백을 모신 묘당(廟堂)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이천우에게 명하여 밥상 위에 동전을 던지게 하니, 새로 정한 서울은 2길(吉) 1흉(凶)이었고, 송경(松京)과 무악(毋岳)은 모두 2흉(凶) 1길(吉)이었다. 이에 임금이 한양으로 서울을 천도하기를 결정하고, 땅의 생김새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여 향교동(鄕校洞) 동쪽 가에 이궁(離宮, 태자궁)을 짓도록 명하고 ㆍㆍㆍ” 나라의 중대사인 도읍지를 결정하는데 왜 태종은 동전을 던지는 ‘척전(擲錢)’이라는 방법을 썼을까요? 아마도 이는 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보다는 명분과 정당성을 내세우려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묘에 모신 영령의 뜻이 한양에 있다며 한양으로의 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입니다. 참고 : “에치디역사스페셜 동아시아 문명의 클라이맥스, 고려와 조선”, 효형출판
1001. 시물을 관찰하여 자신을 반성하라. “저 대나무는 좀벌레 때문에 그 본성을 잃어버리고, 사람은 욕심 때문에 타고난 성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병들어 있다면 그 사람을 무엇에 쓰겠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사물을 관찰하여 자신을 반성하라.’ 하지 않았는가? 내가 저 병든 나무를 보며, 이 글을 쓰는 것이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위 글은 조선 선조 때 진주 지역에서 남명학파가 뿌리를 내리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 하수일(河受一)의 ‘송정집(松亭集)’에 나오는 ‘병든 대나무를 보고(病竹說)’란 글의 일부입니다. 기개의 상징인 대나무가 병들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람도 저 대나무와 같이 욕심에 병이 들면 본래의 착한 본성을 잃어버린다는 교훈의 글입니다. 주위의 사물을 볼 때에 그저 단순히 바라볼 일이 아니라 그 사물을 관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삶을 산다면 바람직할 것입니다. 참고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 조면희, 현암사
1000. 즈믄 번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쓰면서 오늘로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즈믄(1000) 번을 맞았습니다. 지난 2004년 6월 4일 “넥타이를 매고, 건강을 잃고”를 시작으로 “85. 천상의 음악 “수제천(壽齊天)”을 아시나요?. “139. 젖가슴이 보일락 말락 하는 여자저고리”, “184. 세밑,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담치기’ 풍속”, “402. 백제시대의 휴대용 소변기를 아십니까?”, “468. 혼자 훈민정음을 창제한 천재, 세종임금”, “600. 향원지로 들어가는 물과 삶의 여유”, “795. 조선 태종 때 코끼리 기르기에 온 나라가 쩔쩔매다.“ 등의 글을 썼습니다. 이렇게 즈믄 번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얼레빗을 누리편지로 받으시는 1400분과 여럿 인터넷 언론을 통해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루가 멀다하고 답글을 보내주신 분은 제게 큰 응원이 되었지요. 특히 이무성 화백님의 귀한 그림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에 손뼉을 쳐주셨던 모든 분께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쓸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 일부를 골라 책으로 낼 것입니다.
