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궁둥이, 방둥이는 같은 말? [서평] “나만 모르는 우리말” ▲ ‘나만 모르는 우리말’ 책 표지 ⓒ 모멘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쓰는 말이 헷갈릴 때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궁둥이”, “엉덩이”, “방둥이”이다. 하지만, 이를 분명히 알고 구별해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엉덩이와 궁둥이는 신체의 다른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몸의 뒤쪽 허리 아래에서 허벅다리 사이의 살이 볼록한 부분을 볼기라고 하는데 ‘엉덩이’는 이 볼기의 윗부분이고, ‘궁둥이’는 엉덩이의 아래로써 앉으면 바닥에 닿는 부분을 말한다. 이와는 다르게 ‘방둥이’는 길짐승의 엉덩이를 따로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는 알쏭달쏭 헷갈리는 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이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단체도 드문 편이다. 살면서 말글은 마치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그런데 마침 이를 친절하게 바로잡아주는 책이 나왔다. “나만 모르는 우리말”이 바로 그것인데 조경숙, 김슬옹, 김형배가 공동으로 집필하고, 모멘토에서 펴낸 책이다. 글쓴이들은 국어단체연합의 전문 상담사들로 조경숙은 국어문화운동본부 소속 ‘문장사회’ 회장이며, 김슬옹은 목원대학교
'똥 쌌다'와 '똥 누었다'...무엇이 맞을까? 날마다 받아보는 '우리말 편지' ▲ 날마다 받는 우리말 편지 ⓒ 성제훈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이 반포된 지 벌써 560돌이 지났다. 하지만, 12년에서 16년이나 국어공부를 했는데도 평소의 말글생활에는 문제가 많다. ‘하십시오’와 ‘하십시요’ 가운데 무엇이 맞는지도 모르고, 일본말 찌꺼기나 잘못된 말들을 무심코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부끄러운 줄 모른다. 영어 단어의 철자가 조금만 틀리면 큰일이 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이를 고쳐주거나 가르쳐주는 데가 없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이다. 이때 날마다 ‘우리말123’이라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국어학자가 아닌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공무원 성제훈씨이다. 그는 스스로 농사꾼이라고 자처한다.어느 날 도착한 ‘우리말123’을 읽어보자.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싸다’와 ‘누다’의 차이를 자신의 아이들 얘기에 섞어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그는 다른 편지에서 ‘초죽음’인지, ‘초주검’이 맞는지를 확인해주고, ‘아싸리’와 ‘똔똔’은 일본말 찌꺼기임을 밝혀준다. 또 ‘밥’에 대한 토박이말 가운데 먹는 사람에 따라 ‘수라’
883. 조선시대의 전염병 방역서 ‘벽온신방’ 요즘 우리나라는 조류독감 발생으로 뒤숭숭합니다. 온갖 방역체계를 다 동원해보지만 아직 조류독감 발생 원인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곳에는 방역당국에서 나가 출입을 통제하고 닭들을 파묻으며, 안간힘을 다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전염병이 돌면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조선시대 효종 때인 1653년 봄 황해도에 문둥병이 크게 유행하여 사망자가 발생하자 임금이 어의 안경창에게 명하여 당시에 유행하는 전염병의 특성과 조선의 실정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풍토와 조선인의 체질에 알맞은 치료법을 담은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이 바로 ‘벽온신방(壁瘟新方)’으로 전염병과 기근 등 재난에 대비한 방역 전문서입니다. 이 책은 일반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 언해를 붙여 놓았으며, 조리법이나 전염예방법도 민간에서 간편하게 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882. 굶주림을 벗어나는 데는 소금과 장 성종실록 129권 12년 5월 19일 기록에 보면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모자라 빈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합니다. 여기에 보면 소금과 장이 굶주림을 벗어나게 하는데 가장 중요다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메밀의 줄기와 잎, 황각(해초 가운데 하나), 미역, 참가사리, 바닷나물, 산삼, 도라지, 비름, 도토리, 무 등을 굶는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구황식품으로 꼽고 있습니다. ,br>또 기록에 기근(飢饉)을 면하려면 보리와 밀을 많이 갈아야 한다며 백성들이 이를 위해 풀을 태워 잿거름을 만들고 퇴비를 만드는 등 미리 많은 준비를 하게 하여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곡식이 귀한 때에 장사치 무리가 중요하지 않은 잡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여 이익을 취한다며 미곡상(米穀商) 이외의 여러 가지 보따리장사를 금지하도록 합니다.
