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한복 살 때 이렇게 골라라! ▲ 고름달린 생활한복 ⓒ 김영조 요즘 생활한복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생활한복을 어떤 관점에서 골라 사야하는지 잘 모르며, 그것을 알려주는 데도 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생활한복 살 때 고민해야 할 것들에 대해 좋은 정보를 들려주고자 한다.생활한복의 유래는 무엇일까? 이는 1980년대 말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달하고, 이에 따라 민족적 자각이 운동가들 사이에 싹트면서 '의생활에서도 민족적인 모습을 띨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전통한복을 일상생활에서 늘 입을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80년대 말부터 생활한복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물론 처음엔 승복이나 도복 같다, 심지어 중국옷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듣게 되어 고전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1996년 문화관광부가 '한복살리기'에 들어가 직원들에게 먼저 한복입기를 권장하고, 매달 첫째 토요일을 한복 입는 날로 정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게 불리던 이름들이 정부가 공식적으로 '생활한복'이란 이름을 쓰면서 정리되었다.하지만, 그런 생활한복의 봄도 잠시
632. 종묘제례에 있는 일제의 왜곡을 아시나요?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宗廟祭禮)와 제1호 종묘제례악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종묘제례는 태조를 비롯한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입니다. 또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과 노래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곡을 가리킵니다. 이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에 많은 거짓꾸미기(왜곡)가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본총독부가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흐리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이 거짓꾸미기는 제사의식은 물론 음악, 복식 등 모든 부분에 걸쳐 있습니다. 복식에서 보면 우습게도 ‘적상(赤裳:붉은치마)’을 ‘남주의(藍周衣:남색 주루마기)’ 겉에 입었는데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시용무보(時用舞譜)’에 적상을 겉에 입은 그림은 없습니다. 만일 이 중요한 종묘제례에 일제에 의한 거짓꾸미기가 있다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일입니다.
631. 토박이말 가을부채를 아시나요? 부채는 여름철을 시원하게 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가을에는 그 부채가 쓸모없지요. 그래서 철이 지나 쓸모없이 된 물건을 ‘가을부채’라고 합니다. 4자성어 ‘하로동선(夏爐冬扇)’ 즉 ‘여름화로 겨울부채’와 같은 말이겠지요. ‘먹을 것을 몹시 탐하는 사람을 ‘껄떡쇠’라고 하고, 나이는 많아도 실없고 쓰잘 데 없는 사람을 토박이말로 ‘곤쇠아비’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연인은 ‘그린내’, 미인은 ‘고운매’입니다. 또 ‘그런지 안 그런지 불분명하다’는 말은 ‘긴가민가하다’, ‘날이 흐리어 침침하다, 마음이나 표정이 어둡다’는 ‘끄느름하다’, ‘시간이 경과하다’는 ‘겨즉하다’, ‘마무리 하는 일’은 ‘끝걸음’이라고 하면 좋습니다. 말과 글은 잘난 체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어를 쓰기보다는 우리의 토박이말, 옛말, 사투리를 살려 쓰면 말글살이가 훨씬 넉넉하고 아름다워집니다.
630.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아는 것 “옛것을 본받는 사람은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문제다. 새것을 만드는 사람은 이치에 합당치 않는 것이 걱정이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 법도에 맞을 수 있다면 지금 글이 옛글과 같다.” 실학자 박지원의 ‘초정집서(楚亭集序)’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말은 ‘온고지신(溫故知新)’과 같은 뜻입니다. 전통을 지킨다면서 지나치게 옛것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현대에 도태되게 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변화를 한다고 옛 모습을 남기지 않고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극단의 자세는 모두 좋지 않은 태도라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활한복을 만들면서 섶, 사폭, 대님 따위를 버리고 서양옷처럼 몸에 딱 붙는 옷을 만듭니다. 또 다른 사람은 무조건 생활한복은 한복이 아니라고 비아냥댑니다. 옛것의 철학을 보존하면서 현대인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629. 조선시대의 백과사전을 아시나요?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백과사전과 비슷한 책들이 있었습니다.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 지봉 이수광이 편찬한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책 ‘지봉유설(芝峰類說)’이 그 시작입니다. 세 차례에 걸친 중국 사신 길에서 얻은 견문을 토대로 1614년(광해군 6년)에 펴냈습니다.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 안남(安南:베트남), 유구(流球:오키나와), 섬라(暹羅:타이), 자바[爪哇], 말라카[滿刺加] 등과 멀리 프랑크[佛狼機], 잉글리시[永結利] 같은 유럽의 일까지도 소개하여 한민족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새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였다는 평입니다. 이후 영조임금의 명으로 1770(영조 46년)년에 펴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는 한국의 문물 제도를 분류, 정리한 책이지요. 또 조선 후기의 학자 성호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따위가 있습니다.