999. 어제는 청명, 오늘은 한식 청명 때가 되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논 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합니다.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은 겹치거나 하루 차이여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내 나무'라고 부릅니다. 또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민요 ‘나무타령’을 들어보세요. `청명 한식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998. 조선시대 대비나 중전은 언문으로 교지를 내렸다. 그동안 우리는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이 일부 부녀자만 썼으며, 언문이란 말로 푸대접을 받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슬옹 박사의 ‘조선시대 언문의 제도적 사용 연구“(한국문화사, 2005)란 책을 보면 당당하게 대접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명종실록 20년(1565년) 9월 15일의 “중궁이 언문 교지로~”, 광해군일기 원년(1608년) 2월 14일자의 “대왕대비의 언지에 계자를 찍어 빈청에 내리기를~”, 정조실록 10년(1786년) 12월 1일의 “왕대비께서 빈청에 언문으로 하교하기를~” 등의 기록을 보면 대왕대비, 왕대비, 중전처럼 내명부의 어른들은 언문으로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언문교지를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신하들도 언문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언문은 푸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문과는 또 다른 공식 언어였으며, 많은 사람이 언문을 익히고 썼습니다. 쉽게 배우는 훈민정음은 이렇게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997. 쇠고기만 먹지 말고, 돼지고기도 먹자.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을 정말 좋아합니다. 2006년도 돼지고기 소비량은 88만 5900여 톤이며, 이중 삼겹살 소비량이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또 이 삼겹살의 1인당 소비량은 연 9킬로그램으로 쇠고기 전체 1인당 연평균 소비량 6.8킬로그램과 닭고기 8.0킬로그램보다도 높습니다. 그런데 18세기 양반들의 상차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쇠고기 음식입니다. 이때 쇠고기 소비량이 어찌나 늘어났는지 박제가는 “소 도살량이 너무 많다. 조선 전역에서 날마다 500마리가 죽어간다. 그 힘으로 지은 곡식을 먹으면서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라며, 돼지고기를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도성 안에 고깃간이 24개나 있었고, 온 나라엔 50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중국 청나라 황성 안에 고깃간이 단 3개였던 것과 비교되는 수치입니다. 300여 년 전엔 쇠고기를 좋아했고, 지금은 삼겹살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먹거리에도 유행은 있는가 봅니다. 참고 : “한국생활사박물관 10”, 사계절, 2004
996. 일제의 경복궁 파괴하기 경복궁은 조선시대 정궐이었으며, 우리 궁궐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그 경복궁의 법전인 근정전에는 임금만이 앉을 수 있었던 용상이 있습니다. 이 용상에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앉아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분명히 조선의 임금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행위는 물론 상징적이지만 그들의 경복궁 파괴 행위는 철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경복궁의 후원에 있던 용문당, 융무당, 경농재, 경무대 등은 1926년에 모두 헐어 일본 고야산 용산사로 팔려갔으며, 건청궁은 1935년에 헐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제는 절에서 빼앗아온 불상들을 전시했으며, 골프장, 야외극장, 식당, 맥주회사, 은행, 우체국 따위를 세우려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박석이 있던 자리에 무덤에나 깔던 잔디를 깔고, 온돌방을 마루로 바꾸기도 합니다. 참고 :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송용진, 두리미디어
995. 한글전용은 한자를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제게 누리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누리편지에는 한글전용을 하면 한자가 없어지고, 그러면 우리의 고전을 해독할 사람이 없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글전용의 본뜻을 잘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고전을 해독하는 것은 일반인의 몫이 아닙니다.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몫이죠. 당연히 고전문학, 언어학, 역사, 고고학, 한의학 등을 연구하기 위해선 한자 지식은 절대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영, 과학, 예술, 체육 관련자들이 그 어려운 한자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한글전용은 한자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말글생활의 목적은 의사소통입니다. 그래서 한글전용의 본뜻은 세계 최고의 글자인 한글을 쓰자는 것과 함께 어려운 한자말 대신에 쉬운 토박이말을 쓰자는 것입니다.
994. 소금에 대한 상식의 허실 우리가 피해야할 3가지 흰 것으로 백미, 백설탕, 소금을 꼽는데 그 까닭을 웬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하지만, 소금에 대한 진실은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은 천일염의 성분과 사람 체액의 성분은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금을 먹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소금은 성인병의 주범으로 몰립니다. 소금은 크게 천일염, 정제염으로 나눕니다. 천일염은 염전에서 채취한 것으로 염도 90%입니다. 하지만, 정제염을 대표하는 꽃소금은 천일염에서 각종 성분을 없애고, 염화나트륨만 남겨 염도가 99.8%나 됩니다. 따라서 사람 몸에 유익한 핵비소 등 각종 성분이 없어지고 염도가 높은 꽃소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몸에 이상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꽃소금 대신 천일염을 볶아 독성을 없앤 구은소금이나 대나무와 황토, 송진으로 구운 죽염을 쓰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