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는 태양 주위를 쉬지 않고 공전하였다. 김 과장이 나목에서 미스 나를 만난 지도 넉 달이 지나 10월이 되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퇴근 무렵, 김 과장은 갑자기 나목과 아가씨가 생각났다. 그사이 두어 번 술집에 갈 기회는 있었지만 김 과장은 일부러 나목은 피하였다. 어떻게 보면 순수했던 짧은 시간의 추억이 더럽혀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비를 맞으며 뚝뚝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려니까 아가씨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솟아났다.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해도 아가씨의 모습은 계속 어른거렸다. 내가 왜 이럴까?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혼자 가기에는 아무래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김 과장은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박 과장도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박 과장은 선뜻 좋다고 대답했다. 둘은 늘 가던 돼지갈비집에 먼저 들렸다. 소주잔을 비우며 김 과장이 물었다. “박 과장님, 왜 사람들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할까요?” “글쎄요, 김 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정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태양광 발전이 새 정부에서는 푸대접받고 있다. 재생에너지보다는 원자력 발전을 육성하려는 새 정부의 정책이 염려스럽다. 재생에너지 가운데서도 태양광 발전은 다른 에너지원과 견주어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태양광 발전은 원료가 무료다. 화력발전에 사용되는 석탄, LNG, 원유 등은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원료인 우라늄광 역시 전량 수입하고 있다. 남한의 위도는 북위 33도와 39도 사이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의 프랑스, 영국, 독일보다 남쪽에 있어서 태양광 발전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에 있는 유럽 국가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다. 둘째, 태양광은 별도의 터가 필요 없다. 개인 주택의 지붕, 아파트의 베란다, 건물 옥상, 주차장 터, 또는 호수 수면을 이용해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농사를 지으면서 농지 위에서 태양광 발전을 할 수도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영농형 태양광을 활용하면 전체 농지의 20%만 활용해도 229GW(giga watt: 1GW는 원자력발전소 1기의 발전용량에 해당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가씨는 왠지 이 남자가 좋아졌다. 술자리에서 별별 남자를 다 만났으나 이 남자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가씨가 담배를 한 대 꺼내어 입에 물었다. 김 과장은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많이 피나?” “하루에 한 갑 정도요.” “담배를 끊지 그래. 나중에 시집가 임신하면 애기에게도 나쁘고.” “잘 안 끊어져요.” “약국에 금연 껌이 나왔다던데, 한번 먹어 봐. 내가 다음에 올 때 사올게. 그때까지 아가씨가 이 집에 있다면.” “언제 오실 거에요?” “글쎄, 돈 펑펑 쓸 수 있는 사업가도 아니고 봉급쟁이가 이런 델 자주 올 수가 있나. 가을이 되어 은행나무가 노랗게 변하기 전에 한 번 오지.” “꼭 한번 오세요.” 이제는 조금 친해진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밤 12시를 훌쩍 넘어 밤이 깊어지자, 김 과장은 은근히 지갑이 걱정되었다. 그저 아가씨가 시키자는 대로 마주앙과 안주를 계속 주문했는데 술값이 얼마가 나올지 감이 안 잡혔다. 이윽고 계산서가 나왔다. 아뿔싸, 낭패였다. 원고료로 받은 5만 원을 훨씬 넘었다. 지갑을 꺼내어 원고료 5만 원에다가 아내에게서 “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김 과장은 술이 약했다. 기껏해야 맥주는 두 잔, 소주는 석 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음이 왔다. 그래서 김 과장은 아내로부터 ‘술새우’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도주는 한 병까지 마셔도 그저 즐겁게 취할 뿐이어서 김 과장은 스스로 포도주 체질이라고 생각해 왔다. 김 과장은 일요일마다 아내 따라서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간다. 어느 날 목사님 설교 가운데 예수가 가나촌 (예수가 처음으로 기적을 행한 동네 이름. 혼인식에 초대받은 예수가 술이 떨어지자, 물을 술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행한 곳) 혼인잔치에서 여섯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여 잔치에 참석한 모든 이를 즐겁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를 믿더라도 포도주는 마셔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교회를 나가면서도 마주앙을 마시는 것이 조금도 죄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나가서 노래해요.” “그러자.” 김 과장은 최희준의 ‘하숙생’, 양희은의 ‘내 님의 사랑’ 등 옛날 노래를 불렀고, 아가씨는 김 과장이 잘 모르는 최신의 대중가요를 불렀다. 함께 춤도 췄다.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아가씨도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재담꾼인 박 과장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했다. 군대 가서 고생 안 했다는 사람 없고 모두 자신이 빳다도 제일 많이 맞고 기합도 제일 심하게 받았다고 우기며, 대개는 튀밥 튀기듯이 침소봉대하는 것이 군대 이야기이다. 이윽고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와 각각 옆에 앉았다. 김 과장은 여전히 박 과장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박 과장은 이제 병장이 되었고, 제대 말년에 졸병들을 종처럼 부리며 왕처럼 편하게 지낸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동안 김 과장은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아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 나에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그러고 나서도 박 과장이 제대하기까지는 10분 이상이 지나갔다. 그제야 김 과장은 아가씨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둑한 실내등에 비친 아가씨를 보니, 토끼처럼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귀여운 아가씨인데 이름이 뭡니까?” “수련이에요.” “나수련이라, 예쁜 이름인데요.” “고맙습니다.” “우리 이렇게 인연이 되어 만났으니, 술이나 한잔 같이합시다. 아가씨 잔을 가져오라고 해요.” 맑은 포도주를 반쯤 담은 유리잔이 쨍하며 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오존은 냄새가 나는 푸르스름한 기체이다. 