881. 오늘은 대설, 메주 쑤는 때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스물한 번째인 대설(大雪)입니다. 눈이 많이 내린다 해서 대설이라고 하지만, 꼭 이때 눈이 많이 오지는 않는데 그 까닭은 원래 절기가 중국의 화북지방의 기후에 맞게 만들어진 탓이지요. 이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된다는 믿음이 전해집니다. “부네야 네 할 일 메주 쑬 일 남았도다 /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이는 ‘농가월령가’ 가운데 십일월령에 있는 노래입니다.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는 이때는 콩을 쑤어 온갖 정성을 기울여 둥글넓적하거나 네모지게 메주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든 메주를 며칠 방에 두어 말린 후, 짚을 깔고 서로 붙지 않게 해서 곰팡이가 나도록 띄웁니다. 알맞게 뜨면 짚으로 열십자로 묶어 매달아 두는데 짚을 사용하는 까닭은 메주를 띄우는 푸른곰팡이의 번식이 왕성하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880. 조선팔도에 열린 새로운 문화식민 통치시대 “우리는 누룽지를 잃었습니다. 대신 라면과 일회용 반짝 문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들판과 개구리 소년들과 메뚜기떼들을 잃었습니다. 대신 골프장과 환경공해라는 세기말의 공용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태리 가구와 프랑스제 향수와 미국 영화, 그리고 마침내는 인터넷도 얻었습니다. 대신 반만년 백의민족의 얼을 송두리째 내주었습니다. 지금 조선팔도에서는 새로운 문화식민 통치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냉장고와 세탁기와 전자오븐을 얻었습니다. 대신 앞치마에 밴 엄마 냄새를 잃었습니다.” 위 글은 이관희님의 책 “꽃과 여인을 노래할 수 없는 시대”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관희님이 외치는 것처럼 우리는 편함과 화려함을 얻은 대신 우리의 얼과 겨레문화는 송두리째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이제라도 다시 찾아야 합니다.
879. 넉넉한 한복은 관절을 편하게 한다. 서양옷에 비해 한복이 가지는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넉넉함인데 이는 건강에 아주 좋은 형태입니다. 서양옷이 관절의 움직임을 제한하는데 반해 한복은 평면재단을 하여 관절 모양에 옷을 맞추기 때문에 관절의 활동성을 최대한 보장합니다. 평면재단이 어깨 관절을 편하게 하고, 무릎 관절을 자유롭게 굽히고 펼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복바지가 하체를 조이지 않음으로 고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고, 편한 자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넉넉한 한복은 옷과 몸 사이의 충분한 공기층으로 단열효과가 만들어주는 특성이 있어 추울 땐 따뜻하게, 더울 땐 선선하게 해주는 구실을 합니다. 실제 몸에 딱 맞는 운동복을 입었을 때는 춥지만 한복을 입어보면 두껍지 않아도 춥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78. 옛날의 예인들은 악가무를 같이 했다. 요즘 예인들은 소리, 춤, 연주 분야에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엔 예인이라면 이 세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종합예술인이었습니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 ‘황진이’에서도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줄타기에도 재주가 있었지요. 판소리 가객 이날치, 춤의 명인 김인호, 명고수로 이름을 날렸던 한성준 등도 줄타기, 땅재주를 잘했던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줄타기를 함으로써 신체의 역학적인 안배를 잘 맞추어 몸의 균형을 잘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기악과 춤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작용하여 춤을 출 때 장단과 장단을 넘나들며 가락을 타고 추는 것을 살펴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리와 연주를 함께하는 가야금 병창을 하는 이도 드뭅니다. 악가무(樂歌舞) 일체를 이루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참고 : “화성의 춤명인 운학 이동안(화성시사)”, 이승희
877.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는 잘못된 말 어느 강연회에 갔더니 사회자가 “~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잘못된 말로 “~의 말씀이 있겠습니다.”가 맞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아닌 말씀 자체를 높여서는 안 되지요. ‘있다’를 ‘계시다’로 바꾸려면 존칭명사가 주어이고, ‘있다’가 존재를 의미할 때와 보조용언으로 쓰여 존칭명사의 동작이 진행됨을 나타낼 때여야만 합니다. “아버지가 사랑에 계신다.”나 “어머니가 책을 읽고 계신다.”처럼 말입니다. 이 밖에도 “어머니가 책을 읽고 계신다.”를 “어머니가 책을 읽으시고 계신다.”처럼 쓰면 잘못된 것입니다. 또 “시간이 있으시면 구경오세요.”가 아닌 “시간이 있으면 구경오세요.”, “전화번호가 몇 번이세요.”가 아닌 “전화번호가 몇 번입니까?”라고 해야 합니다. 사물을 존대하거나 이중으로 지나친 존대를 해서는 바른말이 아니지요. 참고 : ‘나만 모르는 우리말“, 조경숙˙김슬옹˙김형배 공저, 모멘토
876. 정치의 근본인 농사를 위해 농사직설을 펴내다. “먹는 것은 백성에게 으뜸이 되고 농사는 정치의 근본인 까닭으로, 수령이 백성에게 가까이하는 일은 권농(勸農)보다 중한 것이 없다. 만약 홍수, 가뭄 그리고 병충해 같은 재해는 하늘의 뜻으로 나오는 것이니 어찌할 수가 없으나,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의당 마음을 다 써야 할 것이다. 지난 기유년에 여러 가지 책을 수집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을 만들어 각도에 반포하여,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쉽게 알도록 하였다.” 세종실록 78권 19년 7월 23일조 나오는 기록입니다. 조선시대엔 농사짓는 일보다 중한 것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절대권력자 임금이 궁궐에서 농사를 짓고, 가뭄이 들면 밥은 물론 약도 먹지 않으려 했겠습니까? 그래서 세종임금은 백성들의 위해 정초에게 명하여 ‘농사직설’을 펴냈는데 정초는 이때 나라 안의 농사 전문가들을 모두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참고 : ‘손 안의 박물관’, 이광표, 효형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