628. ‘봄’이란 말의 어원은? 이제 홍매화, 진달래, 산수유가 피고, 생명이 새롭게 움트는 ‘봄’입니다. 이 우리말 '봄'의 어원은 무엇일까요? 그 중 하나는 불(火)의 옛말 '블'과 오다(來)의 명사형 '옴'이 합해진 다음 '블+옴'에서 'ㄹ'받침이 떨어져 나가면서 '봄'이 된 것으로 보아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뜻한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보다(見)’라는 말의 명사형 '봄'에서 온 것으로도 봅니다. 우수를 지나 봄이 오면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생명의 힘이 솟아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며, 동물들도 활기찬 움직임을 하는 것들을 '새로 본다'는 뜻인 ‘새봄’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자말인 춘(春)은 원래 뽕나무 상(桑) 자와 해를 뜻하는 '날' 일(日)자의 두 상형문자를 합한 회의문자(會意文字)이지요. 이것을 풀어보면 봄을 가리키는 한자 춘(春)은 따사한 봄 햇살을 받아 뽕나무의 여린 새움이 힘차게 돋아나오는 때를 뜻합니다.
627. 쑥개떡과 쑥버무리의 추억 봄이 오면 들판에 나물을 캐는 아낙들이 많습니다. 아낙들이 캐는 나물 중에서 쑥은 약으로도 쓰이고, 여러 가지 음식을 해먹습니다. 50~60년대에는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어 정부가 “전국 농가의 4분의 1인 50만 가구가 식량이 떨어져 초근목피(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라고 발표할 정도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이때 쑥은 쑥국은 물론 쑥개떡과 쑥버무리를 해먹는 귀중한 음식이었지요. 쑥개떡은 쑥을 삶아 쌀가루나 보릿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손으로 둥글납작하게 개어 만든 개떡이고, 쑥버무리는 삶은 쑥에 싸라기 가루를 섞어 채반에 찐 것입니다. 쑥은 메마른 땅에서도 비료나 농약 없이 스스로 자라는 완전 무공해 식물임은 물론 비료, 농약 등의 독소를 분해해서 몸밖으로 내보내는 역할도 합니다. 또 강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산성 체질을 개선하는가 하면 피를 맑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26. 우리 겨레가 활용해온 황토의 효능 황토는 숨을 쉬며, 습도조절이 뛰어나고, 항균 효과가 뛰어남은 물론 곰팡이가 피지 않습니다. 또 냄새를 없애는 효능이 좋은가 하면 방열효과가 좋고, 높은 온도를 오랫동안 지속하며, 원적외선 방사량이 많습니다. 한국 원적외선 협의회의 백우현 교수는 '황토와 일반 흙의 원적외선 방사 비교 실험'을 통해 뜨겁게 했을 때 보통 흙보다 황토가 훨씬 많은 양의 원적외선을 방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또 일반 온돌방과 황토방에 불을 때고 누웠을 때 황토방에 누운 쪽이 척추 부근의 신진대사가 훨씬 더 활발하다는 것도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습니다. 소는 여물을 먹고 난 뒤 황토로 제독을 하고, 개는 속에 탈이 날 때 황토구덩이에 배를 깔고 단식을 합니다. 또 닭은 쑥밭 근처의 황토로 목욕하여 병을 치료하고, 곰은 상처를 흙탕물에 담가 치료하며, 잉어가 병이 나면 연못에 황토를 넣어 처방한다고 합니다.
625. 명품 국악기를 만드는 비결 전통국악기를 만드는 기업 ‘(주)궁중국악기’ 박성기 대표이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악기를 만드는데 여러 가지 공정이 있다. 그냥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린 그 공정을 하나라도 생략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어떤 악기사는 원가를 줄인다는 생각에 몇 공정을 빠뜨리기도 한다. 이것은 결국 소리의 차이를 가지고 온다. 나무를 1년 동안 말리면 100장 중 99장은 쓸 수 있지만 명품은 안 나오고, 3년을 말리면 50장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중에 분명 명품이 나온다. 악기는 공력을 들이는 만큼 소리가 나온다.” 이것은 국악기를 만드는데만 필요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어야 할 대목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작은 것이라 하여 소홀히 대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를 올곧은 철학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624. 오랫동안 입어온 한복, 배자 전통한복 중의 하나인 배자(褙子/背子)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 없는 웃옷입니다. 배자는 소매와 섶, 고름이 없고 깃은 좌우 모양이 같으며 겹쳐져 여미는 것이 아니라 마주 닿게 입는 옷이지요. 통일신라시대의 반비(半臂), 배당과 조선시대의 답호, 쾌자, 전복, 더그레 따위도 모두 배자의 종류로 봅니다. 깃이 없는 마고자와 조끼는 조선 말기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화된 것인데 반해 배자는 오랫동안 우리 겨레가 입어온 옷입니다. ‘마고자(麻古子)’는 원래 만주옷인데 추운 지방의 덧저고리입니다. 1887년 대원군이 만주 보정부에서 풀려나 귀국할 때 만주옷 ‘마괘(馬褂)’를 입고와 이것이 변형되어 널리 퍼진 것이지요. ‘조끼’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 없는 옷으로 양복이 들어오면서 양복의 조끼를 변형하여 입은것입니다. 그래서 한복 저고리 위에 덧입는 것은 배자가 더 바람직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