복사기를 돌렸을 때 진하게 느껴지는 냄새, 그리고 식당에 있는 자외선 살균기를 열었을 때 나는 비릿한 냄새가 오존 냄새다. 그리스어로 냄새라는 뜻의 ‘ozein’에서 ‘ozone’이라는 영어 이름이 생겼다. 산소 원자가 두 개 결합하면 산소 분자가 되며 ‘O2’라고 표시한다. 오존은 산소 원자가 세 개 결합된 분자로서 ‘O3’라고 표기한다. 오존은 공기 1리터 속에 1/30만 들어있어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사람의 후각은 이 오존에 예민하다고 알려져 있다. 오존은 살균제나 표백제로도 쓰이는데, 인체에는 해로운 기체다. 산소 분자가 햇빛의 자외선을 받으면 일부가 오존으로 변한다. 지구가 생겨나고 처음 원시 대기에는 산소도 오존도 없었다. 약 30억 년 전에 첫 생물체인 남조류가 바다에서 나타났다. 남조류의 광합성에 의해 산소 분자가 만들어지고 대기 속에 산소가 많아지자, 오존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4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현재의 오존 농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바다에서 나타난 생명체는 오랫동안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였다. 햇빛의 자외선이 너무 강해서 생명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 소설은 필자가 국토개발원에서 근무하던 1988년에 네 차례에 걸쳐서 연구원 소식지에 연재했던 단편소설입니다. 지금부터 무려 35년 전에 쓴 글이므로 술집의 풍속도나 화폐의 값어치가 지금과는 다릅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중산층 봉급생활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십시오. 소설이란 반쯤의 사실과 반쯤의 허구로 구성되는 것이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16회를 매주 금요일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심심풀이 땅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필자 말씀>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같은 봄꽃은 이미 다 지고, 더워지기 시작한 6월의 어느 금요일, 김 과장은 기분이 좋았다. 얼마 전 사보에 잡문을 하나 썼는데 그 원고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원고료라고 해도 소득세에 방위세,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민세까지 떼고 나니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매월 봉급 타서 지로로 꼬박꼬박 아내에게 가져다 바치는 봉급장이에게 5만 원은 큰돈이었다. 더욱이 그 돈은 아내가 모르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처분소득이고 보니 김 과장은 기분이 매우 유쾌했다. “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을 따라 답사하면서 곳곳에서 보게 되는 식당과 카페의 영어 이름들에 짜증이 날 정도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2021년 기준)이 되었다. 이제는 한류가 동남아시아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가는 문화 강국이 되었는데, 굳이 영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고 영어로 관광지 이름을 지어야 하나? 거꾸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내가 너무도 국수주의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가? 국수주의자를 비하하는 유행어는 국뽕이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마약의 일종)의 합성어로서 무조건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나는 국뽕인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인가? 헷갈린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 하지만, 10여 년 전쯤 한국에 온 중국 연변대학교 김병민 총장이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김 총장은 ‘중의법’을 쓴 것으로‘말’은 만주족이 타던 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언어 ‘만주어’을 뜻하기도 한다. 만주족은 말에서도 내렸지만, 그들의 언어를 잊은 탓에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만주에는 숙신ㆍ읍루ㆍ물길ㆍ말갈ㆍ여진 따위의 만주족이 옛날엔 많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온난화를 가장 걱정하는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오늘 태어난 아기가 초등학생이 되는 2030~2035년 사이에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과학자들이 예상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해수면은 26~77cm정도 상승할 것이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바닷가 저지대의 곡물 생산 지역이 물에 잠겨 식량위기가 예상된다. 지구가 더워지면 강한 가뭄이 발생하여 사막지대가 늘어나고 산불이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더욱 강해진 태풍이 해마다 나타나 홍수 피해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 탄소 발생을 줄이자는 운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달리 말하면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하여 2023년 기준으로 128개 국가가 탄소 발생을 줄이겠다고 선언하였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고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 가운데서 공항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9월 22일, 나는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를 운전하면서 지나다가 평창군청에서 내건 커다란 펼침막을 보았다.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 사진을 찍어왔다. ‘플로깅 챌린지’? 해석이 되지 않는다. 챌린지는 도전(challenge)을 뜻하는 것 같은데 플로깅은 무슨 말인가? 사진을 확대하여 자세히 보니 현수막 오른쪽 위에 플로깅에 대한 설명이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Plogging [plocka up + jogging], 운동하며 쓰레기 줍는 일석이조 운동법”라고 말이다. 그런데 궁금증은 여전하다. plocka는 또 무슨 뜻인가? 손말틀로 다음사전에서 찾아보니 pooka, plucky, plica 등의 단어는 있어도 plocka라는 단어는 없다. 프랑스어 사전과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보아도 그런 단어는 없다. 국적 불명의 신기한 단어다. 펼침막의 왼쪽 위 구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굿-매너 문화시민운동 ” 굿-매너는 예절이라는 뜻 같은데, 아마도 <good manner>라는 영어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표기한 것 같다. 계속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펼침막의 아래에는